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1장 예를 따르는 삶과 미술
  • 2. 예를 실천하는 장소
  • 효의 실행과 조상 숭배
조인수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효(孝)’라는 규범이다. 『예기』에서는 만물은 하늘을 근본으로 하듯이 사람은 조상을 근본으로 해야 하므로 근본에 보답하고 시작한 처음으로 돌아가는 ‘보본반시(報本反始)’를 중시한다고 설명한다.11)『예기』, 교특생(郊特牲). 또한, 『효경(孝經)』에서는 효라는 것은 모든 덕의 근본이고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라고 보았다. 조상과 부모에게서 생명을 부여받은 큰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해야 하며 이로 인하여 가문의 영속성이 이루어진다. 부모의 초상을 당해서는 애통함을 극진히 해야 하고 제사를 모실 때는 엄숙함에 그지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상의 은혜는 생전과 마찬가지로 죽은 후에도 효성을 다하여 갚아야 하는 것이었고, 이런 의미에서 사당을 세워 조상신을 모시는 것은 위로는 임금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까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공통된 도리였다. 이러한 효 사상에 입각하여 상장례 의식이 발달하였다. 유교의 상장례는 19절목 60여 항목으로 나누어 시행할 정도로 의례 절차가 복잡하고 실행하기 까다롭지만 그 절차 하나하나에는 모두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깃들어 있다.

확대보기
문묘향사도(文廟享祀圖)
문묘향사도(文廟享祀圖)
팝업창 닫기

제례는 효라고 하는 유교 윤리의 기본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의례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강조되었다. 효의 극치로서의 제례는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가신 후에도 지극히 공경하고 추념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효성스러운 자식을 둔 부모는 죽은 후에는 명당에 위치한 문중(門中)의 선산(先山)에 묻혀 대대로 후손들의 보살핌을 받게 되고,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서원에 배향되어 제자들의 섬김을 받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에서 설립한 문묘(文廟)에 유학의 성인인 공자와 나란히 자리하여 영원히 추앙받는 영예를 누렸다.

이러한 조상 숭배 및 제례와 관련해서 각종 조형물을 만들었으며, 이들 조형물로 인하여 효의 극진함이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가옥 건축에서도 효에 기초한 예의 질서가 반영되어 있다. 사당(祠堂)이라고 하는 제향(祭享) 공간을 주거 공간에 함께 배치함으로써 조상과 후손이 정신적으로 함께 공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대부의 삶에는 여러 가지 건축물과 시설이 필요하였다.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집안들이 모여 사는 향촌에서는 살림집 이외에 제례의 기능을 함께 갖춘 종갓집이 있었다. 여기에는 신주나 영정을 모신 사당이나 영당(影堂)을 세웠다. 집안에서 효자, 충신, 열녀가 나오면 더없는 영광이었다. 유교적 가치관을 대표하는 덕목인 충, 효, 열의 실천자인 이들의 행적을 높이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홍패(紅牌)를 모신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비각을 세워 기념하였다. 이렇게 종갓집, 사당, 선산, 정자, 서당, 서원, 향교, 정려각 등은 예학을 따르는 사대부의 일생에 있어서 갖추어져야 할 건축물이었다.12)김봉렬, 『김봉렬의 한국 건축 이야기 2: 앎과 삶의 공간』, 돌베개, 2006, 188∼191쪽. 또한, 예학의 발달과 더불어 종갓집과 서원들은 예법에 충실한 건축 공간으로 변모하였고, 예는 구체적인 건축 구성의 일부가 되었다. 이황의 문인이자 뛰어난 예학자였던 정구(鄭逑, 1543∼1620)가 중건을 주도한 도동 서원(道東書院)은 한 사람이 겨우 이동할 수 있는 좁은 통로와 계단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구성원들이 서원 내에서 이동 을 할 때 서열에 따라 행렬을 이루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13)김봉렬, 『김봉렬의 한국 건축 이야기 3: 이 땅에 새겨진 정신』, 돌베개, 2006, 139∼144쪽. 이렇게 예적 질서를 드러내는 건물의 배치와 설계는 단순한 주거 공간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각종 의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구성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예서에서 건축 제도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도면까지 수록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