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2장 광고로 본 근대 풍경
  • 3. 근대 소비 문화와 광고
  • 근대 광고에 나타난 상품의 유형
성주현

개화기에서 1930년대까지 신문과 잡지의 광고에 등장한 상품은 오늘날과 같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유형별로 나누면 의약품, 장신구, 화장품, 담배·술 따위의 기호 식품, 의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상품 광고의 유형을 정리하면 표 ‘근대 신문 광고에 나타난 상품 광고의 유형’과 같다.

<표> 근대 신문 광고에 나타난 상품 광고의 유형
시기
상품
1900년 이전 1900년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합계
의약품 22 216 185 463 890 1,776
장신구 3 47 140 223 118 531
화장품   30 17 114 149 310
기호 식품 14 54 16 48 82 214
의류 5 32 16 50 100 203

근대 신문 광고에 등장한 상품은 의약품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 뒤를 모자·양산 등 장신구, 화장품, 기호 식품, 의류가 잇고 있다. 예를 들어 의약품의 연도별 광고 추이를 살펴보면 광고 초창기인 1900년 이전에는 22건에 불과하였지만 1920년대를 거처 1930년대에 이르면 890건으로 늘어나고 있어, 이 시기 최대의 광고주였음을 보여 준다. 특히 1910년대는 장신구 광고가, 그리고 1920년대는 화장품 광고가 크게 신장하고 있어 사람들이 몸에 대한 인식을 점차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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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 치료제 광고
성병 치료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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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광고로는 신문에서는 성병 치료제가 가장 많았고, 이어 자양 강장제, 소화기류, 부인용제, 진통 소염제, 비뇨 생식 기관 및 항문제, 호흡기류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잡지에서는 자양 강장제, 성병 치료제, 부인용제의 순으로 광고 지면을 장식하였다. 성병 치료제는 1900년대 이후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1920년대에는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고, 소화기류는 1900년대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다가 이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는 화평당 약방의 팔보단, 제생당 약방의 청심보명단, 동화 제약의 활명수 등 건위 소화제가 근대 초기 의약품 광고의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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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광고
화장품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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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회생수, 소생단, 자강단, 자양환, 자양복원단 등 자양 강장제류의 광고가 1900년대부터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는 우리나라 의약품의 역사와도 함께하고 있다. 1900년대 이전 의약품 광고에서는 주로 ‘만병통치’라는 용어를 내세운 것이 흥미로운데, 이는 약효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근대에 가장 많이 광고한 의약품 중의 하나가 성병 치료제인 것을 보면 당시에 성병이 크게 만연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성병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까닭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여온 공창 제도(公娼制度) 및 유곽(遊廓)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곽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함께 1902년 부산의 일본인 거류 지역에 처음 생겼다. 이후 인천·원산·서울 등으로 퍼져 나갔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의 도시에 유곽이 성행하였다.

화장품 광고로는 기초 화장품이 가장 많았다. 이어 목욕용품, 두발용품, 메이크업 제품 순으로 신문 광고가 많았다. 잡지 역시 기초 화장품이 가장 많았으며, 염모용 제품과 두발용 제품도 적지 않았다. 기초 화장품으로는 구라부 미신(美身) 크림과 같은 크림과 화장수 광고가 가장 많았고, 메이크업 제품으로는 박가분을 비롯한 각종 백분이 화장품 광고의 대부분을 차 지하였다. 그 밖에도 포마드를 비롯한 두발용품과 염색약 광고도 자주 등장하였다. 목욕용품으로는 화양 비누 등 비누 광고가 비교적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1900년대 초에는 목욕용품이 기초 화장품보다 더 많이 광고에 등장하였는데, 이는 비누가 아름다움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기호품 광고로는 신문에서는 유아용 분말 우유가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였으며, 이어 외국산 담배와 국산 담배가 비교적 높은 비율을 점유하였다. 그렇지만 잡지에는 맥주가 가장 많이 등장하였으며 유아용 분말 우유가 그 뒤를 이었다. 유아용 분말 우유는 ‘엄마 젖보다 더 좋은’ 또는 ‘모유와 같은’이라는 카피를 주로 내세운 일본 제품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오늘날 광고 카피와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또한 와인, 맥주 등 다양한 술 광고도 소비 대중을 유혹하였다. 특히 아카다마 포토와인 광고는 세련된 일러스트와 카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맥주 광고로는 삿포로 맥주가 자주 등장하였다. 담배 광고는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주요한 광고원이었으나 이후 점차 다른 광고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담배 광고로는 일본산·영국산·미국산이 비교적 많았고, 조선 연초 주식회사에서 만든 담배 광고도 적지 않았다.

의류 광고로는 신문에서는 옷감을 소개하는 광고가 가장 많았고, 남성 양복, 여성 양복, 유아용 아동복과 이너웨어도 적지 않게 등장하였다. 잡지에서는 남성 양복, 옷감, 캐주얼 순으로 등장하였다. 옷감 광고의 경우 경성 방직이 가장 많았는데, ‘우리 옷’ 또는 ‘우리 옷감’이라는 카피로 민족 기업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근대적 모습을 갖춘 모던 보이, 모던 걸 등이 등장하면서 패션용인 장신구가 필수적이었다. 이에 따라 양복, 제화, 모자 등의 수요가 급증하였고 경쟁도 치열하였다.

장신구 광고로는 신문에서는 제화, 시계, 모자, 안경 순으로 많았고, 잡지에서는 제화, 모자, 시계, 만년필 순이었다. 그렇지만 1900년대 이전에는 모자와 제화 광고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192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장신구 용 상품이 광고에 등장하여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유혹하였다. 장신구 중 만년필은 사회적 성취감을 드러내는 필수품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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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과 구두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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