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3장 궁궐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 2. 나라님의 여인들
  • 퍼스트레이디, 왕후
  • 왕후가 되는 길
박홍갑

왕이나 왕세자가 혼인할 나이가 되면 궁중 어른들이 결정하여 가례도감(家禮都監)이란 임시 관청을 설치한다. 그리고는 전국에 금혼령(禁婚令)을 내린다. 가례도감은 왕의 혼례를 주관하는 관청이고, 금혼령은 왕이나 왕세자의 배우자가 될 만한 연령에 있는 처녀의 혼인을 금하는 명령이다.

그러면 그 연령에 해당하는 처녀를 둔 집에서는 의무적으로 신상을 적어 조정에 보고해야 하였다. 이 보고서를 처녀 단자(處女單子)라 한다. 여기에는 처녀의 사주(四柱)와 거주지, 그리고 사조 단자(四祖單子)를 아울러 기록하여야 한다. 사조 단자란 가문의 내력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인데, 부·조·증조·외조의 성명, 나이, 거주지 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기초 자료로 삼아 왕후나 세자빈을 간택(揀擇)하였는데, 다만 종실 친인척의 딸, 이씨의 딸, 과부나 첩 소생(所生)의 딸은 금혼령에서 제외된다.

간택할 때 후보자는 대개 20∼30명 선이었으며, 대부분 한양 안에 살고 있는 사대부집 처녀였으리라 생각된다. 간택 후보자가 입궁(入宮)할 때는 예복(禮服)을 갖추어야 하고, 가마 앞뒤에는 몸종과 유모(乳母)가 따르며, 지체 높은 신분의 처녀는 수모(手母)라는 전용 미용사까지 딸리곤 하였다. 대 궐문에 당도하면 가마에서 내려 문턱을 넘어설 때 미리 준비해 놓은 솥뚜껑 꼭지를 밟고 넘어가는 풍속도 있었다. 입궁 순서는 가문과 신분 순서에 따라 정해지는데, 30명 내외의 처녀를 한 줄로 세워 놓으면, 왕실 어른들은 발을 치고 심사를 하였다. 이것이 초간택(初揀擇)이다.

확대보기
간택 단자
간택 단자
팝업창 닫기

초간택을 한 뒤 2주일 정도 지나 재간택(再揀擇)을 하게 되며, 초간택에서 압축된 5명 내지 7명 정도를 다시 입궁시켜 심사하였다. 입궁 절차는 초간택과 같았다. 여기에서 3배수에 해당하는 3명을 결정하였고, 최종 후보를 대개 내정하였지만 발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귀가할 때 가마나 호송 인원을 왕후에 준하는 수준으로 해 주는 것으로 미리 짐작할 수도 있었다.

삼간택(三揀擇)은 재간택 보름 내지 20일 만에 하였고, 재간택에서 결정한 바를 재삼 확인하는 자리였다. 삼간택에서는 왕이 이름을 지정하고 영의정을 통해 공시한다. 삼간택에서 뽑힌 처녀는 왕후 또는 빈궁(嬪宮)의 대우를 받아 다른 후보자들의 큰절을 받는다. 그리고 왕과 왕후, 왕대비 등 왕실 어른을 뵙는 절차를 마치고 나면 큰 상궁(尙宮)이 별궁으로 모셨다.

삼간택까지 간 처녀들은 최종 낙점을 받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왕실 여자로 인정받는 것이 관례였다. 왕의 배필로 고려되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 으로도 일반 사가에서는 함부로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왕실에 불경(不敬)을 저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가 끝나야 금혼령이 해제된다.

확대보기
영조의 친영 행렬
영조의 친영 행렬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영조의 친영 행렬
영조의 친영 행렬
팝업창 닫기

통상 유교식 혼례는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 부현구고(婦見舅姑). 묘현(廟見)의 여섯 가지 절차로 이루어진다. 이를 합쳐 육례(六禮)라고도 한다. 의혼은 중매를 넣어 혼인을 의논하는 것인데, 왕실에서는 간택 과정이 의혼인 셈이다. 납채는 혼인을 약정한 것을 받아들이는 의식이니, 일종의 약혼식이다. 납폐는 폐백(幣帛)을 받는 것이니, 함이 오고 간다. 그런 후 친영이 이루어진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오는 것이다. 왕은 직접 친영을 행할 수 없으므로 사자를 대신 보낸다. 부현구고는 첫날밤을 치른 신부가 시부모를 뵙는 의식이고, 묘현은 신부가 사흘 만에 시가 사당 조상님들께 인사를 올리는 의식이다.67)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 기획, 1998. 따라서 간택된 신부는 왕실 사당 인 종묘에서 예를 올리는 혼례의 마지막 단계를 치러야만 명실상부한 왕조 국가의 퍼스트레이디로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