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4장 화조와 사군자에 담은 사대부의 이상
  • 2. 그림 속의 화조와 사군자
  • 조선시대 화조화의 특징과 의미
  • 조선 사대부의 성정을 닮은 수묵사의화조화
백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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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암의 화조구자도
이암의 화조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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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화조화풍은 중종 연간(1506∼1544)에 들어서면서 점차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채색보다는 수묵 위주의 사의성을 중시하는 사대부 화풍이 점차 유행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실 출신의 일부 문인 화가들은 여전히 조선 초기의 화조화풍을 견지하였으니, 두성령(杜城令) 이암(李巖, 1507∼1566)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주로 개나 고양이 같은 친숙한 동물을 그렸는데, 정세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궁정 취향의 화려한 채 색 화풍을 구사하였다. 새와 나비가 날아드는 꽃나무 아래, 강아지 세 마리가 한가롭게 노는 삼성 미술관 리움 소장의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가 대표적인 예이다. 배경을 이루는 꽃나무는 구륵전채(鉤勒塡彩) 기법을 사용하여 전형적인 공필의 화조화풍으로 처리한 반면, 주제가 되는 강아지는 정세하기는 하지만 몰골(沒骨)의 기법을 이용해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바위는 묵면 위주로 단순하고 간일(簡逸)하게 처리하여 여타의 경물과 차별된다. 전반적으로 온화하고 서정적이면서도 엄정함이 혼융된 독특한 미감은 궁정 취향의 초기 화조화풍이 사대부 취향의 화풍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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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속의 고매서작
조속의 고매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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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출신 문인 화가들의 호응으로 크게 유행하는 수묵사의화조화풍(水墨寫意花鳥畵風)의 대미는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68)이 장식하였다. 그는 수묵사의화조화의 대가답게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한 마리 까치를 그린 간송 미술관 소장의 고매서작(古梅瑞鵲)이 백미로, 조선 중기 수묵사의화조풍을 한층 세련되고 완숙한 경지로 격상시킨 작품이다. 일체의 배경을 생략하고 핵심적인 요소만을 포착하여 수묵 몰골의 간일한 필치로 옮겨 냈다. 그래서 언뜻 단순하게 보이지만, 작가의 심회(心懷)와 정취가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여기화(餘技畵)의 사의성(寫意性)을 중시하는 조선 중기 문인 화조화풍을 계승하고 있지만, 한층 숙련된 경지를 보여 준다. 담묵의 매화와 대비하여 농묵으로 그려 낸 까치는 몇 번의 붓질로 형상을 잡아 내었지만 까치의 양태와 의취를 정확히 옮겨 내었다. 당당하면서도 고고(孤高)해 보이는 자태는 청량한 매화의 짝으로 손색이 없다. 까치와 매화에 응축된 우주 자 연의 오묘한 섭리와, 작가의 고고한 품격과 운치가 잘 녹아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장식적인 화조화풍이 퇴조하고, 수묵 위주의 사의적인 화조화풍이 크게 유행한 데에는 당대의 이념적·문화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시기는 조선 개국의 국시였던 성리학이 점차 내면화되면서 성리학적인 의취와 미감이 중시되었고, 그것이 문예를 통해 본격적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통적으로 장식성이 강한 화조화에서도 문인화의 본령을 중시하여, 담백하면서도 강직한 취상과 미감을 간명한 구도와 소방(疏放)한 필치로 구현할 수 있었다. 중종대 도학 정치를 추구했던 사림들로부터 수묵사의화조화풍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조선 성리학을 정립한 율곡계(栗谷系) 문인인 조속이 대단원을 장식하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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