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1장 사찰의 공간 구성과 석조물의 상징
  • 1. 가람 배치와 전각
  • 가람 배치
  • 이탑일금당형
박경식

이탑일금당형(二塔一金堂型)은 대웅전 앞에 두 기의 석탑을 세운 가람 배치로, 쌍탑 가람(雙塔伽藍)이라고도 한다. 이 유형은 통일 직후에 성립된 가람 배치법으로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신라에서 확립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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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감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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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법흥왕의 불교 공인 이후 많은 사찰을 건립하였다. 신라시대에 건립된 사찰은 흥륜사(534∼544)를 비롯하여 영흥사(535), 황룡사(553∼645), 지원사(566), 삼랑사(597), 분황사(634), 영묘사(635) 등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 황룡사와 분황사만 발굴 조사 되었을 뿐 나머지 사찰의 정확한 규모나 가람 배치 방법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신라가 쌍탑 가람을 성립한 것은 통일 직후에 건립한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망덕사지(望德寺址), 감은사지(感恩寺址)에서이다.

사천왕사는 679년(문무왕 19)에 창건하기 시작한 사찰로 중문, 양 목탑지, 금당지와 강당지가 순차적으로 건립되었는데, 강당의 전면에는 경루지로 추정되는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망덕사지 역시 목탑으로 조성된 쌍탑지와 금당지가 확인된 점으로 보아 사천왕사와 같은 형식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탑일금당식 가람 배치는 통일 전쟁 직후에 세운 사찰에서 확인된 것으로 보아 7세기 후반 신라에서 확립된 양식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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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지 가람 배치도
사천왕사지 가람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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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사지가 목탑을 건립한 쌍탑 가람이었다면, 감은사지는 석탑을 배치한 최초의 쌍탑 가람이다. 감은사지는 통일 직후 문무왕의 명에 따라 창건한 사찰로 682년(신문왕 2)에 완공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중문, 쌍탑, 금당, 강당이 순차적으로 건립되었고, 이를 회랑이 감싸고 있는 전형적인 쌍탑 가람으로 확인되었다. 이처럼 통일 직후에 기존의 단탑에서 벗어나 쌍탑이 등장하는 것은 당나라 문화의 영향과 법화 신앙(法華信仰)의 유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3)고유섭, 『한국 탑파(塔婆)의 연구』, 을유문화사, 단기(檀紀) 4281,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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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가람 배치도
감은사지 가람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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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직후에 완성된 쌍탑 가람 배치 방식은 8세기 중반에 이르러 불국사(佛國寺)를 필두로 많은 사찰에서 수용하여 통일신라시대 가람 배치의 한 전형으로 정착되었는데, 이들 사찰은 대부분 평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상과 같은 쌍탑 가람 외에도 황룡사지에서 확인된 일탑삼금당식 가람 배 치가 있는데 이는 고구려에서 확립된 일탑삼금당식을 신라가 수용하여 변형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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