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1권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 제2장 미술가의 자의식
  • 1. 미술가의 탄생
김이순

미술 분야는 지난 100년 동안 그 이전의 어느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를 겪었다. 우선 용어부터 살펴보면 ‘서화(書畵)’ 대신 ‘미술(美術)’이 통용되었고, 더불어 미술에 종사하는 사람을 화원(畵員)이나 화사(畵師)가 아니라 ‘미술가’라 부르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용어나 호칭의 문제를 넘어 근대적인 인식 체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우선, 근대 사회에서 미술이 독립된 분야로 인식되면서 미술은 새로운 가치 개념을 띠게 되었고, 기술이나 산업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독립된 영역으로 자율성을 획득하였다. 이러한 영역에 종사하는 미술가도 독자성을 가질 수 있었다. 점차 일반인과 다른 ‘창조자’라는 인식이 생겼으며 미술가의 사회적 위치도 자연스럽게 격상되었다. 이 글에서는 변화된 근대 사회에서 미술가들 스스로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문학가들과 달리 미술가들은 자신의 의식 세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경우가 거의 없어 이러한 논의를 전개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각 미술가들의 자화상을 비롯한 대표적인 작품을 통해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근대 이전의 미술가과 근대 미술가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은 미술가로서의 자의식(自意識)이다. 미술가 스스로의 의식을 미술 표현에서 중 요하게 생각하면서 창작에 몰두하는 이미지는 전통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술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수요자나 후원자의 요구와 취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근대 미술가의 자아인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미술 창작의 주도권이 미술가에 있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창작의 태도 차원에서 근대적 시각을 작품에 어떻게 구사하였는지, 또 미술가 스스로의 자의식이 작품에 어떻게 투사되었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10년대 들어서면서 미술가들은 전통 화원과 분명히 구별되는 미술가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된다.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세대의 등장과 미술 강습소 설립과 같은 외형적인 변화 이외에도, 예술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은 1919년 『학지광(學之光)』에서 “예술은 인생의 정신이요, 사상이요, 자기를 대상으로 한 참사랑”이라고 한 언급에서,65)김동인, 「소설에 대한 조선 사람의 사상을」, 『학지광(學之光)』 18호, 1919, 46쪽. 사회적으로 이미 예술을 작가의 정신이 반영된 창작 활동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 미술을 독립된 장르로 인정하고 또 개인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면서 미술가들은 무엇보다도 개성(個性)과 창의성(創意性)을 중시하게 되었다.

지난 100년간 미술의 흐름을 보면, 수요자의 요구보다는 미술가의 자의식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시기마다 다양하게 나타났다. 미술가들은 정신성과 주관성을 중시하였는가 하면, 전통 미술과 가치관을 부정하면서 아방가르드(avant-garde)로 남고자 하였으며,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미술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미술 자체보다 사회나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이를 미술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미술가들이 고정관념(固定觀念)을 깨고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표현 매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화가, 조각가와 같은 호칭 이외에도 행위 예술가, 설치 작가, 비디오 아티스트, 심지어 시각 예술 종사자, 문화 참여자 같은 호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근현대 미술가들의 자아인식은 미술의 개념 변화와 함께, 미술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변화, 미술품 주문자나 수집가의 의식 변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적 공간과 미술 교육 기관의 등장 등, 다양한 요소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이 밖에도 미술가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미술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 또한 미술가의 자의식 형성에 매우 중요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을 아우르면서 전통적인 개념으로 논의할 수 있는 미술가부터 현대적인 개념으로 논의할 수 있는 미술가까지 이들의 자의식과 창작 태도를 살펴볼 것이다. 우선 근대기에 활동한 미술가들의 경우는 전통 화단의 미술가와 서양화를 배워 온 미술가를 나누어 언급하고, 현대 미술가들 중에서는 전위적인 의식이 강했던 미술가와 현실 참여 의식이 강했던 미술가로 나누어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성의 미술 개념은 물론 미술가로서의 존재조차 전복하려는 이단자적(異端者的)인 미술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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