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5장 불교 의례와 의식 문화
  • 2. 전각 내부의 의식과 시각 문화
  • 성대한 의식의 기억
정명희

아귀들을 위해 마련한 시식단 옆에서는 의식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의식을 진행하는 승려는 경험이 많아 보이는 노승이다. 그는 손에 금강령을 들고 의식을 주재할 부처와 의식에 참석할 고혼들을 깨우고 있다.170)“以此振鈴伸召請十方佛刹普聞知願此鈴聲遍法界無邊佛聖咸來集”, 『운수단(雲水壇)』 1664년, 해인사 개판본 : 『한국 불교 의례 자료 총서』 1, 삼성암, 1993. 휴정(1520∼1604)이 간행한 『운수단』은 18세기 중엽까지 불교 승단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의식집으로 19세기의 의식집에도 절차가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759년 봉서암 감로도 의식 장면에는 의식 승려들의 서안 위에 『중례문(中禮文)』, 『결수문(結手文)』, 『어산집(魚山集)』과 함께 『운수단』이 놓여 있다. 그의 지 휘 아래 작은 북(小金), 바라(鉢鑼), 격자(磬子), 법고(法鼓)를 치는 범패승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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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센지 감로도
약센지 감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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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의식 승려의 무리와는 다소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승려가 서 있다. 그는 시식단 앞에 서거나, 혹은 단을 마주 보고 우리에게 뒷모습을 보이기도 한다.171)감로도에 묘사된 의식승의 복식에 관해서는 안귀숙, 「조선 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 비구에 관한 연구(下)」, 『미술사 연구』 9, 미술사 연구회, 1995, 160쪽 참조. 불교 의식에 사용된 악기에 관한 연구로는 박범훈, 「불전상의 악기」, 『한국 불교 음악사 연구』, 장경각, 2000, 105∼150쪽 참조. 머리에는 검은 관이나 삼화관(三花冠)을 쓰고, 손을 들어 올려 어떤 동작을 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의식 법구를 사용하고 있을까?

현재 일본 약센지(藥仙寺), 코묘지(光明寺) 등에 전하는 감로도의 시식 단 위에는 두 개의 정병이 나란히 놓여 있다. 정병 사이에는 향로와 향합이 있으며 시식단 앞에는 왼손에 발우를 들고, 오른손은 앞으로 뻗어 어떤 동작을 수행하는 승려가 있다. 이 장면만으로는 그림에 재현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감로도를 그릴 당시에 쓰던 불교 의식집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서산 휴정이 간행한 『운수단』은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통된 의식 승려들의 매뉴얼이다. 『운수단』의 시식 의례에는 ‘삼단작관변공(三壇作觀變供)’이란 항목이 있다. 이 장에는 의식과 주문을 통해 한 알의 음식을 무량한 수의 음식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서술하였다. 한 톨의 쌀을 무량한 양의 음식으로, 한 모금의 물을 바다처럼 무량한 양의 감로로 바꾸는 절차는 굶주린 영혼을 배부르게 하는 시식 의례에 필수적인 내용이다. 의식집에는 시식을 진행하는 승려를 ‘증명 법사(證明法師)’로 지칭하며, 그가 지녀야 할 의식 법구와 절차를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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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암 감로도 부분
봉서암 감로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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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단』의 삼단작관변공
『운수단』의 삼단작관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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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 법사는 우선 단 앞에 선 후 물을 감로로 변화시키는 주문(甘露呪)을 송한다. 이때 “먼저 향을 사른 후 왼손으로는 물동이(水盂)를 든다. 오른손으로는 버 드나무 가지(楊枝)를 들어 향 연기를 한 번 쬐인 후, 수분에 세 번 담근다.”고 한다. 다음으로 수륜관(水輪觀)을 송하는데, 수륜관은 버드나무 가지로 범서(梵書) ‘唵(엄)’ 자와 ‘鍐(종)’ 자 두 자를 공중에 쓰고 ‘囕(람)’ (아래 그림 참조)자를 떠올린다고 하였다.172)『운수단』 삼단작관변공(三壇作觀變供),『한국 불교 의례 자료 총서』 2, 삼성암,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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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서(梵書) ‘唵(엄)’, ‘鍐(종)’, ‘囕(람)
범서(梵書) ‘唵(엄)’, ‘鍐(종)’, ‘囕(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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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단 앞의 의식승
시식단 앞의 의식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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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도의 시식단에 등장한 승려는 의식집의 내용을 참고할 때 의식의 증명을 맡은 승려임을 알 수 있다. 시식 의례를 진행하며 의식의 위력을 증명하는 승려가 지녀야 할 의식 법구는 버드나무 가지와 물동이(水盆)이다. 1649년(인조 27) 조성된 보석사(寶石寺) 감로도에서 의식 승려는 의식집에서 기록된 대로 버드나무 가지와 발우를 들고 있다. 그는 버드나무 가지로 청정한 정수를 도량에 뿌리며 공양물을 감로로 변화시키는 절차를 진행 중인 것이다. 의식집에 수록한 절차의 세부적인 진행 양상은 감로도에 그대로 도해되어 있다. 감로도에는 깨끗한 정수를 담아 두기 위한 용기로 정병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정병과 발우, 버드나무 가지는 시식 의례를 위한 의식 법구였다.173)양지와 정수, 정병의 결합과 그 의미에 관해서는 안귀숙, 『중국 정병 연구』, 홍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참조. 송대 존식(尊式)(964∼1032)이 편찬한 『관음참법(觀音懺法)』(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三昧儀), 제6 구양지정수(具楊枝淨水)에는 참법을 행하는 사람은 물그릇 위에 버드나무가지를 가로 걸쳐 놓고, 오른손으로 양지를 잡고 왼손으로 정수가 든 물그릇을 들고 정수를 뿌리면서 송주하고 기원한다고 한다(『한국 관음 신앙』,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1997, 205∼264쪽). 버드나무 가지를 물그릇에 담그기 전에 향 연기를 쐬는 절차가 있어 향합과 향로 역시 시식 의례에 필수적인 의식구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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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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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도에는 의식집의 내용을 근거로 유추할 수 있는 천도의 주체, 천도 받을 대상, 의식을 준비한 재주(齋主), 이들이 상호 작용하는 복합적인 의식의 모습과 실재 설행되던 의식의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의식의 전 과정 중에서도 고혼에게 음식을 베푸는 ‘시식’과 시식단에 마련한 음식을 무량한 수량의 감로로 변화시키는 ‘상단작관변공’이 포착된 점이 주목된다. 음식을 감로로 바꾸는 변식 장면에 비중을 두어 도해한 것은 의식의 기능과 효용성을 강조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감로도가 얼마나 현실의 의식을 재현하고 있는지를 조선 후기에 간행된 또 다른 의식집인 『작법절차(作法節次)』를 통해 좀 더 살펴보자. 이 책에는 의식을 행할 때 영단을 배치하는 방식을 ‘영단배치규식(靈壇排置規式)’편으로 독립시켜 수록하였다. 영단의 설치법은 어느 특정 의식에 속하지 않고 필요할 경우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별도의 항목으로 독립되어 있다.

