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1장 사찰의 공간 구성과 석조물의 상징
  • 2. 석조물의 유형과 상징성
  • 석탑
박경식

일반적으로 탑은 어떠한 일 또는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구조물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불교적인 의미로는 사찰의 대웅전 앞에 건립되어 예배의 대상이 되는 조형물을 지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탑이란 용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넓은 의미의 탑은 흔히 어떠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조형물을 일컫는데, 기념탑, 위령탑, 준공탑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탑은 불교와 무관하게 조성되는 건축물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불교적인 의미에서의 탑을 건립하였던 인도에서도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하기 전에 그가 태어난 곳 또는 이적(異蹟)을 일으켰던 도처에 탑을 건립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듯이 탑이라 함은 본래부터 불교적인 속성을 지닌 구조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특정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탑을 지제(支提, Caitya)라 하는데, 이는 신령한 장소나 고적을 의미한다. 결국 인도에서 탑의 출발 역시 지제의 개념으로 시작되었고, 주로 석가모니가 생존하였을 때 역사적·기념비적 지역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탑은 불교적 차원에서 건립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탑을 지칭하는 것이다. 탑이란 탑파(塔婆)를 간략히 부르는 용어로 본래 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stūpa) 또는 팔리(Pali)어의 스투파(thŭp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 밖에도 수투파(窣堵婆)·수두파(數斗波)·두파(兜波)·부도(浮圖)·부도(浮屠) 등 여러 가지 용어로 기록되고 있는데, 대체로 방분(方墳) 또는 고현처(高顯處)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스투파(stūpa)가 지닌 뜻이 신골(身骨)을 담고 흙과 돌을 쌓아 올려 조성한 구조물이라는 점으로 볼 때, 탑은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사리(舍利)를 봉안함으로써 형성된 조형물임을 알 수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탑을 다투기르바(Dhātugarba)라 부르는데, 이를 줄여 다가바(Dāgaba) 또는 다고바(Dagaba)라 한다. 이들 용어는 ‘사리봉장(舍利奉藏)의 장소’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어 인도에서의 그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한 구조물’ 또는 ‘석가모니의 무덤’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인해 탑은 불교도에게 있어 불상과 상응하는 중요한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불상이 석가모니의 모습을 구현한 상(像)으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신앙의 대상이었음에 비해, 탑은 사리를 숭배하기 위하여 조성된 까닭에 전적으로 상징적인 신앙 대상이었다. 이렇듯 불가에서 건립되는 탑은 불교가 점차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서 인도는 물론 주변 국가에서도 여러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었다. 탑 안에 봉안하는 사리가 바로 그 것이다. 흔히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진신 사리(眞身舍利)라 하는데, 인도는 물론 불교를 수용한 여러 나라에서 건립되는 모든 탑에 봉안하기에는 수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따라서 불타의 머리카락, 손톱, 치아 그리고 옷에서부터 석가모니 열반 시 다비(茶毘)한 곳의 회토(灰土)가 진신 사리를 대신하였고, 급기야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으로 대표되는 법신 사리(法身舍利)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진신 사리와 법신 사리의 개념이 정립되자 ‘기념비적인 탑을 지칭하는 지제’와 ‘사리를 봉안한 탑’과의 구분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일부 경전에서는 “사리를 봉안한 것을 탑이라 하고, 없는 것을 지제라 한다.”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탑은 외견상 사리의 유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탑과 지제를 모두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진신 사리이건 법신 사리이건 봉안된 석탑은 신앙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됨으로써 불가의 중요한 상징물이 되었다. 나아가 사찰의 건립에는 반드시 조성해야 할 대상으로 당탑 가람(堂塔伽藍)의 중심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건탑의 목적에 있어 순수 신앙적인 의미 외에 호국적인 면 등 여러 가지 동기가 부여되어 불교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건축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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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복원 상상도
