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1권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 제1장 미술의 탄생
  • 5. 미래의 미술을 위하여
윤세진

20세기 초에 등장한 다다(Dada)는 ‘반(反)미술’과 ‘반(反)미학’을 공공연히 표방하였고, 개념 미술을 위시한 1960년대 이후의 여러 미술 집단은 기존의 미술 담론과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활동의 일부로 간주하였다. ‘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미술 제도, 미술 담론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과 함께 미술을 전면적으로 다시 사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미술의 지형도는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한 쪽에서는 ‘걸작들의 역사’가 숭배되지만, 또 한 쪽에서는 삶과 미술의 거리를 무한히 좁히려는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매체와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추동(推動)하는가 하면, 거꾸로 새로운 철학적 담론이 전례 없는 미술적 실험을 생산하기도 한다. 이처럼 오늘날 미술 개념과 미술에 대한 인식은 리좀(rhizome)처럼 무한하게 분기, 증식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술의 탄생을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푸코의 말을 빌리면, “사유는 스스로의 역사를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유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침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미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 술의 탄생, 즉 그 기원을 묻는 것은, 그럼으로써 미술에 대한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다른’ 미술을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새롭게 탄생한 미술을 둘러싸고 이후 100년간 다양한 제도와 담론이 양산되었으며, 그 지층 위에서 미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리고 100여 년 전처럼 현재의 우리는 또 다른 가시적 제도와 담론 속에서 미술을 인식하고 소비한다.

중요한 것은, 미술은 기원에서부터 현실적 의무를 짊어지고 탄생하였으며, 자신의 물적 토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즉, 미술은 사회적·경제적·문화적 배치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할 뿐 아니라, 때문에 그 자체로 현실적 발언일 수 있다. 미술의 탄생이 기존의 사물을 아주 낯선 방식으로 포획하고 의미화하였듯이, 아직 오지 않은 또 다른 미술의 탄생은 현재의 사물을 다르게 질서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미술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미술’을 위한 새로운 장(場)을 형성하는 것일 터이다. 때문에 이질적인 실험들이 공존하는 풍요로운 미술의 미래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다른 학문 및 예술과의 가로지름, 여러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섬세한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과 실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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