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4장 왕실의 권위와 상징물
  • 4. 궁중 유물
  • 왕실의 도장, 어보
  • 어보의 제작과 『보인소의궤』
신병주

어보의 제작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에 잘 정리되어 있다. 『보인소의궤』는 1876년(고종 13)에 경복궁 근정전에 보관하던 국왕의 보인과 세자궁의 옥인을 새로 제작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보인을 전면적으로 다시 제작한 이유는 경복궁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었다. 11월 4일에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에 큰불이 나서 인근의 건물들까지 포함하여 830여 칸을 태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불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져 여러 전각(殿閣)에 보관 중이던 역대 국왕의 친필과 물품을 태웠고, 국왕의 대보와 세자의 옥인을 제외하고는 보인도 모두 불타 버렸다. 고종은 11월 8일에 화재로 없어진 보인을 다시 제작·수리하도록 명하여 남아 있던 보인들을 전면적으로 수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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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소의궤』
『보인소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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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소의궤』
『보인소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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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소의궤』의 상당 부분은 도설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새로 제작된 11종의 보인과 이를 보관하는 상자의 그림이 천연색으로 그려져 있고 세부 규격이 정리되어 있다. 『보인소의궤』에 나타난 보인의 실물 모습, 규격, 재료 등은 보인을 복원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보인소의궤』에 수록된 보인 11종의 자세한 내용은 표 ‘『보인소의궤』 수록 보인의 내용’과 같다.

11종의 보인 가운데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에서부터 ‘선사지기(宣賜之記)’까지 9종은 보에 해당하고, 나머지 ‘무위소(武衛所)’와 ‘왕세자인(王世子印)’ 2종은 인에 해당한다. 보인의 재료는 대부분 은에다 금을 입힌 것이며, 손잡이는 주로 거북이 모양이다. ‘조선국왕지인’은 유일하게 용머리에 거북이 몸을 한 손잡이가 달렸는데,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는 용 손잡이를 한 보인이 많아졌다. 이는 국왕의 보인은 손잡이를 거북이 모양으로 하지만 황제는 용 모양으로 하도록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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