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3장 궁궐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 3. 궁녀
  • 통과 의례
박홍갑

궁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通過儀禮)가 있다. 처녀인지 아닌지를 확인받는 절차가 그것이다. 앵무새 피 한 방울을 팔에 떨어뜨려 피가 묻지 않으면 탈락으로 결정된다. 처녀성을 상실한 것으로 판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각 궁의 상궁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녀(醫女)들이 도맡아 하였다.95)김용숙,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 일지사, 1987, 제1장 궁녀. 유모나 보모 역할을 위해 들어오는 궁녀는 이 실험에서 제외되었다. 기혼녀이기 때문이다. 또 10세 이전에 들어오는 궁녀 역시 제외되었다. 나이가 어려 감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의료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처녀 감별법이지만, 당시로는 꽤 심각하게 희비가 엇갈렸을 것이고, 또 누명을 뒤집어 쓴 처녀도 아마 부지기수(不知其數)였을 것이다. 앵무새가 남녀 간의 화목을 상징하였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동원된 수단이었을 것이다. 입사 시험 때 치르는 일종의 신체검사 같은 것으로 치부할 수 있으나, 입사 의례 치고는 좀 희한한 방법이어서 재미있다.

입궁한 신참 궁녀에게는 또 한 차례의 통과의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섣달그믐에 벌이는 ‘쥐 부리 글려’라는 행사가 그것이다. 궁중에서는 한 해를 마감하면서 낮에는 귀신을 쫓는 나례(儺禮)와 처용놀이를 행하고, 밤이 되면 악귀를 쫓는 불꽃놀이를 하였다. ‘쥐 부리 글려’ 역시 악귀를 쫓아내는 주술(呪術)의 일종이다. 그해 입궁한 신참 궁녀에게 밀떡을 입에 물린 다음 그 위에 수건을 접어 양쪽을 삼실 끈으로 매달아 귀에 걸게 하였다. 마스크와 같은 모양이다. 어둠이 내리면 길게 한 줄로 세워 놓고, 젊은 내시가 다가와 긴 횃불로 입 지지는 흉내를 내는데, 자못 진지하다. 이때 위협하며 외 치는 소리가 “쥐 부리 글려, 쥐 부리 글려”였다. 그러면 겁에 질린 어린 궁녀가 울고 불며 야단법석을 떠는데, 먼발치에서 왕비 이하 고참 궁녀는 재미있어 하며 이를 즐겼다. 궁중 생활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덕목이 입조심이니, 두고두고 가슴에 깊이 새기란 뜻이 담겨 있다.96)김용숙,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 일지사, 1987, 제1장 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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