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2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 제5장 여행자의 시선과 심상 지리
  • 2. 내면 들여다보기
  • 철도를 ‘체험’한다는 것
김희정

그럼, 근대 조선인들이 철도를 ‘체험’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우리나라 근대 문학사에서 기차는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최남선의 ‘경부 철도가(京釜鐵道歌)’는 각 기차역을 따라가며 읊은 기행시의 형식을 띠고 있고, 근대적 소설의 기원이라 평가받는 이광수(李光洙, 1892∼?)의 『무정(無情)』에서는 영채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평양으로 자살하러 가다 병욱을 만나 삶의 전기를 마련한 곳이 바로 경의선 기차 안이다. 이처럼 기차는 문학 작품 속의 참신한 소재로, 혹은 주인공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기차의 이미지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차의 위력을 상징하는 ‘속도’와 ‘시간의 정확성’일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오백오십 리 머나먼 길을 일순 천 리 나는 듯한 기차”,512)N. S, 「평양행」, 『소년』 12호, 신문관, 1909.11, 133쪽. “살같이 빠른 직행 열차”,513)일기자(一記者), 「자연의 왕국 강계(江界)를 보고」, 『개벽(開闢)』 16, 1921.10, 77쪽.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514)최남선, 「경부 철도가」, 『육당 최남선 전집』 5, 현암사, 1973, 347∼353쪽. 등으로 묘사한 기차는 그 이전에 없던 속도의 위력을 지닌 존재로 그 자체로도 근대 문명이 가져다주는 새로 움이었다. “시계와 시간의 승리를 최종적인 국면으로 끌고 간 것은 철도와 기차 시간표”라는 지적이 있듯이515)박천홍,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산처럼, 2003, 291쪽. 인간에게 근대적 시간 감각을 훈육(訓育)시키는 데 철도와 기차 시간표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번개같이 달리는 속도 감각과 함께, 시간표에 맞추어 움직이는 시간의 정확성도 근대적 인간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감각이었다. 이제 농경민이 가졌던 순환적인 시간 감각은 시간 엄수라는 낯선 규칙으로 강제화되어 갔으며, 주간 단위와 요일제, 하루 24시간이라는 근대적 시간 분할 체제, 동경의 표준 시간 채택 등은 새로운 질서로 자리를 잡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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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기차
경부선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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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국민 국가 형성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철도, 도로 등 근대적인 교통 체계의 변화이다. 특히 조선이 근대적 세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일본이 조선의 교통망을 강제로 장악한 것은 단순한 근대화 과정이 아니라, 조선인에게 특수한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기차 건설을 위해 헐값으로 고용된 조선인들에게 기차는 비애와 환멸의 다른 이름이었으며,516)박천홍, 앞의 책, 6쪽. 또한 이별과 상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태준(李泰俊, 1904∼?)의 『행복』에서 기차는 아들을 빼앗아 간 무정하고 야속한 것으로 등장한다. 대구역에서 군밤 장수를 하는 노인은 아들이 있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고만 치는 자식이기에 없는 셈 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기차표와 함께 북간도에서 돈을 벌어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내용이다. 아들의 편지를 받은 노인은 경성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잠시뿐 순식간에 행복은 절망감으로 뒤바뀐다. 아들을 만나는 순간 아들의 편지를 대신 읽어 주었던 신사가 경찰이 되어 낚아채서 체포해 버렸기 때문이다.

『경성 P형에게』에서는 기차를 “내 몸을 실어다가 만주 벌판에 던질 저 흉녕한 것”으로517)ㅅㅎ生, 「경성 P형에게」, 『개벽』 1, 1920.6, 104쪽. 묘사하고 있으며, 김기림(金起林, 1908∼?)의 『심장 없는 기차』에서는 “기다란 몸뚱아리에 붙은 수십 개의 입을 벌려서 이 동리 사람들을 하나 둘 하나 둘 삼켜 가더니”, “두만강 밖에 뱉아 버리는”518)김기림(金起林), 「심장 없는 기차」, 『김기림 전집』 5, 심설당, 1988, 188쪽. 무정한 기계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기차는 아무나 할 수 없던 장거리 여행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의 공간을 단축시켜 이질적인 공간을 균질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위와 신분에 따라 엄격히 나뉘어 여러 제약과 차별을 받던 조선인들은 이제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즉 승차권을 살 수 있느냐와 없느냐에 따라 구분되었다. 즉 출신, 나이, 성별을 문제 삼지 않게 된 것이다. 최남선의 ‘경부 철도가’는 신분제 파괴가 이루어진 기차 안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우리 내외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친소 다 같이 익혀 지내니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519)최남선, 「경부 철도가」, 『육당 최남선 전집』 5, 현암사, 1973, 347쪽.

