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3장 극락세계의 인식과 미술
  • 3. 극락의 조형
  • 극락 연못에 나시고
정우택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관무량수경』에서는 인간의 근기(根氣)와 선업을 상배(14관), 중배(15관), 하배(16관)의 세 종으로 나누고 이 삼배를 상품, 중품, 하품이라 부르며, 다시 각각의 품을 세 생으로 세분하여 모두 구품으로 나누어 설하고 있다.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는 바로 이 구품왕생의 정경만을 확대 묘사한 그림으로 물론 이 도상은 1323년에 그린 지온인, 린쇼지의 고려 불화를 비롯하여 1433년에 그린 지온지, 1465년에 그린 지온인 등 조선시대 관경십육관변상도에도 작은 부분으로나마 묘사되긴 하였다. 극락구품도는 현존하는 작품을 통하여 볼 때 주로 18세기 이후에 성행하였던 듯한데, 이는 아마도 화면 구성이 복잡하고 관념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고려에서 비롯된 관경십육관변상도보다는 구성이 비교적 단순하고 내용 또한 알기 쉬워 불교의 대중적 교화에 훨씬 적절하여 실용성에서 뛰어났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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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의 극락구품도
동화사의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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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품극락도의 대표적인 작품은 1841년(헌종 7)에 그린 동화사(桐華寺)의 불화로, 그림의 윗부분에 아미타삼존을 배치하고 그 좌우에 53여 래를, 화면의 중앙에 구품왕생의 정경을, 그리고 화면 아래의 중앙에 일상관을 의미한 해와 보수(寶樹)를, 그 좌우에는 주악천중(奏樂天衆)과 벽연대(碧蓮臺)를 묘사하였다. 이 그림은 앞선 시기의 관경십육관변상도와는 전혀 다른 구성으로 아미타삼존과 구품 연못 또는 왕생자의 정경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즉, 이 그림은 극락에 연화 화생(連花化生)하는 모습을 극대화시킨 도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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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의 관경십육관변상도
내원암의 관경십육관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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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품 연못의 가운데에는 아미타여래를 향하고 있어 등을 보이는 보살형(菩薩形)의 인물이, 연지(蓮池) 좌우 세 곳에는 합장을 한 비구형(比丘形)의 인물이, 그리고 좌우 횡으로는 모두 11구의 속인형(俗人形)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보살형은 상품을, 비구형은 중품을, 속인형은 하품을 상징한 것으로 짐작되어, 여기가 곧 극락구품 연지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극락구품도는 화면 구성 요소와 배치를 통하여 볼 때, 관경십육관변상도의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극락구품왕생을 주제로 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극락왕생의 정경을 대중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하려는 목 적에서 비롯된 도상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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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사의 극락구품도
지장사의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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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박물관의 극락구품도
불교 박물관의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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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사 극락구품도는 1572년(선조 5) 덕주사(德周寺)에서 개판(改版)된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이나 1611년(광해군 3) 실상사(實相寺)에서 개판된 『관무량수경』 구품관(九品觀)에 도상적 원류를 두고 있으며,91)박도화, 『조선 전반기 불경 판화의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7, 그림 40 및 42 참조. 또 다른 유사한 사례로는 1853년(철종 4) 개판된 내원암(內院庵) 관경십육관변상도가 있고, 좀 더 이르게는 명대(明代) 불화 도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동화사 극락구품도는 이후 많은 유사 도상의 불화 제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1893년(고종 30) 지장사(地藏寺)의 구품도와 불교 박물관에 있는 19세기 후반의 구품도는 같은 밑그림을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도상이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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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취운암의 극락구품도
통도사 취운암의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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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취운암(翠雲庵)의 극락구품도는 이러한 도상을 변형시킨 것으로, 화면 구성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정지되어 있는 듯하던 벽연대가 마치 보살의 인도를 받아 화면을 향하여 오른쪽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이동하는 듯이 묘사한 점이 다르다. 여기서의 다리는 아마도 극락에 이르는 길을 의미하며 그 다리를 건너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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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의 극락구품도
운문사의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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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883년(고종 20)에 그린 운문사(雲門寺)의 극락구품도는 역시 앞의 도상들을 변형시킨 또 다른 사례인데, 이 그림에서는 벽연대가 화면의 중간 좌우로 이동하였고 대신에 극락의 전각들을 생략하였다.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극락 연지의 구품의 명칭을 적어 놓고 있다는 점인데, 중앙의 세 보살형의 연화 대좌에는 가운데에 상품상생, 그 좌우에 상품중생과 상품하생이라고 적고 있으며, 화면을 향하여 오른쪽의 비구형 인물의 대좌에는 위에는 중품상생 그 아래 좌우에는 중품중생과 중품하생을, 그리고 그 반대쪽의 역시 비구형으로 묘사된 인물의 대좌에는 제일 위가 하품상생 그 좌우가 하품중생, 하품하생이라고 각각 묵서(墨書)하였다. 이 그림은 화면을 향하여 오른쪽의 벽연대 위에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으나 그 반대쪽의 벽연대 위가 비어 있고, 특히 왼쪽의 주악성중이 극락구품 연지를 등지고 있는 듯 묘사된 것으로 보아 그 왕생자를 마치 구품연지에 내려놓고 사라지는 듯한, 즉 시간적 이동의 암시를 통하여 극락왕생 방법과 과정을 알기 쉽게 전달하려 하였던 것 같아 흥미롭다. 특히, 구품의 명칭을 적어 놓은 것은 구체성을 빌려 좀 더 현현적(顯現的)이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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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비로암의 극락구품도
통도사 비로암의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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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의 극락구품도
봉암사의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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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에 그린 통도사 비로암(毘盧庵)과 봉암사(鳳巖寺) 극락구품도는 같은 밑그림을 사용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들 역시 앞에서 살펴본 것과는 또 다른 도상임을 알 수 있다. 즉, 화면 중앙에는 보단으로 구획한 공간에 아미타삼존이 자리 잡고, 그 좌우와 상부에는 극락의 전각과 많은 불보살이, 화면 하부에는 횡으로 구품연지와 왕생자가 배치되어 있다. 이 그림은 얼핏 보면 극락왕생보다는 아미타삼존과 극락의 정경을 가시화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하나, 앞의 그림들과는 달리 극락연지 좌우에 왕생자를 맞이하는 아미타여래의 모습을 묘사하여 또 다른 개념의 극락왕생 모습을 연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왕생자를 맞이하는 아미타여래의 도상은 이미 고려의 사이후쿠지 관경십육관변상도에서 보였던 장면으로 이러한 도상이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19세기의 극락구품도는 1관에서 13관에 이르는 관상의 장면을 생략하는 대신에 구품연지의 왕생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게 엿보인다. 이는 당시의 대중에게는 어려운 개념적인 관상보다는 시각적·즉시적(卽時的) 왕생 실현이 훨씬 현실적이며 나아가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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