• 한국문화사
  •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 제2장 조선시대 무당의 생활 모습
  • 3. 무당의 호칭과 종류
  •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 무당
임학성

무당은 통상 한자로 ‘무격(巫覡)’이라 쓰이는데, 여기서 ‘무’는 여자 무당, ‘격’은 남자 무당을 지칭한다(男曰覡 女曰巫).146)허신(許愼), 『설문해자(說文解字)』. 요즘에는 무당이라고 하면 당연히 여자만 있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으나, 실은 남녀 모두 존재하였으며 호칭 및 역할에도 차이가 있었다.

『조선 왕조 실록』이나 조선시대에 간행한 문집 등의 자료에서 확인되는 여자 무당에 대한 표기는 ‘여무(女巫)’ 또는 ‘무녀(巫女)’ 외에 별다른 용례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자 무당은 다소 복잡하여 ‘격(覡)’·‘남무(男巫)’·‘무사(巫師)’·‘무사(巫士)’·‘양중(兩中)’·‘낭중(郎中)’·‘업중(業中)’ 외에 지역별로 북부 지역은 ‘사(師)’로, 남부 지역은 ‘화랑(花郞)’으로도 표기하고 있었다.147)민정희, 「조선 전기 무당의 호칭과 종류」, 『역사 민속학』 10, 한국 역사 민속학회, 2000, 66∼68쪽. 이런 점에서 볼 때, 그 역할 또한 여무에 비해 남무가 다양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사료에서는 ‘무부(巫夫)’라는 표기도 발견된다.148)『비변사등록』 67책, 숙종 40년 2월 7일 ; 『정조실록』 권23, 정조 11년 4월 기해 등. ‘무부’는 남자 무당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그 글자 뜻대로 단순히 무녀의 남편(巫女之夫)을 일컫기도 하였지만,149)『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財用編) 3, 무세급대조(巫稅給代條). 남무(覡)를 칭하는 용어로도 함께 사용되었다.150)村山智順, 『朝鮮の巫覡』, 朝鮮總督府, 1932, 22쪽 및 46쪽.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주로 남무를 ‘무부’라고 일컬었다고 한다.151)村山智順, 앞의 책, 31∼34쪽.

표 ‘무당의 여러 가지 이칭(異稱)’은 자료들에 나타나는 무당의 호칭을 정리한 것이다. 역시 여무보다는 남무가 다양하였음을 살필 수 있다. 특히 호적(戶籍) 자료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는 주민들의 다양한 실상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표> 무당의 여러 가지 이칭
자료
성별
실록 등 관찬 자료 호적 자료 현지 조사(일제 강점기)
여자 무녀(巫女), 여무(女巫) 무녀 무당, 암무당, 단골, 명도(明道), 만신, 전내, 태주, 홑에미
남자 격(覡), 남무(男巫), 무부(巫夫), 무사(巫師·巫士), 화랑(花郞), 양중(兩中), 낭중(郎中), 업중(業中) 무부, 무부군(巫夫軍), 무부군뢰(巫夫軍牢), 화랑, 광대(廣大), 업중, 무공(巫工), 무포군(巫布軍), 재인(才人), 무세(巫稅), 무(巫), 취타수(吹打手) 남무당, 숫무당, 박수(박사, 박시, 반수), 봉사, 화랑, 재인, 광대, 무동, 미동, 복술, 경쟁이(經匠), 홑에비
통칭 무격(巫覡) 무(巫) 무당, 장님, 심방

한편, 무녀는 ‘원무녀(元巫女)’와 ‘반(半)무녀’ 또는 ‘가(假)무녀’로 구분하거나 이 밖에 ‘상(上)무녀’·‘중(中)무녀’·‘하(下)무녀’ 등으로 구분한 경우가 확인된다.152)임학성, 「조선시대의 무세 제도와 그 실태」, 『역사 민속학』 3, 한국 역사 민속학회, 1993, 105쪽. 이는 무당에 대한 일반 호칭이라기보다는 무세를 징수할 때의 차등을 기준으로 하는 구분이었다. 실제 원무녀와 상무녀는 ‘반’·‘가’나 ‘중’·‘하’ 등보다 두 배가량의 세금을 더 납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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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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