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3장 극락세계의 인식과 미술
  • 3. 극락의 조형
  • 극락을 가슴에 담으소서
정우택

정토 삼부경(淨土三部經) 가운데 하나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중생이 아미타부처의 인도를 받아 극락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연유, 방법,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정토왕생 신앙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경전은 서분(序分)과 본분(本分)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는데, 서분은 경전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본분을 설하게 되는 경위를 소상하게 전하고 있다. 서분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면, 이야기는 고대 인도의 마가다라는 나라의 빈비사라(頻毘娑羅)라는 왕과 위데희(韋提希) 부인 그리고 아사세(阿闍世) 태자 세 사람의 삶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아사세 태자는 왕과 왕비가 자신의 출생을 원하지 않아 태어나자마자 죽이려 하였다는 석가모니부처 이복동생인 제파달타의 이야기만을 듣고 아버지를 굶겨 죽이기 위하여 궁중의 깊은 곳에 가두게 된다. 그러나 왕 은 위데희 왕비의 도움으로 연명하게 되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태자는 다시 어머니를 죽이고자 역시 궁중 깊은 곳에 유폐시킨다. 위데희 부인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당시 생존해 있던 석가모니부처님에게 구원을 청하게 되며 석가여래는 그 원망(願望)에 부응하여 부인에게 극락을 관상하는 16가지 방법을 설하여 부인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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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후쿠지의 관경서분변상도
사이후쿠지의 관경서분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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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에 소장된 고려 14세기 초반의 관경서분변상도(觀經序分變相圖)는 경전의 내용을 충실하게 시각화한 대표적인 고려 불화이다. 화면을 향하여 오른쪽 중간 부분에는 유폐된 빈비사라왕이 위데희 부인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와 부루나존자의 설법을 듣고 있는 장면이 있고, 그 아래에는 왕비가 왕의 연명을 도왔다는 이야기에 격분하여 왕비를 죽이려 칼을 빼어든 태자를 기파, 월광 두 신하가 만류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 반대쪽 아래에는 재차 파견된 부루나존자가 왕에게 설법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그 위에는 “위데희호읍향불(韋提希號泣向佛)”이라 하였듯이 역시 유폐된 위데희 부인이 석가모니부처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장면이, 상부 중앙에는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시던 석가모니부처가 부인의 원망에 따라 설법을 하기 위하여 성중들과 함께 내려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은 절묘한 공간성과 각 존상(尊像)에 어울리는 담채풍(淡彩風)의 화법 등 설화적 성격이 짙은 경전의 회화화(繪畵化)에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이 그림 이외에도 관경서분변상도는 일본 다이온지(大恩寺)에 1312년(충선왕 4)에 그린 또 한 점이 전하고 있는데, 사이후쿠지 그림과 비교하여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화면 구성이 수직적이고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경전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부분을 회화화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정토 신앙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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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온지의 관경서분변상도
다이온지의 관경서분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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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무량수경』의 본분은 석가여래가 위데희 부인에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극락세계를 관상하는 13가지의 방편과 극락왕생의 인연, 과정, 방법 그리고 왕생자의 불심(佛心)에 따른 세 종의 등급의 존재 등 합하여 모두 16관을 설법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13관은 지는 해를 관상하는 방법인 일상관(日想觀)을 비롯하여, 장애 없이 일체를 투영하는 물로 일념을 가지고 극락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인 수상관(水想觀), 극락세계의 땅을 떠오르게 하는 보지관(寶地觀), 극락의 보석 장식 나무를 떠올리며 일념에 들어 그 세계를 바라보는 보수관(寶樹觀) 등, 보지관(寶池觀), 보루관(寶樓 觀), 화좌관(華座觀), 상상관(想像觀), 진신관(眞身觀), 관음관(觀音觀), 세지관(勢至觀) 그리고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을 관상하는 잡상관(雜想觀)으로, 모두 극락에 있는 자연의 장엄물과 관념 그리고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부처와 대표적인 협시보살인 관음, 세지보살의 형상과 성격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는 이 13가지의 관상법을 통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은 위데희 부인에게, 나머지 세 개는 14·15·16관으로 이를 각각 상배(上輩), 중배(中輩), 하배(下輩)라 하였다. 