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1장 예를 따르는 삶과 미술
  • 1. 예를 알려 주는 책과 그림
  • 사대부 문화와 예
조인수

질서와 규범을 강조하는 예는 문명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예를 논하는 예학(禮學)은 유교의 이념과 실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기(禮記)』에는 사람이 사는 데 예가 가장 중요한 것이며, 예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절도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예가 아니면 임금과 신하,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아비와 자식, 형과 아우 등의 지위나 관계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1)『예기(禮記)』, 애공문(哀公問). 그런 만큼 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은 사대부 문화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예란 단순히 성리학을 따르는 사대부가 지켜야 하는 규범을 넘어서 몸과 마음을 닦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대부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존재를 가로지르는 철학적 본질을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관을 체득하고 이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으로서 성리학은 개인의 인격을 함양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성리학적 이념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도록 가르친다. 고결한 인품 못지않게 강인한 사회적 사명 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리학자의 처신을 뒷받침하고 평가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예이다. 유교 이념을 철저히 따르는 질서 있는 삶을 위해서 사대부들은 개인적인 실천 윤리로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규범으로서 예를 강조하였던 것이었다. 그 결과 예의 올바른 실행을 둘러싼 사상적 논쟁은 종종 정치적 대결로 치닫게 되었고 타협할 수 없이 승패를 갈라야만 하는 처절한 투쟁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예송(禮訟)처럼 예제(禮制)를 둘러싼 논쟁을 현실과 괴리된 당파적이고 소모적인 대립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예는 곧 사대부 문화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면서 이를 지탱하고 완결시켜 주는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예를 따르는 사대부의 삶은 시각 문화 속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기초로 한 생활 규범과 의례 절차는 자연스럽게 건축물과 제기를 비롯한 각종 조형물의 형태와 장식 및 쓰임새에 반영되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예와 관련된 물품들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실용적인 물품들과 비교해서 재료와 크기, 형태와 장식, 기능과 보존의 측면에서 구별되어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 이들 의례 용품은 일반적인 미술품 처럼 사람들이 보고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용하지도 않고 심미적이지도 못한 물품이 의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물품들은 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예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였고,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는 점으로 인하여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때 우리 눈앞에 놓여 있는 물건 너머에는 엄숙한 예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대부 시각 문화가 예를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시각 문화를 이루고 있는 조형물들은 예학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동시에 예를 올바르게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예의 엄격함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인간의 삶을 여기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름다운 미술품을 통하여 예의 세계가 구체화됨으로써 무미건조한 형식적 제약이 되지 않도록 해준다. 다양하고 풍부한 사대부의 시각 문화에서 예를 기초로 한 미술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미술로 인하여 예를 따르는 사대부의 삶은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와 사대부의 시각 문화는 서로를 올바르게 만들어 주는 상호 필수적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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