황룡사 복원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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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조성 재료에 따라 크게 목탑(木塔), 석탑(石塔), 전탑(塼塔), 공예탑(工藝塔) 등으로 구분한다. 목탑은 가장 오래된 탑의 한 형식으로, 중국에서 건립된 이래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래되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그리 활발히 조성되지 못하였지만, 일본에서는 줄곧 이 전통이 유지되어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 전래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목탑의 건립은 지속되었다. 고구려시대의 청암리사지·상오리사지·정릉사지, 백제시대의 미륵사지· 군수리사지·금강사지·제석사지, 신라시대의 경주 흥륜사·천주사·영묘사·황룡사 등지에서 확인된 목탑지를 통해 삼국시대에 목탑의 건립이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는 경주 지림사와 사천왕사지 및 망덕사지에 모두 목탑이 건립되었음을 현존하는 유구와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도 목탑 건립은 계속되었다. 즉, 중흥사·보제사·중광사·진관사·흥왕사·민천사·만복사 등의 사찰에 목탑이 있었음을 문헌과 유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도 흥천사·쌍봉사·법주사에 목탑이 건립되었는데, 이 중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은 국내 유일의 목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목재가 지닌 내구성의 문제와 역사적·지리적인 여건으로 대부분 소멸되어 문헌과 발굴 조사를 통해 흔적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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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의 각부 명칭
석탑의 각부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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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은 동양 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예를 남기고 있다. 흔히 동양 삼국의 탑 문화를 말할 때 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 중국은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 말한다. 이는 탑을 조성하는 재료로써 각국의 문화적 성격을 대변하는 용어라 하겠는데, 이를 통해 불교를 숭상하였던 각국이 불탑 조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략 1,000여 기의 석탑이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중국과 일본이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조상들이 목탑이나 전탑에 비해 석탑의 건립에 주력하였음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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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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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모전 석탑
분황사 모전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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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석탑은 단순히 석재로 건립한 구조물의 차원을 넘어 목조 건축의 양식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때문에 석탑은 재료가 지닌 강건함과 사리의 봉안으로 인한 신앙의 대상이라는 점 외에도 목조 건물의 요소가 알알이 배어 있는 조형물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현상은 목탑이 지닌 재료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순백을 사랑하였던 우리의 전통과 맞물리며 예술적인 면에서 완성미를 이룬 결과라 생각된다. 석탑은 7세기 초반에 그간 건립되던 목탑에 대신해 조성된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건립된 까닭에 우리나라 탑의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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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동부동 전탑
안동 동부동 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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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탑(塼塔)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건립된 탑으로 중국에서 가장 많이 건립되었다. 벽돌을 생산하기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구비한 중국은 목탑을 대신해 수많은 전탑을 건립하였으므로 ‘전탑의 나라’라는 별칭을 얻었다. 전탑 건립 기술은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었지만, 우리의 자연환경과 시간적·경제적 여건이 이보다는 석탑의 건립에 주력하도록 작용하였다. 양지(良志) 스님이 “영묘사에 작은 전탑을 만들어 예배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우리나라에 서도 신라시대부터 전탑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는 안동의 동부동 5층 전탑·신세동 7층 전탑·조탑동 5층 전탑·금계동 전탑과 칠곡 송림사 5층 전탑이 현존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는 현존하는 신륵사 다층 전탑과 문헌에 기록된 금천 안양사 7층 전탑, 영주 무신탑, 갑산 백탑동 전탑의 예로 보아 계속 건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의 전탑은 삼국시대 이래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건립되었지만, 앞에서 언급하였던 여러 가지 이유로 소수의 예만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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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지 출토 금동대탑
개태사지 출토 금동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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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탑은 금동탑(金銅塔), 청동탑(靑銅塔), 토제탑(土製塔), 석제탑(石製塔)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불교 전래 이래 조성된 유적이나 석탑 내에서 출토되는데, 금동 및 청동탑은 주로 고려시대의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 이후 조성된 금동 및 청동제 탑은 주로 목조 다층 누각(木造多層樓閣) 형식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어 앞 시대에도 같은 형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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