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4장 왕실의 권위와 상징물
  • 3. 궁중 복식
  • 국왕의 복식과 권위
  • 왕실의 복식에 담긴 음양오행 사상
신병주

조선시대 왕실의 복식에서 또 하나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복식의 색에 나타난 음양오행 사상이다. 음양오행 사상이 담긴 색채 또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음양오행 사상은 추상적인 사상에만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 의복의 색채 또한 음양오행 사상이 생활에 반영된 결과이다. 음양오행 사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는 청(靑, 좌)·백(白, 우)·적(赤, 남)·흑(黑, 북)·황(黃, 중앙)이다. 복색에서는 오색(五色)을 정색(正色)으로 하고 정색을 배합하여 만드는 색인 벽(碧)·녹祿)·유(騮)·자(紫)·홍(紅) 등의 간색(間色)을 적절히 안배하고 있다.

『예기(禮記)』에는 “의(衣, 웃옷)에는 오색의 정색을 쓰고 상(裳, 치마)에는 간색을 쓴다.”고142)『예기(禮記)』 하였는데 의는 위에 있어서 양이고 상은 아래에 있어서 음이기 때문에 간색을 쓴다는 것이다. 정색과 간색은 양음(陽陰), 귀천(貴賤)의 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다.

왕실의 혼례복에서는 구체적으로 오행 사상이 적용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면복은 장복을 흑색으로 하고 상과 폐슬 등을 훈(纁, 적색에 대한 간색) 으로 하여 오행의 정색과 간색에 의한 착용 방식을 따랐다. 면복 착용에서 신체의 제일 윗부분에 쓰는 면관을 흑색으로 하고 제일 아랫부분인 발에 신는 버선과 신을 홍색으로 한 것 또한 음양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한편 천자는 정색을, 왕은 간색을 착용한다는 관념이 조선시대의 복색(服色)에 영향을 미쳤다. 강사포의 경우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정색에 해당하는 적색이 아닌 간색인 다홍색을 입은 것이 그러한 예이다. 이런 점에서 고종 때 왕비의 혼례복인 적의의 색깔 변화는 주목된다. 적의는 조선 후기까지도 간색인 다홍색 적의를 입었으나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난 후에 정색인 청색으로 바뀌었다. 이제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황제를 칭한 고종의 의지가 복색에도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활옷 속에 입는 다홍색 치마에 노란색 삼회장저고리(三回裝赤古里)는 모든 것이 흙에서 성장된다는 원리를 생(生)과 성(成)에 바탕을 두어 미혼 여성의 예복의 색으로 정하였다. 예복에 있어서는 겉감과 안감이 달랐는데, 대례복은 다홍 거죽에 다홍 안이었고 내복은 연두 거죽에 다홍 안이었다. 왕비의 평소 복장이나 일반 부인의 예복으로 노란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착용한 것은 노란색(양)과 남색(음)이 상극(相剋)을 이루는 색의 배합이지만 자색으로 선을 댄 노란색 삼회장저고리를 입어 상생(相生)을 이루었다고 한다. 혼례는 인간사에 있어서 음양의 합일 의식으로 볼 수 있으며, 혼례 복식에서의 현훈(玄纁), 적치(赤緇), 청홍(靑紅) 등 두 색의 결합은 붉고 푸른 가시적 색채와 함께 천지라든가 남녀의 결합과 같은 음양오행 사상이 색채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143)이선재, 『유교 사상과 의례복』, 아세아 문화사, 1992, 56∼58쪽.

복식에서도 나타나는 색채의 변화는 의궤의 표지에도 반영되었다. 조선시대 왕에게 바치는 의궤를 어람용(御覽用)이라고 하는데, 어람용 의궤는 사고에 보관하는 분상용(分上用) 의궤의 표지를 삼베로 한 것과 달리 비단 표지로 하였다.144)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의 차이에 대해서는 신병주, 2006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326∼327쪽 참조. 그런데 의궤의 표지를 기존에 초록색 비단으로 하던 것을 고종대에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바꾸었다. 어람용 의궤도 종전에 1부를 만들던 것과 달리 2부 또는 3부를 제작하여 황제 외에 황태자, 황실에도 보관하였다. 궁중 행사를 정리한 의궤의 표지 선택에 있어서도 높아진 왕실의 위상을 반영하려 했던 것이다.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된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는 노란색 비단 표지를 한 황제용 의궤와 붉은색 비단 표지를 한 황태자용 의궤 두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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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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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국왕과 왕비의 혼례복의 구성 및 혼례복에 나타난 색채를 중심으로 그것이 지닌 의미와 상징성을 파악하였다. 그런데 전통시대 의복의 색채는 단순한 미적 감각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에는 왕실의 위엄과 권위와 함께, 전통적인 음양오행 사상이 담겨 있었다. 이 밖에 궁녀, 내관 등 왕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복에는 그에 대한 색채, 재료, 치수 등에 대한 상세한 규정이 있었다.

조선시대 왕실 행사의 주요한 내용을 기록으로 정리한 의궤에는 이러한 부분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전통시대 문화의 면면과 함께 왕실 축제에 나타난 당시 사람들의 의식과 사상 체계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된다. 특히 전통시대 왕실 축제의 재현에서 복식이 갖는 비중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단순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시대 의복에 나타난 색채의 상징성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 전통 문화의 재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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