이는 속세의 선업(善業)에 따라 정토왕생자의 등급을 셋으로 나눈 것으로 다시 상배를 상품상생(上品上生), 상품중생(上品中生), 상품하생(上品下生)으로, 중배를 중품상생(中品上生), 중품중생(中品中生), 중품하생(中品下生)으로, 하배를 하품상생(下品上生), 하품중생(下品中生), 하품하생(下品下生)의 구품(九品)으로 분류하여 극락에 이르게 되는 인연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죽은 자는 생전에 닦은 선업에 따라 왕생 방법에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곧 저절로 가는 곳이라는 지옥과는 달리 극락왕생은 아미타여래의 내영 또는 어떠한 매개체를 통하여야만 한다는 타력(他力) 왕생을 강조한 것이다.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상품상생부터 중품중생까지는 아미타여래가 직접 왕생자를 맞이하러 오지만 그 이하는 보살 또는 화불보살(化佛菩薩)이, 하품하생인 경우는 금련화(金蓮華)만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구품의 왕생자들은 금강(金剛) 등 각종 재질의 대좌 및 연화 대좌를 타고 극락에 인도되거나 태어나게 된다.

이와 같은 『관무량수경』의 ‘연화 대좌’, ‘접인(接引)’에 의한 극락왕생에 이르는 정경은 이미 많은 신이(神異)의 설화와 경설(經說)에 등장한다. 즉, 이미 앞에서 살펴본 포천산 다섯 스님 내용 중 “다섯 비구는 각각 연화대에 앉아 허공을 날아가다……” 또는 욱면비(郁面婢) 왕생 장면의 “유해를 버리고 진신으로 변하여 연대(蓮臺)에 앉은 채 대광명을 발하면서 천천히 가니……” 또는 “비록 그러한 경계에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미타불의 대비 원력에 힘입어서 구품 연화대 중에 공덕 따라 왕생할 것은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87)『함허어록』(이재창, 「조선시대 선사의 염불관-기화와 휴정을 중심으로-」, 『한국 정토 사상 연구』, 1985, 247쪽 재인용). “현재에는 가지(加持)를 입어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많은 복을 받게 하여 주시며, 당래에는 접인을 받아 극락왕생하여 부처님을 뵙게 하여 주소서.”88)『동문선』 권112, 「미타재소」. 등을 산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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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후쿠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
사이후쿠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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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후쿠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는 『관무량수경』 본분의 내용을 회화화한 대표적인 고려 불화이다.89)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에 관하여는 유마리, 「조선 후기 관경십육관변상도-관경변상도의 연구(Ⅱ)-」, 『불교 미술』 12, 동국대학교 박물관, 1994, 73∼139쪽 참조. 화면 제일 위 가운데에 ‘일몰지관(日沒之觀)’, 즉 1관인 일상관을 두고 화면을 향하여 오른쪽 위에서부터 2관에서 7관을, 그 반대인 왼쪽 위로부터 8관에서 마지막 13관을 가지런히 배치하였다. 화면의 중앙에는 삼관(三觀)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14·15·16관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고, 16관을 묘사한 부분에만 여래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앞에서 설명한 선업의 등급에 따른 내영접인(來迎接引)의 차이를 의미한 것이다. 14관의 윗부분에는 “극락에 부처가 있는데 아미타라 하며, 지금 설법을 하고 계신다.”라는 『아미타경』에 의거한 극락의 교주인 아미타여래의 설법 장면이 있고, 아랫부분에는 역시 같은 경전에서 언급한 화려한 못과 가릉빈가(迦陵頻伽) 등 각종의 진귀하고 아 름다운 새들도 묘사되어 있다. 또한, “만 가지의 음악이 있어 청창애량(淸暢哀亮)하게 모든 법음(法音)을 내며……”를 의미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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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쇼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
린쇼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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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인의 관경십육관변상도(1323)
