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4장 왕실의 권위와 상징물
  • 4. 궁중 유물
  • 왕실의 도장, 어보
  • 어보의 개념
신병주

‘어보(御寶)’는 대개 왕의 인장(印章), 옥새(玉璽)를 말하나 왕비나 왕세자의 도장도 어보에 포함된다. 옥으로 만든 것을 옥새, 백철로 주조하고 황동으로 도금하여 만든 것을 금보(金寶)라 하였다. 어보는 통상 보인(寶印)이라 지칭하기도 하는데, ‘보인’이란 조선시대의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한 도장을 말한다. 보인은 원래 불교의 삼보(三寶,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인 불(佛)· 법(法)·승(僧)) 가운데 하나인 법보(法寶)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불교의 여러 법 중에서도 실보(實寶)인 법보는 매우 견고하여 부서지지 않으므로 이를 국왕의 도장에 비유한 것이었다. 보인은 보(寶)와 인(印)이라는 두 가지 도장을 합한 말이다. 보는 어보라고도 하는데 국왕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도장이며, 인은 보를 제외한 일반 도장을 말한다. 따라서 보는 국왕(왕비 포함)만 사용하지만, 인은 국왕과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의 가족은 물론이고 중앙과 지방의 각급 관청에서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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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금보(世宗金寶)
세종 금보(世宗金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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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손서(諭世孫書)
유세손서(諭世孫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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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은 왕실의 권위를 표현하는 도장으로서 일반적으로 왕실의 도장 하면 옥새를 떠올리게 된다. 옥새는 중국의 진(秦)나라 때부터 유래하였다. 왕이 쓰는 도장을 옥으로 만들고 옥새라 한 것이다. 그런데 당나라 때부터는 새(璽)의 발음이 죽을 사(死) 자와 유사하다고 하여 보(寶)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옥으로 만든 도장은 옥보라 하고, 금으로 만든 도장은 금보라 하였다.147)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 기획, 1998, 227쪽. 지금도 왕의 도장을 옥새라고도 하고, 금보라고도 부르는 것은 이러한 까닭 때문이다. 조선 왕실에서 왕실의 도장을 제작한 기록을 정리한 의궤의 제목은 대개 ‘금보’로 되어 있다.

옥새는 왕의 명령과 관련한 각종 문서에 사용하였다. 예 를 들면 대보(大寶)는 중국과의 외교 문서에, 시명지보(施命之寶)는 왕의 명령서인 교명(敎命)·교서(敎書)·교지(敎旨)에, 유서지보(諭書之寶)는 관찰사나 절도사 등의 임명에 사용하였다. 이 밖에 과거 급제자에게는 과거지보(科擧之寶)를, 왕이 직접 편찬한 책에 대해서는 선사지기(宣賜之記)·동문지보(同文之寶)·규장지보(奎章之寶) 등의 도장을 찍어 왕실의 권위를 부여하였다. 현재 어보의 실물은 국립 고궁 박물관에 상당수가 남아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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