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5장 불교 의례와 의식 문화
  • 1. 불교 의례와 시각 문화
  • 의례와 의식의 역사
  • 의식의 대중화와 의식집의 보급
정명희

의례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불교 의식집이다. 의식이 성행하면서 의식의 절차를 소개한 의식집이 발간되었다. 새로운 의식은 그것의 절차와 내용을 수록한 의식집이 간행되어 유통됨으로써 보급되었다. 의식집을 만든 기록은 고려 신종대(1049∼1094) 최사겸(崔士謙)이 송나라로부터 수륙의문(水陸儀文)을 가지고 온 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153)우리나라에서 수륙재의 시작은 970년(광종 21) 갈양사에서 개최된 기록이 최초의 예이나, 의식집은 이보다 훨씬 후인 1070년(문종 24)에 수입되었다. 중국에서는 자기문, 지반문 등 여러 계통에 따른 수륙 의식집이 간행되었다. 중국식 수륙 의식집은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으나, 의식의 분단법, 수륙화의 사용 여부 등으로 볼 때 조선의 의례 문화는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전개를 보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국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의식집은 주로 조선 후기의 것으로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17세기 이후이다(박상국 편저, 『전국 사찰 소장 목판집』, 문화재 관리국, 1987 참조). 의식은 특정 사찰, 특정한 사람들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설행되었다. 의식집의 보급은 신비한 능력을 지닌 승려만이 의식을 집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일정한 절차에 따라 의식을 진행할 수 있게 된 변화를 보여 준다. 불교 의식은 더 이상 특정 승려와 특정 계층의 제한된 신도들에게만 참여가 허용된 전유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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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일영혼시식의(四明日迎魂施食儀)』
『사명일영혼시식의(四明日迎魂施食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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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지역에서 의식이 진행되면서 의식집의 재간(再刊), 교정(校定) 작업은 더욱 활발하게 일어났다. 특히, 전란을 겪은 17세기 이후에 간행된 의식집에는 의식의 절차를 정리하고 체계를 잡고자 하는 의지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의식의 대중화로 인해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다양한 본에 의거한 의식이 산발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대표적인 의식집은 15세기에 학조(學祖)가 편찬한 『진언권공언해(眞言勸供諺解)』, 『오대진언집언해(五大眞言集諺解)』, 휴정의 『운수단작법(雲水壇作法)』, 『선문가례초선(禪門家禮抄)』 백파 긍선(白坡亘琁, 1767∼1852)의 『작법귀감(作法龜鑑)』 등이다.154)남희숙, 『조선 후기 불서(佛書) 간행 연구: 진언집(眞言集)과 불교 의식집(佛敎儀式集)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 문화재 연구소, 『불교 민속 문헌 해제』, 문화재 연구소, 2005.

조선 후기에 간행된 의식집에는 불교 의식을 집대성하고 통합하고자 하는 의도와 범패를 중흥하려는 의지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범패는 의식을 이끌어 가는 중심 축으로 당시 의식의 진행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계속되는 의식집의 중간, 재간은 조선시대 불교 신앙에 있어 의식의 중요성과 대중화 현상을 동시에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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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권공』
『진언권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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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6년(연산군 2) 인수 대비의 발원으로 간행된 『진언권공(眞言勸供)』은 의식 중 진언(眞言)이 갖는 비중을 잘 보여 준다.155)홍윤식, 「이조 불교의 신앙 의례」, 『숭산 박길진 박사 화갑 기념 한국 불교 사상사』, 원광 불교 연구원, 1975, 1045∼1100쪽. 진언은 진실한 말이라는 의미의 만트라(mantra)에서 유래한다. 진언이라고 번역하는 이 유는 부처나 보살처럼 깨달은 사람의 진실한 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모든 경전은 부처가 깨달은 경지를 서술한 것이기에 모두 진리의 말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중에서도 진언은 그러한 뜻이 더 강하게 새겨져 있다.156)고익진, 「심경(心經)을 새로 본다」, 『법륜』 80, 월간 법륜사, 1975, 84∼88쪽. 종교적 체험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세계, 범인의 사유로는 헤아릴 길 없는 세계는 진언으로 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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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집(眞言集)』
『진언집(眞言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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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집(眞言集)에는 의식에 참여한 사람이 함께 읽고 독송해야 할 부분은 범자(梵字), 한자, 국문의 세 가지 문자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범자가 기적과 같은 세계를 실현시켜 주는 의식의 신비한 능력을 보여 준다면, 한글이 나란히 병기된 의식문은 의식의 동참자들이 한글 사용 계층이었음을 알려 준다. 의식집의 변화를 통해 조선 전기와 후기의 변화된 의식 문화의 양상을 설명할 수 있다.

불교에 대한 정책적인 탄압이 계속된 조선시대에도 전통 종교로서 불교가 지닌 정신적인 힘과 파급력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사찰은 마을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였고 승려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생과 사의 중재자로서 종교적 대리인의 위치를 유지하였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각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일상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현존하는 사찰의 의식 문화는 조선이란 나라가 지녔던 문화적인 다층성을 보여 준다. 과거의 기록과 유물에서 우리가 읽어 낼 수 있는 해석은 이와 같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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