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4장 왕실의 권위와 상징물
  • 1. 왕국의 이념과 왕실의 권위
  • 고대 국가에서 왕의 권위
  • 국왕 권위의 강화 과정
신병주

우리나라 고대사의 초기는 국가가 만들어지고 국왕이 출현하는 고대 국가 형성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후삼국의 분열을 통일한 고려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기 전부터 새로운 왕조를 준비한 조선과 달리 국가 형성의 각 단계에 따라서 왕의 정치적 위상과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유력한 부(部)의 장은 연맹장(聯盟長)이 되었고 권력이 집중되면서 마침내 국왕이 출현하게 되었다. 왕은 각 부의 우두머리들을 점차 귀족화하고, 자신의 부는 물론 다른 부 구성원의 이익까지 챙겨 주면서 국왕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해 갔다.128)이하 주요 내용은 김기흥, 『제왕의 리더십』, 휴머니스트, 2006, 15∼19쪽 「한국 고대 국왕의 정치적 위상과 리더십」 부분을 참조하여 서술하였다.

국왕은 귀족 등 지배층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도 그들의 특권을 적절한 선에서 제어하여 백성의 안녕과 재생산을 가능케 함으로써 현실적 존재 의의를 보여 주었다. 아울러 당시 사람들이 숭배하던 하늘이나 땅의 신에게 자신의 연원이 있음을 주장하여 신성한 자로서 인정받아 권위를 확고히 하였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이나 단군 신화, 주몽(朱蒙) 신화 등이 출현한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의 일이었다. 국왕들은 이리하여 천자 혹은 천손(天孫)으로서 군림할 수 있었고 그만큼 백성들의 지지와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고대 국가에서 왕의 권위는 전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히 삼국 간의 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진 삼국시대의 경우, 삼국 모두 각국과의 전쟁에서의 승리가 왕의 권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각국의 전성기를 이끈 삼국의 왕은 거의 다 정복 군주(征服君主)였고,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왕이었다. 4세기 백제의 팽창을 이끈 근초고왕이나, 5세기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북방 영토의 확장을 통하여 권위를 만천하에 과시하였다. 6세기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은 모두 정복 군주로 활약하며 인근의 지역을 병합하거나 영토 확장을 꾀하였다.

정복 전쟁의 과정에서는 대형 비를 건립하여 국왕 권위를 강화하기도 하였다. 만주 지역에까지 고구려의 영토가 팽창하였음을 보여 주는 광개토왕비와 장수왕의 남하 정책을 보여 주는 중원 고구려비, 신라의 대가야 병합, 한강 유역 진출, 동북 지역까지의 팽창을 보여 주는 진흥왕 순수비의 건립은 고대 국가에서 정복 군주가 권위를 어떤 상징물로 표현하였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복 지역에다 웅장한 비석을 건립하여 왕의 권위를 대대적으로 과시하였던 것이다. 삼국에서의 불교 수용 역시 왕실의 권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삼국의 불교는 수용 단계부터 왕실과 밀착하여 왕실 불교(王室佛敎), 호국 불교(護國佛敎)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삼국 중에서 불교의 수용이 가장 늦었던 신라에서 불교는 특히 왕실의 권위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사상 체계로 자리를 잡았다. 신라는 통일 직전인 6세기에 불교를 수용하여 이후 적극적으로 불교 국가를 확립해 나갔다. 신생국에서 출발했던 신라에서의 불교는 무속 신앙(巫俗信仰)과 결탁한 기존의 귀족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왕권 강화에 매우 유리하였다. 부처 의 권위를 빌어 왕권을 강화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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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서는 23대 법흥왕부터 28대 진덕 여왕까지 불교식 왕명 시대를 열었다. 그만큼 불교의 권위에 의존하여 왕권을 강화하는 시대적 상황이 나타난다. 왕즉불(王卽佛) 사상, 즉 왕이 부처님이라는 사상은 신하나 백성들에게 쉽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 진흥왕은 불교의 정법(正法)을 전파한 정복 군주인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비정(比定)되면서, 자신의 정복 활동과 함께 한껏 권위를 높여 나갔다.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불교 이념을 구체화한 불교 건축물 역시 왕의 권위를 높여 주는 주요한 상징이 되었다. 통일기를 전후하여 신라의 국왕들은 대규모 국가 건축물을 조성하여 국왕의 권위를 높여 나갔다. 통일 이전 황룡사, 분황사의 건축이나 통일 후 불국사와 석굴암의 조성, 상원사 동종·성덕 대왕 신종(聖德大王神鐘)의 제작 등은 이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의 웅장함과 건축미는 지금까지 신라 왕실의 권위를 볼 수 있게 하며, 50만 근에 달하는 황룡사종(黃龍寺鐘)과 12만 근의 성덕 대왕 신종은 비범한 소리와 화려한 장식을 더하여 왕실의 신비감을 한껏 연출하고 있다. 인간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대형 건축물과 신비감이 깃든 대형 종으로 국왕의 권위를 과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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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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