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2장 국왕과 그 계승자들
  • 4. 국왕을 양성하는 교육
  • 왕세자로서의 교육, 서연
김문식

원자나 원손이 왕세자나 왕세손으로 책봉되면 교육 방식도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왕세자나 왕세손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다음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장차 국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과 덕성에 대한 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우선 왕세자와 왕세손의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 기관이 설치되었는데, 왕세자의 교육을 위해서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이, 왕세손의 교육을 위해서는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이 설치되었다. 시강원의 최고 책임자는 사(師)와 부(傅)였는데 여기에는 정1품 관리인 영의정과 좌의정, 우의정 중에서 한 명을 임명했고, 강서원의 최고 책임자에는 시강원보다 격이 낮은 종1품 관리를 임명했다. 시강원의 관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종1품의 이사(貳師), 정2품의 좌빈객(左賓客)과 우빈객(右賓客), 종2품의 좌부빈객(左副賓客)과 우부빈객(右副賓客)을 합하여 2품 이상의 고위 관리만 일곱 명이 있었고, 하급 관리까지 포함하면 모두 20명의 관리가 있었다. 왕세자 한 명을 교육시키기 위해 무려 20명의 관리가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강서원의 관리도 정3품의 좌유선(左諭善)과 우유선(右諭善), 종4품의 좌익선(左翊善)과 우익선(右翊善)을 비롯하여 모두 열 명의 관리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국가의 최고위급 관리가 왕세자와 왕세손의 교육을 전담하는 스승이 되어 학문을 가르쳤다.

왕세자와 왕세손으로 책봉되면 이들의 경호를 담당하는 기관도 별도로 설치되었다. 왕세자의 경호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에서 담당했는데, 세자익위사는 ‘계방(桂坊)’이라고도 불렸다. 익위사의 관리는 정5품의 좌익위(左翊衛)와 우익위(右翊衛)를 비롯해서 총 14명의 관리가 소속되어 있었다. 왕세손의 경호를 위해서는 세손위종사(世孫衛從司)가 설치되었는데, 여기에는 종6품의 좌장사(左長史)와 우장사(右長史) 등 네 명의 관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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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회강식 현판(書筵會講式懸板)
서연회강식 현판(書筵會講式懸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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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위사나 위종사의 관리는 병조에 소속되어 왕세자나 왕세손의 경호를 담당했으므로 무예에 뛰어난 사람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왕세자나 왕세손이 행차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 경계를 섰고, 왕세자와 왕세손에게 말타기와 활쏘기를 가르치는 임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익위사와 위종사의 관리는 무신이 다수였지만 문신이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항상 왕세자나 왕세손을 수행했기 때문에, 왕세자나 왕세손을 이끌 만한 학문적 소양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후대에는 익위사 관리가 왕세자에게 경서(經書)를 직접 강의하고 토론하는 임무를 겸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왕세자를 위한 교육 제도를 ‘서연(書筵)’이라 불렀는데, 이는 국왕을 위한 교육 제도인 ‘경연(經筵)’에 대비되는 표현이었다. 서연을 담당하는 관리는 문과 급제자 중에서도 학문과 덕망을 고루 갖춘 인물을 선발했고, 오랫동안 왕세자를 가르치다가 왕세자가 국왕이 되면 서연관의 정치적 영향력도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의 국왕들은 어린 시절 자신을 가르친 서연관을 고위 관리로 임명하거나 정책 고문으로 추대하여 자문을 구했으며, 그 자손들까지 관리로 등용하여 스승에 대한 예우를 표현했다. 최고 권력자인 국왕을 가르친 사부는 그만큼 명예롭고도 실질적인 혜택이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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