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1장 예를 따르는 삶과 미술
  • 3. 혼령이 깃드는 곳
  • 감모여재도, 그림 속의 사당
조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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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모여재도
감모여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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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별도의 건물을 설치하고 신주나 초상을 모시는 것은 보통 중상류 계층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마련하지 못하거 나 신주를 모시는 감실조차 설치하지 못한 경우, 그림으로 사당과 신주를 대신하면서까지 제사를 모셨다. 또한, 멀리 타지에 머무를 때 임시로 사당 역할을 하는 그림을 제사에 사용하였다. 회화식 사당에 해당하는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또는 사당도가 그것이다. 족자 형태로 사당과 위패를 그리고 여기에 지방을 붙여 신주로 삼는다. 사당 건물을 그림으로 대체하고 그 속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위패를 배치함으로써 가상의 사당과 신주를 회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감모여재’란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마치 이곳에 계신 것처럼 느끼고 사모한다는 의미이다.

감모여재도는 대개 팔작지붕의 건물로 사당을 삼고 창호를 위로 열어젖혀 내부를 보여 준다. 신주와 더불어 술과 과일 등 온갖 제물이 갖추어진 제사상이 모란꽃 화병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사당을 갖출 여유는 없지만 정성을 다해서 조상을 모시려는 염원이 반영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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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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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과 신주는 각각 회화와 문자라는 다른 방식을 통하여 망자의 이미지를 매개해 준다. 생전과 거의 동일한 모습을 그린 초상과 인물의 지위와 이름을 기록한 신위는 조상 숭배에서는 같은 역할을 한다. 사라진 신체를 대신하여 각각 그림과 글씨를 수단으로 삼아 족자와 위패라는 매체에 신령을 기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모여재도에서는 그림으로 사당과 신주를 그리고 지방을 써서 붙임으로써 그림과 글씨가 배타적으로 대립하지 않고 상호 보완적으로 융합한다. 조상 숭배의 예법을 준수하려는 마음과 이를 현실에 맞추어 실행하려는 실용성이 결합된 결과 독특한 의례용 회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영위도(靈位圖)는 교의와 향 탁과 향로까지 그림으로 묘사하였다. 역시 사당을 세우지 못하고 교의나 제사상 등의 가구가 없을 때, 지방을 쓴 후 여기에 붙여서 사용하였다. 이러한 관습은 불교 사찰에서까지 수용되어 고승의 초상 대신 위패를 커다랗게 그려서 대체하기도 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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