지온인의 관경십육관변상도(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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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본의 린쇼지와 지온인에는 1323년(충숙왕 10)에 그려진 또 다른 도상의 고려 관경십육관변상도가 전하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앞의 사이후쿠지 그림의 정연한 화면 구성과는 달리 1관에서 8관이 화면의 윗부분에 구획을 하지 않은 채 묘사되고 9관에서 13관 역시 중간 부분에 배치된 각각의 존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화면 구성에서 사이후쿠지 그림과 두 그림이 특히 다른 점은 14·15·16관의 배치와 표현 방법인데, 전자가 세 관을 화면 중앙에 종적으로 묘사한 반면에 두 그림에서는 화면 하부 중앙에 14관을 그 오른쪽에 중품관인 15관, 왼쪽에 하품관인 16관을 나란히 배치하였으며 사이후쿠지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왕생자가 모두 연화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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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
다이고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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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 다이고지(大豪寺)에는 이들 세 작품의 도상과는 또 다른 아주 주목되는 관경십육관변상도가 전하고 있다. 화면 구성은 1관에서 13관까지를 원형 안에 묘사하여 ‘⊓형’으로 윗부분을 가득 채우듯이 배치하였고, 14·15·16관을 화면의 중앙을 가득 채우듯이 아래에서 위로 종렬로 배치하였다. 특히, 이 그림은 아미타여래의 설법 장면마저 생략하고 14·15·16관, 즉 상·중·하품의 구품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경우는 현재로서는 중국은 물론 정토 관련 도상(圖像)이 비교적 풍부한 일본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구성이다.

이처럼 고려 불화의 경우 소의 경전(所衣經典)이 같으면서도 화면 구성 방법, 즉 도상이 다르고 더욱이 종류가 다양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경전의 해석 또는 신앙의 형태에 따른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표현을 달리하였기 때문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러한 고려의 관경십육관변상 도는 조선시대에도 계승되는데, 그 첫 번째 사례가 1465년에 그린 일본 지온인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앞에서 살펴본 지온인과 린쇼지에 있는 1323년의 그림들과 도상적으로 아주 유사하나 각 관의 명칭 또는 인물과 건물들이 생략되기도 하였다. 또한, 1433년(세종 15)에 제작한 것으로 짐작되는 일본 지온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는 중앙에 아미타여래의 설법 장면을 최대한 크게 배치한 점, 그리고 14·15·16관의 구품 장면을 화면 아래에 별도의 구획 없이 횡적으로 배치한 점에서 아주 특이한 화면 구성이다.90)나라 국립 박물관(奈良國立博物館)의 특별전(特別展)에 소개된 이래 호암 갤러리에서 1993년 12월 11일부터 이듬해 2월 13일까지 열렸던 ‘고려 불화 특별전’에도 출품되었던 그림으로 도록에서는 물론 지금까지 15세기 또는 조선 초기로만 추측되어 왔다. 이는 작품의 우측 아래 구석에 주(朱)바탕의 화기란(畵記欄)이 있으나 글씨가 모두 지워져 판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밀하게 조사해 본 결과 명문(銘文)은 금니(金泥)로 쓰여졌고, 종서(縱書)의 여덟 줄이었다. 내용은 좀 더 검토할 여지가 있으나 1443년(선덕 9)에 제작되었고, 발원자의 한 사람으로 군부인(郡夫人)이라는 인물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온지 그림은 조선시대에 들어서 화면 구성에서 변화를 주어 고려와는 다른 새로운 도상의 창출을 시도하기도 하였거나 아니면 정토 왕생 신앙의 변화를 반영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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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인의 관경십육관변상도(1465)
지온인의 관경십육관변상도(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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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1433)
지온지의 관경십육관변상도(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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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린지(法輪寺)의 관경십육관변상도 역시 조선시대에 들어서 관경십 육관변상도상이 고려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였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 그림에 관하여는 뒤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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