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 제2장 조선시대 무당의 생활 모습
  • 4. 사례로 본 무당의 생활 모습
  • ‘취타수’ ○귀학 일가의 사례
임학성

1717년(숙종 43) 호적에서 ‘(사노) 병영 취타수’의 신분과 직역을 지니고 있었던 ○귀학은 며느리인 ‘무녀’ ○조이가 남편의 사망으로 호수가 된 1759년(영조 35) 호적까지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들 일가의 무업 세습 양상은 부자로 이어지는 40여 년 정도만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귀학의 며느리에게서는 무업 세습뿐 아니라, 무당 집안 간 통혼(通婚)의 대표적 양상을 살필 수 있기에 주요 사례로써 소개해 본다.

○귀학은 사노 신분으로서 ‘취타수’ 역을 지고 있었는데, 이는 모친이 사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전이 충주에 거주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른바 외방(外方)·납공노(納貢奴)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상전가(上典家)로부터의 인신적 강제가 비교적 느슨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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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도 5> ‘취타수’ ○귀학 일가의 가계 및 무업 세습 양상
<가계도 5> ‘취타수’ ○귀학 일가의 가계 및 무업 세습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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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귀학에게 모두 세 명의 처(금이·○조이·조이)가 등장하는데 모두 ‘무녀’였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학선 역시 ‘무녀’(후처 ○조이)와 혼인하였다. 학선은 첫째 부인의 소생으로 처음에는 직역을 ‘사노 취타수’로 기재하다가, 1750년(영조 26) 호적 이후로는 ‘무부’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써 미루어 보아, ○귀학의 첫째 부인 금이는 사비 신분의 무녀였으리라 판단된다.

이들 일가를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1759년 호적에는 학선의 장성 한 두 아들(이복형제) 유성(46세)과 상농(21세)이 보이지만 모두 직역을 기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가의 내력 및 통혼 양상 등을 갖고 유추해 볼 때, 역시 무업을 세습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귀학에게 귀천이라는 아우가 있었음이 1729년(영조 5) 호적 이후 확인된다. 귀천은 사노였던 형과 달리 양인 신분을 지니고 있었으며, 역 또한 무업과 무관한 ‘목수(木手)’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사노 신분에서 벗어난 귀천이 역녀(驛女)인 전처와 사비인 후처와 각기 혼인함에 따라, 전처 소생인 장남 학수는 ‘역보(驛保)’를 직역으로 지니게 되었지만 후처 소생의 자녀들은 다시 노비 신분으로 귀속되었다. 또한, 귀천의 사위인 ○시억은 장인과 마찬가지로 ‘목수’직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무당 계를 이어간 형의 일가와는 달리 귀천 일가는 무업과 무관한 생계를 이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역보 학수의 처 역시 ‘역녀’였을 뿐 아니라, 당시(1729∼1735년 호적에서만 확인됨) 그들이 거주한 마을(도산면 벽계촌)은 역촌(驛村)으로 벽계역(碧溪驛)에 소속된 직역을 지닌 처가 쪽 일가가 다수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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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도 5-1> ○학선 후처 ○조이 일가의 가계 및 무업 세습 양상
<가계도 5-1> ○학선 후처 ○조이 일가의 가계 및 무업 세습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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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무당 집안 간의 신분 내 혼인 양상을 학선의 후처 ○조이의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자. 호적에 기재된 무녀 ○조이의 4조를 보면, 아버지 명용과 외할아버지 ○필남이 모두 ‘무부’였음이 확인된다. 호적상으로 확인되지 않으나 그녀의 어머니 역시 무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녀 ○조이는 친가와 외가 모두 무당 집안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여 무당 집안의 세습무인 ○학선과 혼인한 셈이 된다. 이렇듯 ○귀학 일가의 양상은 무당 집안끼리의 견고한 통혼 모습을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무당 집안, 즉 ‘동관(同貫)’끼리의 통혼은 세습무를 재생산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배경이기도 하였다.163)이경엽, 「무속의 전승 주체-호남의 당골 제도와 세습무계의 활동-」, 『한국 민속학』 36, 민속 학회, 2002, 187∼188쪽.

지금까지 17∼19세기 경상도 단성현 호적 대장에서 확인되는 무당 중 비교적 그 거주가 장구(長久)하였던 다섯 일가를 추출하여 무업의 세습 양상을 살펴보았다. 다섯 사례에서 나타난 양상을 종합하면 표 ‘17∼19세기 단성현 거주 무당 일가의 무업 세습 양태’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표> 17∼19세기 단성현 거주 무당 일가의 무업 세습 양태
특징
사례
파악 범위 무업 세습의 특징
‘화랑’ ○진명 일가 ∙시기 : 1678∼1828년
∙세대 범위 : 6대
∙무업 세습이 강고하게 이루어짐.
∙사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면서 무업을 세습함.
‘무공’ ○운 일가 ∙시기 : 1678∼1789년
∙세대 범위 : 5대
∙무당계와 비무당계로 분화됨.
∙사위가 뒤늦게 전업하여 무업에 종사함.
∙일부 후손은 무업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임.
‘업중’ ○송죽 일가
(‘화랑사노’ 수일 일가)
∙시기 : 1678∼1789년
∙세대 범위 : 5대
∙무당계와 비무당계로 분화됨.
∙신분을 상승시켜 무업뿐 아니라 양역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임.
‘취타수’ ○어선 일가 ∙시기 : 1717∼1828년
∙세대 범위 : 5대
∙무업 세습이 강고하게 이루어짐.
∙일부 후손은 일수(日守)·사령(使令) 등의 하급 관속으로도 종사함.
‘취타수’ ○귀학 일가 ∙시기 : 1717∼1759년
∙세대 범위 : 3대
∙무당계와 비무당계로 분화됨.
∙무당 집안 간의 강고한 통혼 양상을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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