그러나 기차는 겉보기에 신분제가 철폐되고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도 입된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의 불평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신분제 대신에 철저한 경제 원리가 작용하는 공간이었다. 사회적 지위와 재산에 따라 객차는 1등칸, 2등칸, 3등칸으로 나뉘었으며, 요금에 따라 칸과 이용 시설이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부딪힐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한 면에서, 기차라는 교통수단은 신분제 대신에 경제력이라는 새로운 차별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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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행열차 식당차
급행열차 식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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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벽이 허물어지고 기차에 의한 장거리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중앙과 지방에 대한 거리감이 줄어들어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균질적인 공간을 형성한 것도 사실이지만, 반면에 자본주의는 도시와 시골의 격차를 심화시키면서, 같은 민족 안에서도 ‘돈’에 의해 융합될 수 없는 새로운 계층을 생성시킨다.

이태준의 『철로』는520)이태준(李泰俊), 「철로」, 『여성(女性)』 제1권 7호, 1936.10, 9∼13쪽. 도시 처녀를 사랑하게 된 지방 청년의 짝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철수는 송전에 사는 바다 청년인데, 송전역에 처음 기차가 개통되었을 때에는 오후 내내 정거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무작정 기차 기다리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송전 해변에 별장으로 여름을 나러 온 도시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매년 처녀를 기다리는데, 어느 여름날 처녀는 머리에 쪽을 틀고 나타나서 기차역을 묻는다. 바다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지 대답할 수 있었지만, 기차에 대한 것은 알지 못하였다. 그 다음 해, 처녀는 키가 늠름하고 이마가 미끈한 백금니의 하이칼라 청년을 데리고 온다. 철수는 처녀의 결혼식에 쓸 생홍합 한 초롱을 기차역에 배달해 주며 처녀가 떠나간 철로를 울음을 참으며 바라본다.

소설 『철로』에 나타난 기차의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철수가 “나는 언제나 한번 저놈을 타 보냐.”, “나도 육지에서 무슨 벌이를 하면서 늘 기차를 타고 다녔으면!” 하고 바랄 때 기차는 도시에 대한 욕망을 나타낸다. 아울러 기차가 처녀를 태우고 올 때는 기다림과 기대의 대상이고, 처녀를 데리고 떠날 때는 “가슴이 찌르르”한 아득한 슬픔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편 처녀가 기차역에 대해 물었을 때는 분함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철수는 처녀에게 모든 것을 대답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녀가 육지에 살고 있고, 자신이 ‘육지를 너무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에 불안을 느낀다. 철수는 그것이 하루아침에 얻을 수 없는 학문임을 깨닫자 그 뒤로는 거의 날마다 저녁때면 정거장으로 나가 정거장 이름을 외운다.

철수와는 대조적으로 처녀의 결혼 상대인 하이칼라 청년은 철수가 모르는 육지에서 왔으며, 작년까지 철수가 들어 주던 생선 꾸러미를 이제 그 청년이 들고 있다. 게다가 자기와는 한 번도 그렇게 붙어 서 본 적이 없는 가까운 거리에서 처녀와 나란히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차역에 생홍합을 배달하러 갔을 때, 청년은 철수의 어깨를 치며 빨리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철수가 모서리에 부딪치면서도 생홍합을 기차 안까지 배달하지만, 꼬꾸라질 뻔한 철수의 모습을 보고 처녀는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만 들린다. 철 수는 처녀와 하이칼라 청년에게 상대적으로 모욕감을 느끼며, “전에는 장난감처럼 재미있게만 보이던 기차가 이렇듯 마음을 아프게 해줄 줄은 몰랐다.”고 상처를 받는다. 그가 받은 상처는 “한 손으로도 번쩍 들릴 섶 초롱이 두 손으로도 무거울” 만큼의 크기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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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러 가는 조선인
기차 타러 가는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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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처녀는 시골에 내려와서 자연과 접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만, 그녀의 인생을 움직일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그녀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시골 청년의 사랑이나 정성이 아니라, 거만한 ‘하이칼라’이며 ‘백금니’를 한 부유한 집 청년이었다. 기차는 실제적으로 도시와 지방의 거리감을 좁혔고 새로운 만남을 가져왔지만, 도시 처녀와 시골 청년 사이의 문화적 거리는 단축시키지 못한 채, 철수의 짝사랑은 무참히 깨어지고, 떠나간 기차의 금속 레일은 냉정한 현실을 더욱더 느끼게 한다.

또한, 기차 안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민족적 차별이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조선인들은 기차에 타는 순간부터 화물처럼 취급당하며521)『시사신보(時事新報)』 1905년 4월 25일자. 2등 국민임을 실감하여야 했다. 철도 요금도 교묘하게 차별하였다. 1908년에는 근거리 요금을 대폭 인상하였는데, 당시에 근거리 여행객은 대부분 조선인이었고 일본인 승객은 대부분 장거리를 여행하였으므로 요금의 혜택을 보 는 것은 거의 일본인 승객들이었다.522)박천홍, 앞의 책, 353쪽 재인용.

