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1권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 제3장 미술과 관객이 만나는 곳, 전시
  • 2. 광복 이후 현대 화단과 미술의 변화
  • 화랑의 활성화와 전시 공간의 다양화
목수현

광복 이후 1950년대까지 전시 공간은 크게 바뀌지 못하였다. 공공 전시장으로는 이왕가 미술관을 이은 덕수궁 미술관과 조선 총독부 미술관을 이은 경복궁 미술관이 있었고, 그 밖에 화신 백화점의 화신 화랑과 미쓰코시 백화점을 이은 동화 백화점 화랑, 그리고 미도파(美都波) 백화점의 전신으로 미쯔이 백화점(三井百貨店)을 이은 중앙 백화점 화랑이 있었을 따름이다. 여기에 더해 중앙 공보관이나 국립 도서관 화랑이 활용되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상업 화랑으로는 1949년에 대원 화랑(大元畵廊)이 문을 열었으며, 1950년대에는 천일 화랑(天一畵廊)이나 명동 화랑(明洞畵廊)이 명맥을 겨우 잇고 있었다. 소공동의 반도 호텔 내에 1956년에 반도 화랑(半島畵廊)이 신설되었고, 1970년대에 들어 국가 경제의 활성화와 유휴 자본으로 말미암아 미술 시장이 확대된 데에 힘입어 현대 화랑(現代畵廊) 등 상업 화랑이 속속 등장하였다.175)이구열, 「한국의 근대 화랑사(畵廊史)」 6, 『미술 춘추』, 미술 춘추사, 1970년 7월호, 4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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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호텔
반도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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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봄 현대 화랑이 개관한 것은 미술 시장과 화랑이라는 전시 공간의 신호탄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화랑은 1900년대 정두환 서화포(鄭斗煥書畵鋪)나 동화 화랑 등으로 맥을 이어 오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미술 시장의 형성과 맞물려 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미술 시장의 형성이라는 경제 상황과 더불어 상업 화랑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의 일이었다. 1970년대에 미술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베트남 전쟁 특수(特 需)로 경기가 부양된 이후 중동에 진출한 건설 업체가 벌어들인 오일 달러로 말미암은 국내 경제 규모의 확대, 그리고 산업화와 함께 아파트가 보급되면서 일어난 주거 양식의 변화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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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미술관
경복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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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
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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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화랑은 기본적으로 미술품 거래를 통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공공 미술 기관이 기획전을 풍부하게 일구어 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는 작가들의 회고전(回顧展)이나 외국 작품 전시 등 다양한 미술 전시를 끌어내는 역할도 맡았다. 1970년 현대 화랑은 박수근(朴壽根) 작고 5주년을 맞아 박수근 유작전(遺作展)을 개최하였고, 이어 이중섭(李仲燮) 유작전(1972), 김환기(金煥基) 회고전(1978) 등 대규모 추모전(追慕展)을 잇따라 열었으며, 문화 화랑(文化畵廊)은 이인성(李仁星) 유작전(1977)이나 권진규(權鎭圭) 회고전 등을 개최하였다. 근현대 미술사의 중추적 역할을 한 작가들의 회고전은 상업 화랑이 단순히 미술품 판매뿐만 아니라 중요한 기획전을 여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전시는 박수근, 이중섭, 이인성 등의 작가들 생애와 작품이 일종의 신화처럼 근현대 미술사에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공공 미술관은 주로 상설 전시를 중심으로 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대형 기획전이나 의미 있는 기획전도 활발히 마련하였다. 1969년에 설 립된 국립 현대 미술관은 처음에는 경복궁 미술관을 사용하다가 1973년에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하였고,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정리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였다. 애당초 국립 현대 미술관은 문교부가 주관하던 국전 업무를 문화 공보부에 이관하여 그 업무를 담당하게 할 목적으로 개설되었으나,176)이인범, 앞의 글, 주 11 참조. 대통령령 제4030호(1969년 8월 23일자)는 국립 현대 미술관이 국전 개최를 목적으로 상설화된 것임을 보여 준다고 한다. 점차 컬렉션을 수집하고 근현대 미술사를 정리하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본연의 역할을 찾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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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다다익선
백남준의 다다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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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관(移館)한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는 한국 근대 미술 60년전(1973), 한국 추상 미술 20년의 동향(1978), 한국 현대 미술 1950년대의 서양화(1979) 같은 기획전을 주최하면서 근현대 미술의 역사를 조망하고 재정리하는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다져 나갔다. 그러나 국립 현대 미술관이 본격적인 전시장을 마련한 것은 1985년 과천 청계산 자락에 새 전시장으로 짓고 이전한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의 전시장은 전시를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 건물을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던 반면, 과천의 국립 현대 미술관은 소장품을 전시하는 상설 전시장과 대형 조각품을 전시하는 야외 전시장, 그리고 각종 기획전을 소화할 수 있는 기획 전시실 등을 갖추었고, 전시장을 잇는 램프 공간은 4층 높이의 거대한 비디오 설치 작품인 백남준의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설치하는 등 전시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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