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1장 나라 이름과 왕 이름에 담긴 의미
  • 3. 국왕에게도 보통 사람 같은 이름이
  • 어릴 때의 이름, 아명
신명호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왕국의 통치자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살아생전 부르는 이름은 물론 사후에 부르는 이름도 있었다. 왕의 이름들은 왕의 이름이라는 이유로 신성하게 간주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왕의 이름들은 그들의 신성한 탄생과 관련되어 있었다. 예컨대 박혁거세, 석탈해(昔脫解), 김알지(金閼智), 김수로(金首露) 등은 그들의 출생 설화가 그대로 성과 이름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렇게 등장하기 시작한 왕의 성과 이름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철저하게 유교적 성명관(姓名觀)에 따라 정착, 분화되었다.20)신명호, 「조선시대 국왕 호칭의 종류와 의미」, 『역사와 경계』 52, 부산 경남 사학회, 2004.

조선시대의 왕실은 전주 이씨(全州李氏)였으므로 성은 이 씨였다. 성은 고정되었으므로 조선시대의 모든 왕은 이씨 성을 가졌다. 이에 비해 이름은 왕들마다 달랐다. 조선시대는 유교 사회였으므로 왕의 이름들도 유교 관념에 따라 지었다.

유교에서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 그대로 이름을 중시하였다. 천당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는 유교에서는 이름을 통해 사 람을 평가하고 심판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통해 그 아이의 미래를 기약하였고, 죽은 후에는 그 일생을 평가하여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조선시대 왕에게도 일생을 기약하는 이름과 일생을 심판하는 이름이 있었다. 살아생전의 이름이 일생을 기약하는 이름이라면, 죽은 후의 이름은 일생을 심판하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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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록』
『선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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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의 이름과 죽은 후의 이름이 여러 가지였으므로 조선시대 왕은 수많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이름 중에는 왕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이름도 있었지만 보통 사람 같은 이름도 있었다. 예컨대 아명(兒名), 자(字), 호(號), 명(名)은 왕만이 갖는 것이 아니라, 양반이나 일반 백성도 갖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보통 사람 같은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양반이나 일반 백성들은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를 아명으로 불렀다. 아명(兒名)이란 어릴 때의 이름이라는 뜻으로 크면 사용하지 않았다. 보통 아명은 개똥이, 소똥이 등 비천한 뜻이 담긴 이름이 많았다. 이는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의 복을 아끼려는 뜻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아이들도 태어난 후 아명으로 불렸다. 조선 전기에는 왕실의 족보(族譜)인 『선원록(璿源錄)』에 대군(大君), 군(君), 공주(公主), 옹주(翁主) 등의 아명을 수록하였다고 한다. 이는 조선시대 왕족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아명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조선 전기에는 왕의 큰아들인 원자(元子)도 아명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연산군의 아명은 무작금(無作金)이었으며, 중종의 적장자(嫡長子)는 억 (億)이라는 아명을 썼고, 명종의 원자는 곤령(崐齡)이라는 아명을 사용하였다. 원자에게 사용되는 아명, 즉 무작금, 억, 곤령도 고상한 의미는 아니었다. ‘무작금’은 ‘쇳덩어리’라는 의미였으며 ‘억’이나 ‘곤령’의 정확한 의미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절대 고상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종 황제의 아명인 개똥이도 고상한 의미는 아니었다. 이는 일반 백성들이 아명을 비천하게 지어 복을 아꼈다는 풍속과 마찬가지로 왕실에서도 비천한 아명을 사용함으로써 복을 아끼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서 왕의 적장자, 즉 왕비가 출생하는 큰아들의 경우는 아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서도 왕의 적장자에 대한 아명을 알 수 있는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예컨대 실록은 물론이고 등록(謄錄)이나 의궤(儀軌)에서도 원자의 아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명 대신에 원자는 출생 직후부터 그냥 원자라고만 불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원자가 일반 왕자들과 구별되는 존재로 격상한 결과였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적장자에 대한 대우가 호칭의 측면에서도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종법(宗法)의 영향과 관련되어 나타났다. 원자는 왕자나 공주와 마찬가지로 아기씨(阿只氏)라는 존칭을 덧붙여 불렀다. 따라서 조선 후기 왕의 적장자는 출생 후에 아명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원자 아기씨로 불리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조선 후기 원자에게는 더 이상 보통 사람 같은 아명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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