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1장 예를 따르는 삶과 미술
  • 1. 예를 알려 주는 책과 그림
  • 수양과 성찰을 위한 도설
조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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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도설』의 천인심성합일지도
『입학도설』의 천인심성합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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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성리학 도입의 초기부터 계속하여 각종 도식과 도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높은 수준으로 연구되었던 성리학의 주요 개념들과 철학 사상을 간결한 도설을 이용해서 표현한 것이다.8)우리나라의 성리학과 도설의 활용에 대해서는 한국 사상사 연구회, 『도설로 보는 한국 유학』, 예문서원, 2000을 참조.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 권근(權近, 1352∼1409)은 익주 유배 시절에 지은 『입학도설(入學圖說)』에서 성리학에 입문하는 초학자들에게 성리학이란 어떤 학문이고 핵심이 되는 내용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모두 40개의 도설을 싣고 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이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최고의 목표는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고 이것은 심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도해하고 있다. 가운데 한자로 ‘마음 심(心)’ 글자를 배치하고 흑면과 백면을 적절히 교차시키면서 여러 개념을 도형 안팎에 배열하여 하나의 도표를 구성하고 있다. 상형 문자인 한자는 그 자체로 그림이면서 문자가 된다. 따라서 보기와 읽기를 동시에 요구하는 셈인데 권근의 도설은 이러한 특성을 좀 더 확대 하여 하나의 심오한 사상 체계까지 도해로써 드러내 보고자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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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의 숙흥야매잠도
『성학십도』의 숙흥야매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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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滉, 1501∼1570)의 대표적인 저술 중에 하나인 『성학십도(聖學十圖)』는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에게 성리학의 중심 내용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10개의 도표식 그림으로 만든 것이다. 일곱 장면은 이미 주희, 권근 등이 만들었던 것을 모으고 세 장면은 당시 68세의 이황이 심혈을 기울여 스스로 작도한 것이었다. 그중 한 장면인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며 부지런히 수양하는 것을 다짐하는 글을 도해한 것이다. 중앙에 ‘경(敬)’을 놓고 그 주위에 공부하는 방법을 하루 중 때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열하였다. 이렇게 이황은 성리학의 중요한 학설을 10개의 가시적인 도표로 제시하고 여기에 자신의 설명을 덧붙였다. 도설이 주가 되고 설명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도설을 작도하는 것은 그것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핵심을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전달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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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도설』의 월유잉휴지도(月有盈虧之圖)
『역학도설』의 월유잉휴지도(月有盈虧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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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표식의 도설이지만 시각적 요소를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례도 있다.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은 평생 역학 연구에 전념하였고 『역학도설(易學圖說)』을 편찬하였다. 그는 형이상학적 이론에 관한 것을 도표식으로 도해하기도 했지만, 자연 현상의 이치에 대해서는 시각적으로 판별이 가능하도록 도설을 그렸다. 태양과 달의 운동을 나 타낸 그림들이 그러한 예이다.

난해한 성리학의 철학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간략한 그림과 해설을 도설로 보여 줌으로써 초학자들은 손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언어로 묘사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추상적인 개념들을 시각적인 도형을 활용함으로써 학문을 심화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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