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2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 제2장 상상의 틀, 여행의 수단
  • 2. 철도의 확충과 주요 역의 명승지
  • 관광지의 다양한 유형
성주현

이상으로 철도 노선에 따른 역과 관광 명승지를 살펴보았다. 이들 관광지의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역사 도시를 중심으로 한 문화 유적지이다. 대표적인 곳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평양을 비롯하여 고려의 왕도 개성, 신라의 고도 경주, 백제의 유적이 남아 있는 부여와 공주, 한때 후고구려의 도읍지였던 철원 등이다. 이들 지역은 철로가 바로 연결되어 좀 더 편리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지만 경주나 공주처럼 가 까운 역을 이용하여 관광을 해야 하는 불편함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역사 유적지는 관광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이들 명승지에는 각종 탐승단을 조직하여 볼거리를 즐겼다. 둘째는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명승지이다. 대표적인 곳이 세계 명산으로 알려진 금강산과 조선 팔경에 속하는 지리산과 장수산 등의 명산이다. 이들 명승지는 산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사찰, 암자, 폭포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늘날로 말하면 웰빙 코스(well-being course)였다. 이들 지역 역시 탐승단을 조직하여 사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볼거리를 만끽하였다. 셋째는 근대 산업 또는 문화 시설이다. 대표적인 곳이 도시에 새롭게 조성된 공원과 권업 모범장 등의 근대적 시설이다. 우리 조상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자연을 즐기고 감상하는 멋이 있었지만 ‘근대’라는 문화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도시 공간으로 공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도시 중심이나 자연을 곁들일 수 있는 곳에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넷째는 일본과 관련된 유적지이다. 일본은 조선을 비합법적으로 식민지를 삼았고, 그 식민지에서 자신들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을 발굴 또는 찾아내어 새로운 관광지 또는 명승지로 만들고 민족적 우월 의식을 가지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부산의 ‘진강성태군 초혼비’를 비롯하여 울산의 ‘소서성지’ 등과 같은 새로운 명승지가 각지에 형성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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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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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조선 철도 주식회사의 할인 사례
일시 할인 대상 할인 대상
1940년
9월 1일
충북 청주군 북일면 숙정리 천연 탄소 원천행 여객 충북선 각역
9월 15일 진주에서 개최한 제1회 경상남북도 연합 수묘 품평회
참가자
관련 각역
9월 17일 경성에서 개최한 기독교 미감리 교회파 연회 참석자 충북선 각역-경성역
9월 25일 청주에서 개최한 제13회 곡물 대회 참석자 부산역-청주역
10월 1일 신의주에서 개최한 잠업 강습회 참석자 전선 각역
장수산 탐승 및 신천 온천 입욕 단체 관광객 황해선 각역
장수산, 신천 온천 순유 관광객 사리원역, 서사리원역, 서종역
장수산 탐승객 인천, 상인천, 용산, 경성, 겸이포, 신막, 평양 간 각역
경성에서 개최한 제1회 전선 주류 품평회 참가자 전선 각역
10월 2일 경성에서 개최한 제6회 조선 신궁 경기 대회 참가 선수 전선 각역
10월 5일 청주에서 개최한 각종 전람회 및 품평회 관람객 충북선 각역
10월 8일 경성 부근에서 개최한 사단 대항 연습 관람객 충북선 각역-영등포역
10월 10일 조선 곡물상 조합 연합회에서 주최한 충북 시찰단 청주역-충주역
10월 15일 청주에서 개최한 조선 소방 협회 충북 연합회 발회식 참여자 충북선 각역
11월 28일 경성에서 개최한 조선 감리교 제1회 총회 참례자 충북선 각역-경성역
12월 11일 학현 동해주 간 노선 소개를 위한 탑승 여객 사리원역-동해주역
12월 15일 충북선 여객 충주역-경성역
1941년
1월 3일
경성에서 개최한 제칠일 안식일 야소교 재림 총회 참가자 전선 각역-경성역
2월 1일 경남선 여객 경남선 각역
✽『鐵道業務統計書』, 朝鮮鐵道株式會社, 1931, 8∼10쪽.

