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2장 국왕과 그 계승자들
  • 4. 국왕을 양성하는 교육
  • 왕세자 이전의 교육
김문식

조선시대의 국왕 교육 시스템 가운데 왕세자로 책봉되기 이전에 받는 교육에는 보양청(輔養廳) 교육과 강학청(講學廳) 교육이 있었다. 여기서 보 양청 교육이란 원자나 원손이 태어난 직후부터 양육을 받는 것을 말하며, 강학청 교육은 이들이 3세 내지 4세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받는 교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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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탄신진하도(王世子誕辰進賀圖)
왕세자탄신진하도(王世子誕辰進賀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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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부가 원자의 교육을 위해 관리를 처음 임명한 것은 1404년(태종 4) 3월의 일이었다. 이때 태종에게는 원자인 양녕 대군(讓寧大君)이 있었는데,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거행한 직후였으므로 서둘러 교육을 시작하여야 했다. 태종은 설칭(薛偁)을 원자의 유선(諭善)으로 임명하고, 조말생(趙末生)과 진준(陳遵)을 시학(侍學), 조흥(趙興)과 유근(柳謹)을 시직(侍直)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원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리만 임명했지 보양청이란 기관은 설립되지 않았다.

원자 보양관이란 직함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1518년(중종 13)이며, 보양청이란 관청은 1689년(숙종 15)에 가서야 나타난다. 이때 숙종은 장 희빈(張禧嬪)의 소생을 원자(경종)로 지명하고 원자가 두 살이 되자 이관징(李觀徵), 민암(閔黯), 이현일(李玄逸)을 보양관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우의정 김덕원(金德遠)이 “보양관을 두었으므로 그 칭호가 있어야 한다.”고 요청하 자, 보양관이 소속된 관청이라고 하여 보양청이라 부르게 했다.

『육전조례(六典條例)』에 있는 보양청 관련 규정을 보면, 원자가 탄생하면 시강원에 보양청을 설치하고, 보양관은 종2품 이상의 관원 세 명을 임명하며 국왕의 특별 명령에 따라 추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해 원손의 보양청은 궁궐 내의 관청 건물에 설치하며, 보양관은 정3품 당상관 이상의 관원 두 명을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보양관의 품계에서나 보양청을 설치하는 장소에서 차등을 둔 것은 원자와 원손의 위상에 차이가 있음을 반영한 때문이었다.

보양청 교육은 대상자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특별한 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양관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문안 인사를 올린다든가, 병이 났을 때 의관(醫官)이 와서 진찰을 하는 등 원자와 원손의 양육을 둘러싼 일상적인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원자나 원손이 탄생한 직후부터 국가에서 이들의 양육을 담당하는 관청을 별도로 설치하고 성장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았다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아이가 자라는 환경이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의식하고 취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강학청 교육은 초등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단계이다. 강학청 교육이 시작되면 원자와 원손의 교육을 위한 장소를 궁궐 안에 별도로 마련하고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 내용은 주로 한자를 익히는 교육이었지만 한글과 체조도 함께 가르쳤다. 원자나 원손이 성장함에 따라 수업하는 강도도 달라졌는데, 처음에는 사흘에 한 번씩 하던 교육을 매일 한 번씩 하는 것으로, 하루에 세 차례 하는 것으로 강도가 점차 높아졌다. 강학청 교육의 학습 과목은 국왕과 담당 관리들의 논의를 통해 결정했으므로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학자가 학문을 시작하는 것이므로 『천자문(千字文)』, 『소학(小學)』, 『격몽요결(擊蒙要訣)』, 『효경(孝經)』 같은 기초 교재를 많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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