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4장 왕실의 권위와 상징물
  • 1. 왕국의 이념과 왕실의 권위
  • 고려 국왕의 권위
  • 측근 정치와 국왕 권위의 약화
신병주

고려 국왕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지 못하였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측근 정치(側近政治)이다. 고려시대 국왕의 정치를 뒷받침하는, 내시(內侍)라는 기구가 있다. 거세된 사람인 환관(宦官)을 뜻한 조선시대와 달리, 고려의 내시는 양반 자제들이나 과거에 합격한 신진기예(新進氣銳)로 충당되었다. 이들은 내시 기구에 별도로 편입되어, 왕의 정책에 조언하고 왕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 국왕이 정치에 개입하여 개혁 정치를 하는 등 정책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도 이들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고려의 정치 형태를 흔히 측근 정치라고 설명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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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 국사 의천 진영
대각 국사 의천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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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 정치의 전형적인 형태는 원 간섭기 고려 국왕의 정치에 잘 나타난다. 당시 국왕은 원나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후 국왕으로 임명받아 고려에 왔기 때문에, 국내에 정치 기반이 없어 원나라에 있을 때 함께 지낸 시종(侍從)과 신료(臣僚)를 측근으로 삼아 정치를 하였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12세기에는 숙종과 예종도 문벌 정치(門閥政治)의 폐해를 제거하기 위해 내시 기구에 소속된 신진 유학자들을 측근으로 임명해서 정치를 주도하였다. 숙종 때 윤관(尹瓘)과 대각 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예종 때 한안인(韓安仁) 세력, 인종 때 김부식(金富軾), 의종 때 정습명(鄭襲明)과 김돈중(金敦中) 등이 대표적인 측근 정치인이었다.

이와 같이 개혁 정치나 측근 정치는 고려 국왕이 초월적·상징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왕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측근을 통해 정치에 깊이 개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측근 정치는 정책 결정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공론(公論)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기 쉬워 정책의 투명성·공정성에서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고려 국왕은 조선 국왕에 비해서 좀 더 큰 권위를 지닌 채 정책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고려의 정치 제도에서 조선과 달리 국왕의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약하다는 점과 신하들의 권력이 국왕과 대등할 정도까지에는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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