이처럼 철도 연선을 중심으로 명승지가 형성되자 철도국에서는 더 많은 관광객 또는 승객을 유치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도 운임을 할인해 주었다. 1930년 하반기 조선 철도 주식회사(朝鮮鐵道株式會社)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할인 사례를 정리하면 표 ‘조선 철도 주식회사의 할인 사례’와 같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광객 유치 활동으로 철도 영업은 1936년에 이르면 흑자를 내기에 이르렀다.126)「철도 흑자 내는 조선 관광 4만」, 『매일신보』 1936년 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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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철교
압록강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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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관광지나 탐승지, 또는 명승지는 철도국에서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소개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명소 찾기 현상 공모’ 같은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 『동아일보(東亞日報)』는 독자들이 참여하는 마당으로 ‘향토 내 고을 명물 예찬’을 연재하였는가 하면, ‘순회 탐방’이라는 코너를 통해 전국을 군 단위로 나누어 명승고적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또 『중외일보(中外日報)』는 1930년 1월 1일자에 ‘명소 찾기 현상 공모’를 통해 ‘행운의 산, 행 운의 수’를 발표해 우리 문화, 나아가 명승지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였다. 당시 현상 공모에서 독자들이 찾아낸 명소는 천지, 탑골 공원, 불국사, 구월산, 은진 미륵, 구룡폭, 모란대, 압록강 철교, 촉석루, 한라산 등 열 곳이었다. 이에 앞서 철도국에서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조선의 명승을 각 지방으로부터 조사하여 투표한 결과 42곳을 선정하기도 하였다.127)「반도의 명승 42처 선정」, 『동아일보』 1926년 5월 25일자. 당시 선정된 명승과 철도 연선은 표 ‘1926년 철도국 선정 명승지’와 같다. 이러한 신문사와 철도국의 명소 선정 홍보는 각지 명승지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탐승 또는 관광을 이끌어 냈다.

<표> 1926년 철도국 선정 명승지
구분 명승지
명승고적 김해, 경주, 부여, 만월대, 낙랑 고분, 본궁
고사찰 통도사, 불국사, 법주사, 금산사, 망월사, 석왕사
온천 동래, 유성, 온양, 신천, 용강, 주을, 온정리
선유지(船遊地) 밀양강, 한강, 대동강
등산 계룡산, 관악산, 북한산, 금수산, 장수산, 내장산, 소요산, 금강산
폭포 약수 폭포, 동림 폭포, 삼방 폭포, 박연 폭포, 운림 폭포
해수욕장 송도, 진해, 마산, 월미도, 송정리, 서호진
수렵지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함경선, 호남선

그러나 관광 수단으로는 철도 외에도 자동차, 선박, 비행기가 있었다. 자동차는 철도가 닿지 않는 지역을 이어 주는 연결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지만 철도역에서 가까운 명승지를 찾을 수 있는 시내 관광용으로도 활용되었다. 그리고 버스는 흔하지 않았지만 점차 경성과 지방 도시를 잇는 장거리 교통수단으로 발전하면서 관광의 수단으로도 활용 가치가 높아 갔다. 만철 주식회사(滿鐵株式會社)는 금강산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1920년 7월부터 원산역과 온정리를 이어 주는 자동차 네 대를 운행한 바 있다.128)「금강산 유람과 자동차」, 『동아일보』 1920년 6월 28일자. 또 경성에는 관광(유람) 자동차가 공식적으로 운행되었으며, 부산에서도 부산과 동 래, 해운대로 이어 주는 온천 관광버스가 운행되었다.129)「유람 뻐스 개통」, 『동아일보』 1931년 6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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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 적벽강
해금강 적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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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을 이용한 관광은 철도나 자동차보다는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였다. 이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선박을 이용한 관광은 금강산과 제주도였다. 금강산은 관광객의 편리를 위해 원산항과 장진항까지 정기적으로 운항하였다. 그리고 제주도는 목포에서 제주까지는 조선 기선 회사가, 여수에서 제주까지는 황양 기선 회사가 각각 매일 왕복 운항하였다.130)朝鮮總督府 鐵道局, 『湖南地方』, 1940, 20쪽.

비행기도 관광에 활용되기는 하였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에 일반 관광객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지만 비행기 관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아일보』 부산 지국은 ‘경주 비행기 유람단’을 조직하고 “나는 새와 같이 창공에서 펄펄 날아다니면서 유람하기로 되었으니 그 얼마나 상쾌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관광객을 유혹하였다.131)「고도 경주에 비행기 유람단」, 『동아일보』 1931년 5월 15일자. 또한 1929년 9월 10일부터 도쿄(東京)과 서울, 그리고 다롄(大連)을 잇는 여객 항로가 신설되어 해외 관광이 가능해졌다.132)「여객 비행기 이용자 점증」, 『동아일보』 1929년 10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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