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4장 화조와 사군자에 담은 사대부의 이상
  • 1. 화조와 사군자의 의미와 심상
  • 도덕적 이상의 표상
  • 은일의 표상
백인산

유교적 가치관 아래서 성장한 사대부의 최고 목표는 학문과 덕성을 함양한 후, 출사하여 세상을 경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대부들은 벼슬길에 나아가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할 때는 은일(隱逸)의 삶을 지향하였다. 특히, 세상에 도의가 무너지고 혼탁해졌을 때는 은일하여 자신의 본분과 절의를 지키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합당한 처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은일이 반드시 출사나 경세에 실패한 사대부의 대안적(代案的)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난 학문과 품격을 갖추었지만 세상에 나아가기를 바라지 않고 은일하는 것을 출사하여 현달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조선의 많은 사대부도 출사에 못지않게 산수간(山水間)에서 한유(閑遊)하는 은일을 이상적 삶의 형태로 인식하였고 자연과 자연물을 통해 은일의 이상을 표출하곤 하였다.

조선의 사대부에게 은일의 상징으로 가장 널리 회자된 상징물은 국화일 것이다. 국화가 은일의 표상(表象)으로 인식된 데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은일 시인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행의와 관련이 깊다. 그는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歸去來)하여 유유자적한 심경을 주옥 같은 시어로 읊어내곤 하였는데, 그중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꽃을 딴다(採菊東籬下).”라는 구절은 곧 도연명의 초탈한 삶을 보여 주는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많은 문인들은 국화를 통해 도연명이 추구하였던 은일자적한 삶과 세사에 초연한 오연한 정신세계를 희구하게 된다.

대나무도 은일의 매개체로 자주 상용되곤 하였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이다. 죽림칠현은 정치적 혼란기를 맞아 세속을 멀리하여 죽림에 모여 시(詩)ㆍ문(文)ㆍ금(琴)ㆍ기(碁)ㆍ청담(淸談)·술로 자오(自娛)하며 지냈던 현자(賢者)들을 일컫는 말로 둔세은일(遁世隱逸)의 대표적 인물들로 인식되어 왔다. 이로 인해 ‘죽림(竹林)’은 특정 지명이나 단지 하나의 공간적 개념의 의미를 넘어서 속진과 떨어져 명철보신(明哲保身)할 수 있는 문화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와 같이 국화나 대나무는 자체가 은일이나 한유의 의미를 뚜렷이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국화나 대나무로 인해 조성된 ‘동리(東籬),’ ‘죽림(竹林)’ 등의 공간적 배경은 곧 은일이나 한유를 상징하는 인문적 배경으로 전화(轉化)하여 항용되어 왔다. 조선의 사대부들도 국화나 대나무가 지니는 이러한 상징성에 깊이 공명하며, 문예의 소재로 적극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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