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2장 광고로 본 근대 풍경
  • 2. 일제 강점기 광고와 식민주의
  • 서울 거리의 간판 품평회
성주현

일반적으로 광고물이 불특정 다수에게 상품을 알리고자 하는 홍보 차원이었다면, 간판은 상품 거래가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광고에 더 가깝다. 즉 간판은 ‘상품을 광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었다. 간판은 근대 이전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활용되고 있는 광고의 하나이다. 『별건곤(別乾坤)』에는 간판과 관련하여 ‘경성 각 상점 간판 품평회’라는 재미난 글이 소개되고 있는데, 당시 경성의 유명한 상점 간판을 다음과 같이 품평하고 있다.

당시 유명했던 백목옥 양품점(白木屋洋品店) 간판에 대해서는 “위치는 약간 동남향일뿐더러 넓은 십자로가 앞으로 비끗하게 있고 상점 건물로는 협착한 편이나 간판의 효과로 인하여 도리어 그 협착한 푼수가 서툴게 눈에 띄지 않음으로 위치 또는 도로의 형세로 어디에서 보던지 원거리에서 통행인의 시선에 잘 보이도록 하는 것이 득책이다.”하여 간판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아 광고의 효과가 적음을 지적하고 있다. 관혼상제 용품을 파는 혼상구영여축산목공장(婚喪具靈轝築産木工場) 간판은 상여(喪轝) 모습을 한 두 개의 단청 목편은 “무언의 간판”이라고 하여 상점의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품평하였다. 그리고 여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동아 부인 상회(東亞婦人商會) 간판에 대해서는 “상점의 상품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쓴 듯한 간판이 적은 것 같으며, 될 수 있는 대로 조선풍을 이용한 것이 조금 친절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색채가 너무 복잡하여서 길 가는 사람의 순간적인 시선에 촉감이 달하지 못하고 따라서 괴롭게 하는 느낌이 없을까 한다.”라고 적고 있다. 동양 제약사(東洋製藥社) 간판에 대해서는 “그 조그만 간판에 그대로 ‘약’이란 글자 하나만 썼으니, 띄기는 얼른 띄지만 미관상으로 좋을까요, 나는 미의식에 결핍한 사람이지만,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낫습니다. ‘약’이라는 글자에 외곽의 청선으로 퍽 만은 공과가 있는 줄 압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간판다운 ‘간판’이라고 보지 않을런지요.”라고 평가하였다.

그 밖에도 덕흥 서림(德興書林), 동양 서원(東洋書院), 박문 서관(博文書館), 영창 서관(永昌書館) 등 서점의 간판은 대체로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보잘것없으며, 화평당 약방(和平堂藥房) 간판은 시대착오의 간판으로 웃음거리에 불과하다고 인색하게 평하였다. 이에 비해 복도 상점(福島商店) 간판에 대해서는 “퍽, 예리한 뇌수를 가진 이의 수단으로 된 간판이올시다. 그것은 애초의 복도 상점의 간판을 삼색선을 건너지른 그 위 ‘원가 제공’이라고 쓴 간판을 가리워 버린 것, 그 간판 자체의 색조라든지 선이라든지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시세를 따라서는 본래 있어야만 할 것을 가리워 버린 용단! ‘씩-슨’ 에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을 해야 고객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듯싶은 것이다.”라고 하여 매우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 밖에 유명한 상점의 간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품평하기도 하였다.

식도원(食道園) : 격에 그저 맞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국 정서를 자아내야 족대친구(足袋親舊)를 끌 수 있으니.

백 상회(白商會) : 내가 보든 중에 가장 나쁜 편이라고 하고 싶다.

금강 상회(金剛商會) : 대관절 이렇게 큰 집에 그 간판 가지고서 친할 맛이 생길까요. 쓸데없이 번잡한 것은 그 결과가 추할 밖에 없다. 도리어 그렇게 단조로운 것이 낫을 것 같지만 시기가 시기라, 간판의 효력이 클 것 같은데.

천일 약방 황금정 지점(天一藥房黃金町支店) : 식도원 간판과 비슷하나 좀 고품적인 것 같다.

영성 양화점(永成洋靴店) : 그림에 이상한 맛이 있어 천하지도 않고 그럴듯하게 보이니 성공이겠지요.

화신 상회(和信商會) : 아주 추물은 아닌 줄 안다. 황금색 바탕 큼직하니 그럴 듯하다. 자신이 있어 보이고 이름 널리 난 상점의 간판답다.

김흥호 판매점(金興鎬販賣店) : 잡다한 형식으로 특이하나 야만인 장신술 과 우열이 없다.

선시 백화 상점(先施百貨商店) : 필요 없어 보이는 그림으로 필요 있도록 만드는 것도 좋겠지요. 정말 곡선적으로 휘휘 돌아서 드난 것도 상점 간판으로서 한 수단이다.

조일 양복점(朝日洋服店) : 바로 일본풍이 뚝뚝 든다.133) 「경성각상점 간판품평회(京城各商店看板品評會)」, 『별건곤』 3, 1927년 1월, pp.1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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