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2장 광고로 본 근대 풍경
  • 2. 일제 강점기 광고와 식민주의
  •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를 조장한 광고
성주현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서 제작된 광고는 ‘광고 검열’이라는 제도로 이중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원래 광고량이 증가하면서 기승을 부렸던 과장 광고, 허위 광고, 저질 광고 등을 규제하기 위하여 광고를 단속하였지만 언론 탄압 차원에서 광고를 통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광고 규제는 식민지 지배 정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일제의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는 동화(同化)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일본과 조선 간에 차별적 정책을 펴나갔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의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은 늘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를 반영하고 이를 그대로 보여 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인 광고에서도 이러한 식민지 상황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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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탕 광고
중장탕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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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광고에서 흔히 소비자를 선동하는 ‘우리’라는 표현은 양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광고에 나타난 ‘우리’라는 표현에서 그 주체가 식민지 조선일 경우와 일본일 경우는 더욱 불투명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국산 명약”임을 강조하는 중장탕(中將湯) 광고에서 ‘국산’은 약을 들고 웃음을 짓는 일본 여인만큼이나 명백하게 조선 제품이 아니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카피를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국내에 들어온 일본 광고는 상품 선전이라는 광고 본래의 기능보다는 일제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우선 수행하였다. 이러한 예는 맥주 광고에서 잘 나타나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국산’임을 내세워 조선인의 정체성을 소멸시키고 일본의 한 구성원임을 인식시키고 있다. 1933년 5월 6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쿠라 맥주 광고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이 맥주는 일본과 조선을 똑같이 짙은 색으로 표식하여 일본의 영토를 나타내고, 나아가 “동양의 맹주 일본! 동양의 명주 사쿠라”라는 카피를 쓰고 있다. 결국 이 시원한 사쿠라 맥주를 마시면서 조선은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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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맥주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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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맥주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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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맥주 광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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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광고의 이미지를 활용해 식민지 피지배인의 국가 이미지를 조선이 아닌 일본으로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모리나가(森永) 밀크 캐러멜 광고는 어린이가 일장기를 높이 들고 “우리의 기운은 일본의 기운, 캬라멜을 먹었더니 기운이 더 난다.”라는 카피를 통해 어릴 적 부터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인식을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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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 광고
캐러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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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광고를 통한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의 조작은 1930년대 중반 전시 체제기에 들어 더욱 노골화되었다. “집마다 일장기 집마다 아카다마(赤玉) 포토와인”이라는127) 『조선일보』 1930년 1월 19일자. 카피와 일장기를 그려 넣은 아카다마 포토와인 광고를 비롯하여 “횡폭 적군의 응징은 폭탄으로 하지만 설사·복통의 폭격은 헤루푸로, 그리고 폭격 후에는 복중을 명랑화하고 장위 기능을 강화한다.”라는128) 『매일신보』 1927년 11월 6일자. 헤루푸 광고, “캬라멜로 싸우고 있다. 아기의 성장을 방해하는 조악한 과자, 불결한 과자, 묵은 과자는 캬라멜의 적이다. 적군을 격멸하여 아기의 영향을 지켜줍시다.”라는129) 『매일신보』 1937년 12월 11일자. 모리나가 캐러멜 광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상징 또는 전투적이고 선동적인 표현을 통해 식민지 조선과 지배국 일본을 동일화하고 있다. 결국 이들 광고에서의 ‘우리’에는 조선인이 들어설 틈새나 조선인으로서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130) 이기리, 「일제시대의 광고와 제국주의」, 『미술사논단』 13, 한국미술연구소, 2001, pp.132∼134.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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