이광수는 『나의 고백』에서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조선인 차별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심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때에 내가 부산역에서 차를 타려 할 때에 역원이 나를 보고 그 차에 타지 말고 저 찻간에 오르라고 하기로 그 연유를 물었더니 그 찻간은 조선인이 타는 칸이니 양복 입은 나는 일본 사람 타는 데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전신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분격을 느꼈다. 나는 “나도 조선인이오.” 하고 조선인 타는 칸에 올랐다. 때는 3월이라 아직도 날이 추워서 창을 꼭꼭 닫는 찻간에서는 냄새가 났다. 때 묻은 흰옷을 입은 동포들이었다. 그때에는 머리 깎은 사람도 시골서는 흔치 아니하였고 무색옷을 입은 사람은 더구나 없었다. 실로 냄새는 고약하였다. 그리고 담뱃재를 버리고, 자리싸움을 하고, 침을 뱉고 참으로 울고 싶었다. 나는 이 동포들을 다 이렇지 아니하도록, 그리고 모두 깨끗하고 점잖게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고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는 말로 몸으로 그들을 도우려고 애를 썼다.523)이광수(李光洙), 「나의 고백」, 『이광수 전집』 13, 삼중당, 1962, 194∼195쪽.

조선인의 이미지는 냄새 나고, 때 묻은 옷을 입은 불결한 것이다. 게다가 기차 안에서 담뱃재를 버리고, 침을 뱉으며, 싸움을 하는 무식하고 무질서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상대적으로 “양복을 입은” 일본인이나 하이칼라들은 1등실이나 2등실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기차는 일본인과 조선인, 하이칼라와 노동자를 현격하게 구별하고 차별이 행해지는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이광수가 같은 조선인의 입장에서 분노를 느끼지만, 조선인을 불결하고 무질서한 사람으로 보고 이를 교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일본인이 조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동일하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소춘(小春)의 『그것이 제일이더라』는 ‘초신 행각(行脚)의 엿새 동안’이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여행을 하면서 느낀 감상을 수필 형식으로 쓴 글이다. 그 중 첫 번째 소개되는 ‘쪼겨 가는 삼등객’이라는 글에서는 돈 없고 권력 없는 조선의 늙은 부인이 일본인 어린아이에게 내쫓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건은 경성역을 떠나기 바로 전에 짐을 한 아름 안은 늙은 부인이 기차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에서 시작된다. 차 안에 앉아 있는 일본인 승객들은 모두 이 늙은 부인과 앉기를 싫어하는데, 그 중 ‘다방머리 일본 아해’는 유난히 적극적인 행동으로 늙은 부인을 차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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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표 검사
차표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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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일이 엇디 무사키를 바랄 수가 잇스리요. 겻헤잇든 일본인 승객들은 모다 서트른 조선말로 “저리 가. 저리 가.”를 연(連)해 부르는데, 무단히 이 의자로 저 의자에 오락가락하던 그 다방머리 일본 아해는 무슨 의식이 잇서 그러는지 업시 그러는지는 모르거니와, 자기 나라의 말로 “요보는 실쿠나, 요보는 실어-.” 하면서, 어름어름하고 잇는 그 부인의 뒤잔등을 밀고 잇섯다. 그 모양이, 맛치, 그와 가튼 돈 없고 힘없는 조선 부녀를 쪼차내이는 데는 자기도 한 목 참여할 권능이 잇다고 성언(聲言)하는 듯 십 헛다. 그런데, 이 부인은 정말로 쪼차내일 사람(給仕)이 왓다. “차표 보아” 하더니, 그는 데문보하고 그 부인의 팔댁이를 잇글고, 업처질 듯 업처질 듯 하는 그의 정경이야 알을 바가 잇스랴, 저끝헤 차의 한 간으로 압송하는 셈이엿다.524)소춘(小春), 「그것이 제일이더라」, 『개벽』 41, 1923.11, 92∼93쪽.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본인의 조선인 차별 광경을 글쓴이는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늙은 부인이 쫓겨 나간 찻간은 또다시 고요해지고, 늙은 부인을 쫓아낸 승객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삭거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이것을 보는 글쓴이는 일본인들이 수군대는 것은 “아마 조선 사람에 대한 무슨 공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안 되어 차장이 차표 검사를 하였을 때, 차장은 글쓴이가 내어 주는 차표와 글쓴이의 얼굴을 한참 쳐다본다. 무임 승차가 아니었기 때문에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네가 어찌 이 표를 가졌느냐”는 듯한 눈빛이 따갑게 느껴진다.

내가 내여 주는 차표를 보고는 이상하게도 한참이나 나의 얼굴을 쳐다본다. 마치 네가 엇더케 ‘이 표를 가젓느냐’ 하는 듯 십헛다. 그러나 표가 표이라 “저리 가-” 하는 말은 없었다. 나는 그 순간에 앗가 쪼기여 가든 그 부인네 생각이 낫섰다. 아아 쪼끼여 가는 삼등객, 쫓기어 가는 무산객, 뷔인 간, 뷔인 자리가 여기에 있는데 그대의 가는 곳이 어대었넌고.525)소춘, 「그것이 제일이더라」, 『개벽』 41, 1923.11, 93쪽.

늙은 부인을 둘러싸고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는 글쓴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한다. 하나는 조선인 차별에 대한 민족적 모멸감이고, 다른 하나는 무산 계급(無産階級)에 대한 자본주의 계급의 차별이다. 이 가난한 조선의 늙은 부인은 민족적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양쪽으로부터 차별받고 있었던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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