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4장 화조와 사군자에 담은 사대부의 이상
  • 1. 화조와 사군자의 의미와 심상
  • 도덕적 이상의 표상
  • 군자의 표상
백인산

군자(君子)란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일컫는다. 따라서 유교 문화권의 사대부들이 삶의 최종적 이상과 지표를 군자에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때때로 인간이 아닌 동식물에서도 군자의 품성과 덕성을 발견하고 상찬(賞讚)하며, 자신의 지향과 이상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 네 가지 식물을 사군자로 통칭하거나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일러 세한삼우(歲寒三友), 혹은 삼청(三淸)으로 부르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여러 식물들 가운데 군자의 상징으로 가장 먼저, 가장 빈번하게 회자(膾炙)된 것은 대나무였다. 『시경(詩經)』에서 위 무공(衛武公)의 풍모와 덕성을 기수(淇水)의 대나무에 빗대어 찬탄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춘추시대(春秋時代) 이전부터 대나무는 군자의 상징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나무는 수많은 시인 묵객(詩人墨客)에 의해 군자의 표상으로 상찬되면서, 대나무가 지닌 군자적 상징성은 조선 사대부를 위시한 동아시아 문인들의 문화적 심상(心象)으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된다.274)대나무의 전반적인 상징성에 관해서는 백인산, 「조선의 묵죽」, 대원사, 2007, 19∼37쪽 참조. 순조(純祖)의 국구(國舅)로 안동 김문(安東金門) 세도 정치의 초석을 열었던 인물인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죽설(竹說)은 조선 사대부의 대나무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글 중 하나이다.

대나무가 가진 덕이라 하는 것은 다섯이다. 첫째는 속이 비어 통하였다는 것이며, 둘째는 강한 재목이 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몸이 곧은 것이며, 넷째는 마디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섯째는 색이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대나무에는 두 가지 복이 있나니, 오래 산다는 것이 첫 번째요, 무리가 번성한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이에 군자가 대나무에서 구하는 것이 있으며, 대나무를 닮고자 한다. 대나무가 군자를 닮았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군자는 마음이 비어 있으니, 이에 가운데 있으면서 이치에 통달한다고 하였으며, 군자는 스스로 힘쓰니, 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굳세게 이겨 낸다고 하였으며, 군자는 의지하지 않으니, 이에 그 올곧음이 화살과 같다고 했으며, 군자는 지나치거나 등한히 하지 않으니, 이에 행함이 모두 절도에 맞는다고 하였으며, 군자는 구차히 꾸미지 않으니, 이에 의로움이 안색에 나타난다 하였다. 이것이 대나무가 군자를 닮은 것이다. 군자가 이런 덕을 가졌기에, 사람들이 반드시 사랑하고 기뻐하며, 그를 찬탄하는 것이다.275)김조순(金祖淳), 『풍고집(楓皐集)』 권16, 「죽설(竹說)」.

김조순은 대나무를 다섯 가지의 덕성과 두 가지 복을 겸비하고 있어 군자의 덕성과 복락을 모두 갖춘 존재로 상찬하고 있다. 두 가지 복은 장수와 자손의 번창이라는 다소 현세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이 역시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로 주장하면서 대나무의 군자적 풍모와 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나무에 못지않게 군자의 상징으로 자주 거론된 것은 매화였다. 매화는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모든 초목이 잎을 떨구고 있을 때 감연히 꽃을 피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매화의 이런 내한성(耐寒性)에서 고난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절개를 연상하였고, 매화의 곧고 굳센 가지에서 강직한 지사의 풍모를 느꼈다. 또한, 고아하고 담박한 꽃에서 문사의 아취를 찾았으며, 그윽하고 맑은 향기에서 개결(介潔)하고 고고한 은자의 초탈함을 떠올렸다.

이에 조선의 많은 사대부는 매화를 통해 자신의 정신과 의지를 규찰(糾察)하고 탈속 초연한 삶을 다짐하곤 하였다. 매화가 지닌 여러 덕성이 사대부가 지향해야 할 윤리적인 지표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인후의 다음 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매화의 풍격은 본디 속진을 넘어서니

메말라도 오히려 진실함을 지녔구나

철석같은 간장으로 바위를 마주하고

빙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을 드러낸다.276)김인후, 『하서집』 권7, 「매봉(梅峯)」.

매화의 군자적 품성을 사랑한 조선의 사대부로는 이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61세가 되던 날 도산 서당에 단(壇)을 만들어 매화, 소나무, 국화, 대를 심어 풍상계(風箱契)를 맺고, 여기에 연을 덧붙여 자신의 다섯 벗이라 하였다.277)박혜숙, 「조선의 매화시(梅花詩)」, 『한국 한문학 연구』 26, 한국 한문학회, 2000, 433쪽. 또한, 병이 깊어 설사를 자주 하자 매형(梅兄)에게 미안하다며 옆 에 놓아둔 매화분을 옮겨 놓으라 하고, 임종 직전 매화에게 물을 주라 명하였다는 일화에서 그의 깊은 매화 사랑이 읽혀진다. 그에게 매화는 삶의 동반자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관을 담지하고 체행(體行)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난초 또한 대나무나 매화 못지않게 군자의 표상으로 각광받아 왔다. 그 유래는 공자(孔子)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찍이 공자가 “지초와 난초는 깊은 숲에서 자라지만 사람이 없어도 꽃을 피우며, 군자는 덕을 닦고 도를 세우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를 바꾸지 않는다.”278)『공자가어(孔子家語)』 권5, 재액(在厄) 제20(第二十). 고 하였다. 인적 없는 심산궁곡(深山窮谷)에서 피어난 난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신의 도리를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군자의 참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이 너른 들에 난을 심어 놓고 자신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을 달랬다는 일화는 동아시아의 많은 문인에게 난의 군자적 상징성을 뚜렷이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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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희용의 화지군자(花之君子)
방희용의 화지군자(花之君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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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 상하걸(霜下傑), 상영(霜英), 절화(節花)라는 이칭(異稱)이 말해 주듯이 모든 꽃이 시든 늦가을에 추위를 이겨 내고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추위를 견뎌 내는 국화의 생태적 특징은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본분을 지켜 내는 군자나 충신의 덕목과 교융(交融)하면서 일찍이 사대부의 도덕적인 이상을 상징하는 식물 중 하나로 각광을 받게 된다.

세한삼우나 사군자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이에 못지않게 군자의 상징으로 상론되는 초목이 있으니 바로 연(蓮)이다. 흔히 연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자(儒者)들에게도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꽃으로 인식되었다. 진흙 속에서도 찬연히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속진(俗塵)에서도 품격과 절개를 잃지 않는 고고한 의취를 배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리학의 개조(開祖)로 추앙받는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을 지어 연의 군자됨을 상찬한 뒤, 조선의 사대부에게 연은 군자의 상징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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