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1장 사찰의 공간 구성과 석조물의 상징
  • 2. 석조물의 유형과 상징성
  • 석등
박경식

인류가 출현한 이래 가장 중요한 발견을 꼽으라면 아마도 불의 사용을 첫 번째로 주목할 것이다. 더욱이 실생활과 밀접한 취사, 난방, 조명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면서 인간을 문명과 연결시켜 준 매개 역할을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듯 인류의 실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은 종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늘날에도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예배 의식에 불이 등장함은 본래의 기능 이외에 교리에 대한 신성과 신비를 포용하고 아울러 이의 전파를 상징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석등(石燈) 역시 불을 밝힘으로써 어둠을 밝혀 준다는 조명의 역할 이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 불가의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사찰을 창건할 때에는 불상, 석탑과 함께 석등이 건립되었는데, 부재(部材)만 전하는 것을 포함하여 모두 270여 기가6)정영호, 「한국의 석등 소고」, 『동국 사상』 15,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1982, 71쪽. 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현존하는 사찰 혹은 폐사지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사찰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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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쌍사자 석등
법주사 쌍사자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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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의 각부 명칭
석등의 각부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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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은 석탑과 같이 기단부(基壇部)·탑신부(塔身部)·상륜부(相輪部)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등은 삼국시대 백제 말기의 도읍인 부여와 그 이남의 익산 지구의 사원 건립에서 조형되었다. 방대(方臺) 위에서 팔각을 기본으로 삼아 상하에 팔판 연화대석(八辦蓮花臺石)과 팔각 사면 방창(八角四面方窓)의 화사(火舍)와 팔각 옥개를 각각 하나의 돌로 결구하며 건립하였다.7)황수영, 「미륵사지 석등 자료」, 『한국의 불교 미술』, 동화출판공사, 1974, 150쪽. 따라서 우리나라 석등의 시원은 백제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현존하는 부재로 보아 신라에서도 같은 양식의 석등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초기작이 대부분 완형으로 남아 있지 못한 까닭에 통일신라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완형의 석등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석등의 양식을 볼 때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제1 양식은 팔각, 제2 양식은 육각, 제3 양식은 사각으로 나뉘며, 석등의 중간 구성부인 간주석(竿柱石)의 형태에 따라 고복석(鼓腹石, 장구 모양)으로 된 것, 쌍사자로 된 것, 팔각 주석으로 나뉜다.8)김원룡, 『한국 미술사』, 범문사, 1968, 202쪽.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석등은 불교의 발생국인 인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중국에서도 극히 소수의 예만 남기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창안한 석조물 중의 하나라 여겨진다.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늘 등불과 같이 세상을 밝힌다는 상징성이 내재된 조형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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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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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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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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