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2장 광고로 본 근대 풍경
  • 2. 일제 강점기 광고와 식민주의
  • 광고를 잠식한 일본 제국주의
성주현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광고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략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함께하고 있다. 『한성주보』에 실린 세창 양행의 첫 광고는 아무런 도안도 없이 한문으로 쓰여 있었다. 이 광고문은 우리나라에서 사려는 물품을 열거하는 동시에 값싸고 정직한 가격으로 서구의 물건을 팔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단순한 광고는 최초의 근대적 광고라는 의미 외에도 당시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려는 제국주의 경제 활동의 일환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정부는 이미 세창 양행 광고가 실렸던 1886년 1월에 세창 양행으로부터 12년 상환 조건으로 은 10만 냥을 빌렸고, 이듬해에는 양화 3만 4150원 상당의 각종 기재를 외상으로 수입하는 등 경제적으로 심각한 종속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광고는 민간 차원에서 침략적 제국주의 경제력의 지배를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한말 광고 상황은 3·1 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 정치 아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민간 신문이 창간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 았다. 제1차 세계 대전을 통해 양적·질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한 일본의 광고에는 훨씬 다양하고 기발한 상품 광고가 등장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경제적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광고가 일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는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이 일본의 상품 시장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광고를 게재할만한 큰 광고주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1920년대 신문 광고의 양적 구성 비율을 보면 국내에서는 의약품 광고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던 데 비하여 일본에서는 일상 용품뿐만 아니라 은행, 기계, 측량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광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현대적 디자인과 카피가 돋보이는 스모가 치약 광고를 비롯하여 인단(仁丹), 아지노모도(味の素), 모리나가(森永), 카오(花王) 등 당시 광고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브랜드 상품이 대부분 일본 제품이어서 시각적으로도 일본 광고에 비해 열세였다. 특히 스모가 치약 광고는 단순하고 간결한 일러스트레이션에 흰 여백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참신한 감각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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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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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내 신문에 일본 광고가 본격적으로 실린 것은 일본 상품의 소비가 급증하는 1920년대 중반이었다. 이는 일본 상인들이 광고의 가치를 인식하였기 때문이지만 각 신문사에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광고주 확보 경쟁이 치열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당시 광고 수입은 신문을 경영하는 중요 재원이었기 때문에 각 신문사에서는 광고 수입을 전담하는 지국(支局)을 일본 도쿄나 오사카 등지에 설치하고 광고주 확보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신문사에서는 일본 광고주들을 식민지 조선으로 초청하여 금강산을 비롯한 명승지를 탐방토록 하는 등 다양한 판촉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민족 언론’을 자처하던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를 일본의 상품 시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다음의 글에서 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에 누구는 조선의 신문이 동경, 대판 물건만 광고해서 조선 사람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니 죄악이라고 했지만, 죄악 여부는 두어 두고 좌우간 그것이 없고는 오늘날 신문 경영이 어렵다. 원래 신문이라는 것은 광고가 주요 수입이 되는 것인데, …… 조선 토착 상공업자로서는 아직 신문 광고계에 진출할만한 대업자가 없고 동경, 대판서 나는 물건을 입고 쓰고 하니 조선 상공업의 미발달 때문이다. 그런고로 물산 장려를 암만 할래도 성냥 대신 부싯돌을 쓸 수는 없는 일인데 …… 동경, 대판 광고 싣는 것도 어쩔 수 없다.126) 무명거사(無名居士), 「조선 신문계 종횡담(縱橫談)」, 『동광(東光)』 28, 1931년 12월,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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