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2장 광고로 본 근대 풍경
  • 2. 일제 강점기 광고와 식민주의
  • 재미있는 지상 미인 대회
성주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텔레비전을 수놓았던 미인 대회의 대표 격인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가 이제는 공중파 방송에서 퇴출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는 1957년 5월 19일 서울 시립 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첫 선발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에는 “대한 여성의 진선미를 세계에 자랑할 미스 코리아 선발”이라는 카피가 여인의 마음을 유혹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첫 미인 대회는 언제 있었고, 어떻게 뽑았을까?

1920년 11월 2일자 『매일신보』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하나 게재되었다.

본사 연초를 사랑하시는 제위여. 무엇으로써 만족한 위로를 하여 드릴까요. 첫째는 이성적으로 신제품 수종을 제조하여 배전 이용하시도록 하옵고, 둘째는 제의의 흥미를 돕기 위하여 진실로 취미 있는 미인 투표를 거행코자 하오이다. 다수 찬성하시압. 또한 미인 여러분께는 다만 명예 있는 월계관을 취하시도록 하는 바이오니, 이를 기회로 하여 실기(失機)치 마시오.

이 광고는 담배를 제조 배급하는 조선 연초 회사(朝鮮煙草會社) 원매팔소(元賣捌所), 동익사(東益社), 장곡천 상점(長谷川商店)에서 공동으로 낸 광고로, 아마도 첫 미인 대회 광고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성이면 누구나 미인 대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인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피선인(被選人)으로는 당시 화류계로 유명하던 한성 권번(漢城券番), 한남 권번(漢南券番), 대정 권번(大正券番), 경화 권번(京和券番), 대동 권번(大同券番)에 속한 기생으로 제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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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대회 광고
미인 대회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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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기생이라 하면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를 가지고 흥을 돋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여성을 일컫는다. 1909년 관기(官妓) 제도가 폐지되고 기생들이 요릿집으로 몰림에 따라 기생 조합(妓生組合)이 생겨났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 명칭인 권번(券番)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권번이 하는 기능 중의 하나는 전통 예능 교육이었다.

미인을 뽑을 수 있는 투표권이 모든 담배에 들어 있지는 않았다. 조선 연초 회사에서 제조하는 금종표(金鐘票), 피종표(p-geon票), 피라미드표(pyramid票) 등 세 종의 담배에 한정하였다. 금종표는 3점, 피종표는 3점, 피라미드표는 1점으로 하여 담배 안쪽에 있는 투표지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기생의 이름과 권번을 기록하여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투표 장소는 앞의 다섯 곳의 권번을 포함하여 경성 권번 등 6개소의 권번과 양문환 상점(梁文煥商店)·명월관 지점(明月舘支店)·해동관(海東舘)·김윤영 상점(金允英商店) 이었다. 투표 기간은 1920년 11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40일이었고, 매일 투표 결과를 취합하여 『매일신보』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경품으로 1등은 금시계와 금시계줄, 2등은 금비녀, 3등은 금가락지, 4등은 금귀이개, 5등은 금창포첨(金菖蒱尖), 6등은 금이화첨(金利花尖), 7등은 청수삼팔(淸水三八), 8등은 사(紗)목도리, 9등은 손가방, 10등은 면경(面鏡)을 각각 내걸었다.

첫 투표를 집계한 11월 4일분 발표에 의하면 김옥진(대동) 226표, 한연홍(대동) 30표, 이계월(한성) 24표, 한명옥(대동) 21표, 한용주(대동) 15표, 길진홍(대정) 13표, 최추월(대정) 12표, 김도화(대정) 12표, 김산옥(대동) 12표, 김춘외춘(한성) 10표, 김검홍(경화) 10표의 순위였으나 투표 10일째인 14일까지 누적된 집계에는 이계월이 885표, 김봉선(한성) 759표, 양경월(한성) 741표, 신채선(대정) 703표, 김옥진 631표, 김도화 601표, 장검화(대동) 516표, 김가패(한성) 501표, 홍경심(한성) 366표, 한용주(대동) 363표로 새로운 인물이 적지 않게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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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김영월
기생 김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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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2월 12일자에 발표된 최종 집계에서는 강춘홍(대정) 1만 4595표, 김옥진 1만 2060표, 김봉선 1만 0337표, 양경월 8,736표, 김도화 8,235표, 한용주 7,678표, 홍경심 5,748표, 김가패 2,427표, 한명옥(대동) 2,138표, 이계월 2,080표로 이들이 모두 수상권에 들었다. 등외로 1,000표 이상 얻은 미인으로는 박계화(대동), 유화중선(대동), 현산월(한성), 김산월(대정), 신채선(대정), 박점홍(대정), 강향난(한남), 황국향(한남) 등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소위 장안에서 내노라고 하는 미인 기생이었을 것이다. 등외이지만 한남 권번의 강향난(姜香蘭)은 대구 출신으로 본명이 강석자(姜石子)였으며, 14세에 기생이 되어 가야금, 병창, 법고, 정재무(呈才舞), 선남중리요(善南中俚謠) 등의 기예로 한남 권번 소속 기생 중 으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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