누각(樓閣)이나 문관(門館)에 이 단(靈壇)을 설치하면 반드시 차일(遮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혹시 노지(露地)에 배치하면 큰 차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 위에는 대여섯 폭의 푸른 비단 천(靑天)으로 덮는다. 비록 누각에 설치해도 운칸(雲間)이 없으면 이를 사용한다. 한 자리에 큰 병풍으로 주위를 두르고 병풍 안 한가운데 북쪽에 연화좌를 두고 불자(毛鞭拂子)를 둔다. 좌우에는 붉은 사라폭(紅紗帳)을 자리 앞으로 늘어뜨리고 남쪽에는 큰 촛대 한 쌍을 밝히고 휘장 안 우측과 휘장 바깥에 향로와 향합(香榼), 화병(花甁) 한 쌍을 두며 단 앞에는 사미로 하여금 산화(散花) 한 쌍을 들고 있게 한다.174)『작법절차(作法節次)』, 영혼단배치(靈魂壇排置), 발행처 및 간행 연도 불명 : 『한국 불교 의례 자료 총서』 4, 삼성암,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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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감로도
신흥사 감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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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집의 기록을 볼 때 야외 의식에서 영단은 누각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사찰에서는 차일을 준비해 영단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였다. 고려시대에 채붕을 설치하던 것과는 달라진 현상이다. 의식승의 무리 사이에 의식문을 읽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승려들 이외에 단 앞에서 활짝 만개한 모란꽃을 높이 든 두 명의 승려를 그려 놓는 경우도 있고, 불자(毛鞭拂 子)를 들고 있는 승려를 그려 놓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작법절차』에서 규정한대로 의식에 동참하며 의식을 돕는 인물들로, 현실의 광경은 의식 장면을 그린 감로도에 그대로 묘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감로도는 의식집의 내용을 통해 구체적인 양상을 복원할 수 있을 만큼 의식과 불화의 긴밀한 관련을 보여 준다. 불화에 그려진 의식구와 각 사물의 실재적인 기능과 의미를 의식집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감로도가 그림 속에 묘사하고 있는 실제 의식 현장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불화는 그림에 묘사된 야외 의식 공간이 아니라 전각 내부인 대웅전의 영단에 걸었다.175)백중시식에 사용되는 의식문에는 아귀도에 빠지게 될 운명의 아난존자가 이를 피하기 위한 방법을 묻게 되는 데서 시식의 영험을 강조한다. 시식문에는 매년 7월 개최되는 우란회가 목련존자가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베푸는 의식에서 유래하였음을 설명하는데, 이 내용은 『청문요집(請文要集)』 등의 의식집에서 ‘백종청(百種請)’, ‘목련청(目連請)’이란 별도의 절차로 자리 잡게 된다. 『청문요집』, 『한국 불교 의례 자료 총서』 4, 삼성암, 1993 ; 정명희, 「운흥사 감로탱(雲興寺甘露幀)」, 『감로탱(甘露幀)』, 통도사 성보 박물관, 2005, 110∼121쪽. 감로도는 삼단의 구성을 갖추게 된 조선시대에 하단에 걸어 놓는 상설 불화였다. 현실에서 이 불화는 마치 사진처럼 큰 규모의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재현물이었다. 감로도는 아귀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시식 의식을 그림으로 보여 준다. 그런 의미에서 감로도는 성대한 의식의 기억이다.

이 불화 앞에서 사십구재, 소상, 대상과 같은 천도 의식이 치러졌다. 특정 의식의 재현에서 다양한 천도 의식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불화로 기능은 확대되었다. 감로도의 핵심은 의식을 준비한 특정 인물들에서 감로도를 보며 조상을 위한 의식을 베풀던 다수의 신자들로 바뀌었다. 비록 성대한 의식을 베풀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재를 마련한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재현한 불화 앞에서 의식의 공덕을 공유하고 대리 만족을 하였을 것이다. 그림 속 상주들은 감로도 앞에 서 있는 자신들의 투영이었다. 의식을 마련한 공덕은 그림 속에서 현실의 신자들에게로 전해질 것임을 믿었을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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