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2장 광고로 본 근대 풍경
  • 2. 일제 강점기 광고와 식민주의
  • 광고 도안 현상
성주현

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점차 광고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짐에 따라 광고 도안 현상 공모가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1926년 11월 3일자 『동아일보』에 ‘본보에 게재할 현상 도안 광고’라는 제목으로 3단 크기의 박스 광고가 실렸다. 이 현상 공모 광고는 광고에 대한 인식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대저 광고라는 것은 그 영업과 상품 등을 도안(圖案) 또는 문안(文案)으로 가장 조화적 색채로 나타내는 민중 예술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이것을 흔히 광고술이라고 합니다. 광고술이 발달되지 못하였던 시대에는 수지상상(收支相償)과 효과다소(効果多少)를 생각지 아니하던 자각(自覺) 없는 그것이었음으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적어도 영리적 관념 아래서 명확한 타산적으로 자기의 영업과 상품을 선전한다 하면 광고가 절대로 필요한 동시에 광고술의 중요함을 느끼게 됨은 지금 말하지 않아도 요연한 사실입니다. 광고술에 따라서-다시 말하면 광고의 도안과 문안 여하에 따라서는 하나의 비용으로 둘의 효과도 얻을 수 있는 것이요, 둘의 비용으로 하나의 효과도 얻지 못하는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광고술이 중대한 ‘힘’을 가진 까닭으로 선진한 여러 나라에서는 웬만한 상점이면 전문 지식을 가진 도안가를 둔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대규모의 데파트멘트 같은 데는 광고부 점원이 백 명 이상이나 되어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광고 도안과 문안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연구도 하며 토의도 한다고 합니다. 그것으로만 미루어 보아도 광고 정책에 있어서 문안과 도안이 어느 만큼 필요하 고 또 중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 광고계가 이러한 정도에 이름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장래의 진흥과 발달을 희망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좀 더 자신 있는 광고를 제공하여야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의 광고계는 한심할 만치 유치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사 광고부에서는 항상 이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오던 중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기어코 이를 진보케 하겠다고 연구한 결과 이번에 별항과 같은 규정 아래서 오는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현상 도안 광고를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1년에 두 번 또는 세 번씩 이와 같은 도안 광고를 게재하면 혹은 많은 발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우리 계획하는 바가 조선 광고계의 장래를 위하여 한 걸음 두 걸음씩 발전함에 한 조각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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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도안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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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 도안 광고는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 동안 신문에 실렸던 광고를 대상으로 투표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투표 방식은 오늘날 각 신문사에서 연말에 실시하고 있는 광고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투표 방식은 변경되어 11월 13일자 신문에만 한정하여 현상 광고 45개를 게재하였 다. 그 결과 1등은 경성 방직 주식회사(京城紡織株式會社), 2등은 동아 부인 상회(東亞婦人商會), 3등은 화평당 약방(和平堂藥房)이 각각 차지하였다. 45개의 응모 광고 중에는 일본 축음기 상회 등 일본 회사 광고도 있었으나 하나도 입상하지 못하였다. 이는 『동아일보』의 독자가 한국인이고, 여기에 민족 감정도 보이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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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회사의 현상 공모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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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회사의 현상 공모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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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모범 매약 상회(模範賣藥商會)는 『매일신보』 1916년 12월 9일자에 자사의 삼용보익수(蔘茸補益水)를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광고문 현상 모집을 게재한 바 있다. 삼용보익수는 위약성, 소화 불량, 뇌신경 부족 등에 처방하는 일종의 보약이었다. 삼용보익수의 광고문 현상 모집은 문자나 도화(圖畵) 등을 포함하여 12월 말까지 기한을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광고 도안을 공모한 것이다. 그러나 현상 공모에 대한 호응이 예상보다 적자 1917년 1월 7일 마감 기일을 한 차례 연장하는 광고를 게재하였고, 2월 17일자에 당첨자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후 삼용보익수 광고에 현상 공모한 문안이나 의장이 전혀 반영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기대하였던 만큼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모범 매약 상회는 1920년 6월 16일자 『매일신보』에 다시 한 번 삼용보익수에 대한 광고 의장 현상 모집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 광고 역시 두 차례 마감 시한을 연기한 끝에 8월 18일 최종 당선자를 발표하였다. 이후 삼용보익수 광고는 기존 광고와 달리 좀 더 세련된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와 같은 광고 도안 현상 공모는 1938년과 1939년 『동아일보』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동아일보』는 두 차례에 걸쳐 ‘전조선 상업학교 생도 상업 미술 전람회 포스터 신문 광고 도안 대모집’이라는 행사를 통해 광고 발전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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