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4장 왕실의 권위와 상징물
  • 3. 궁중 복식
  • 국왕의 복식과 권위
  • 왕비의 혼례복과 왕실의 권위
신병주

왕과 함께 왕실의 권위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왕비의 복식이다. 왕비는 조선시대 내명부의 수장으로 아예 품계(品階)를 두지 않고, 그 아래에 있는 빈(嬪)이 정1품을 받을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왕비의 복식 중 가장 화려한 멋을 풍기는 의복은 혼례식 때 착용하는 적의이다. 적의는 가례의 절차 중에서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인 책비를 행할 때 입던 옷으로, 조선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복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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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왕비의 적의
영왕비의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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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翟衣)는 꿩무늬를 수놓은 포를 말한다. 꿩무늬는 친애해로(親愛偕老)를 상징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왕비가 법복으로 적의를 착용한 것은 공민왕 때에 명나라에서 관복을 보내온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때 중국에서 처음 적의를 받아들였고 인조 때 우리식으로 만들어 붉은색의 적의를 입다가 고종 때 대한제국을 수립한 이후 황후가 입던 푸른색 적의로 바꾸었다. 왕비의 복식도 황제국에 걸맞은 위상으로 바뀐 것이다. 조선 후기까지 왕비의 적의는 대홍색(大紅色)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흉배는 금색 실을 수놓은 오조룡보(五爪龍補)를 붙이고 적의를 9등분하여 꿩 무늬를 수놓았다. 적의에는 중단, 하피(霞帔, 적의를 입을 때 어깨의 앞뒤로 늘어뜨리는 것으로 긴 한 폭으로 되어서 목에 걸치는 것이다), 상, 폐슬, 대대, 혁대, 패옥, 수, 말, 석, 규 등을 갖추었다. 적의를 입었을 때는 패옥을 달고 백옥의 규를 들며 대를 둘렀다. 버선(말)과 신발(석)은 붉은색으로 갖추었다.

적의가 왕비의 대례복(大禮服)이라면 왕비의 소례복(小禮服)으로 착용한 옷은 원삼(圓衫)이었다. 왕비, 세자빈, 세손빈은 소례복으로, 대군 이하 상궁(尙宮)과 관직자 부인은 대례복으로 원삼을 입게 함으로써 왕실과의 차이를 분명하게 하였다. 원삼이란 앞깃이 둥근 데서 나온 명칭으로 옆이 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삼은 조선 초기 명나라에서 들어온 장삼(長衫), 즉 장배자(長褙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왕비 이하 내·외명부의 예복으로 착용하였다. 원삼은 사금단(紗金緞)으로 홍색의 용무늬 스란치마와 같이 입는데 앞에는 청색의 스란 겉치마를 입었다. 원삼은 소매가 길고 넓으며 소매 끝단에는 넓은 한삼이 바느질되어 있다. 원삼에는 큰머리를 하는데 어여머리라 하여 다리를 사용하거나 나무로 만든 어여머리를 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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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왕비의 홍원삼
영왕비의 홍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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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차림의 영왕비
당의 차림의 영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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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唐衣)는 간이 예복 또는 소례복으로 입었다. 당의는 조선 초기의 단배자(短背子)에서 나온 것으로 양옆이 터지고 길이는 엉덩이 정도로 내려와 평상복 저고리와 유사한 형태이다. 당의에는 대개 용첩지를 쓰고 머리는 쪽을 지고 봉잠(鳳簪)을 꽂는다. 조선 말엽에는 당의가 왕실의 소례복이 되면서 흉배를 달기도 하였다. 왕비는 오조룡원보(五爪龍圓補)를 달고, 다른 사람들은 봉황을 수놓은 원형 또는 사각형의 흉배를 달았다. 왕비의 평상복은 일반 서민의 복식과 거의 같되 색이나 직 물의 질에서 차이를 두었다. 가례 때에는 특히 단저고리를 입었는데, 이것은 청색 계통의 바탕에 홍색 금선을 댄 저고리로 왕비의 가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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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당의
왕비의 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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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가 가장 화려한 복식을 갖춘 혼례식 때 왕비의 복식을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의 기록을 토대로 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의궤에 ‘중궁전 법복(中宮殿法服)’이라 하여 세분하여 기록한 왕비의 의례복과 그 재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적의(翟衣) 1감(대홍광직(大紅廣織) 35척, 안감 대홍광직 5척 5촌), 폐슬(蔽藤) 1감(대홍광직 1척 5촌), 대대(大帶) 1감(초록광직(草綠廣織) 6척, 대홍광직 반폭 6척), 수(綬) 1감(금의향직(錦衣鄕織) 1척 6촌), 하피(霞帔) 1감(모단(冒緞) 6척), 상전삼후사(裳前三後四, 앞이 세 폭, 뒤가 네 폭으로 된 치마) 감(남광직(藍廣織) 34척, 안감 백방사주(白方紗紬) 24척), 수(繡) 1감(대홍광직 5척 5촌, 대홍향직으로 대용), 면사(面紗) 1감(자적라(紫的羅) 9척), 적말(赤襪) 1감(대홍광직 3척 5촌), 적석(赤舃) 1부(진주(眞珠)는 제외함), 왜주홍칠함(倭朱紅漆函) 1부였다.

이어 의대(衣襨)에 필요했던 복식으로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었다.

겹장삼(裌長衫) 1감(대홍광직 1필), 개오(盖襖)140)‘오(襖)’는 도포 또는 두루마기류로 긴 것을 포라 하고, 짧은 것을 오라 함. 1감(대홍광직 30척), 경의(景衣, 왕비나 왕세자빈이 입는 예복의 일종) 1감(남광사(藍廣紗) 12척), 겹면사(裌面紗) 1감(자적광사(紫的廣紗) 10척), 수사기(首紗只, 댕기) 1감(자적라(紫的羅) 4오리 길이 2척 4촌, 넓이 1촌), 곶의(串衣, 고쟁이) 1감(초록토주 1필, 안감 대홍수주(大紅水紬) 1필), 유저고리(襦赤古里) 1감(초록토주 1필, 안감 반홍정주 1필), 겹저고리(裌赤古里) 1감(자적초(紫的綃) 16척, 안감 대홍수주 1필), 유호수(襦胡袖) 1감(자적토주 1필, 안감 반홍정주 1필), 겹치마(裌赤亇) 1감(대홍광직 1 필, 안감 백정주 1필), 유치마(襦赤亇) 1감(남광직 1필), 세수장삼(洗水長衫) 1감(초록정주 1필), 노의대(路衣帶) 1감(자적라 6척 7촌), 자초립(紫綃笠) 1감(자적초 1척 5촌), 겹너울(裌羅兀) 1감(자적라 8척 5촌 안감 자적초 6척), 흑웅피화온혜(黑熊皮化溫鞋) 1부, 각양(各樣) 의대를 쌀 보자기 감(대홍주 2필) 등이었다.

이제까지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자료를 통해서 왕과 왕비가 가례와 같은 주요 의식 때 착용한 복식을 일괄적으로 살펴보았고, 각 복식 및 장식품에 소용된 재료까지 알아보았다.141)규장각과 장서각에 소장된 『가례도감의궤』 등에는 조선 왕실에서 착용하던 복식의 용도, 재료, 치수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궤와 같은 자료는 조선시대 왕실 복식을 구체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일차 사료라는 점에서 앞으로 연구와 활용이 기대된다. 앞서 소개한 왕과 왕비의 복식은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물품이다. 이러한 물품들은 최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궁중 의식 재현에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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