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4장 왕실의 권위와 상징물
  • 4. 궁중 유물
  • 왕실의 도장, 어보
  • 고종의 황제 즉위와 보인의 변화
신병주

1897년(광무 1) 10월 고종은 원구단(圜丘壇)에서 황제로 즉위하였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정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것은 조공 체계(朝貢體系)를 통해 중국의 번국(藩國)에 머물던 조선이 중국에서 완전히 분리된 독립 국가가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대한제국은 황제의 위격에 적합한 최고 수준의 보인을 갖추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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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부수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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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부수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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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조선의 국왕에서 대한제국의 황제로 격상되면서 보인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 사용한 보인에 대해 정리한 책으로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가 있다. 이 책은 1903∼1907년 사이에 편찬한 것으로 고종 황제는 물론이고 황후, 황태자, 황태자비, 황태손이 사용하던 보인이 차례로 정리되어 있다.

『보인소의궤』에 수록된 보인과 『보인부신총수』에 수록된 보인의 가장 큰 차이는 황제의 보인이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대한제국이 성립되었으므로 이를 상징하는 ‘대한국새(大韓國璽)’를 만들었고, 여러 종류의 ‘황제지보(皇帝之寶)’와 황제의 명령을 의미하는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를 만들었다. 이들 보인의 손잡이는 모두 용 모양으로 만들어 외형상 황제의 보인임을 분명히 드러나게 하였다. 국왕의 보인이었던 ‘시명지보’는 국왕급에 해당하는 황태자의 보인이 되었다.

한편 보인은 상자에 담을 때에도 정성을 다하였다. 보인 자체가 왕실의 권위를 그대로 보여 주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대보를 비단 보자기에 싸서 상자에 넣는 절차인 봉과식(封裹式)의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대보를 구름무늬를 수놓은 붉은 비단 보자기로 싸고 이를 자주색 명주 끈 2개로 십(十) 자 모양으로 묶은 다음 보통(寶筒)에 넣는다. 흰 솜으로 빈 공간을 채운 다음 향 한 봉지를 위에 놓고 뚜껑을 닫는다.

② 보통을 구름무늬를 수놓은 붉은 비단 보자기로 싸고 자주색 명주 끈 2개로 십 자 모양으로 묶은 다음 보록(寶盝)에 넣는다. 흰 솜으로 빈 공간을 채우고 향 한 봉지를 위에 놓고 뚜껑을 닫는다.

③ 보록을 놋쇠에 금도금을 한 자물쇠로 잠그며 열쇠를 열쇠 집에 넣어 자물쇠에 걸어 둔다.

④ 초주지(草注紙, 초기(草記)에 쓰던 종이)로 보록을 둘러서 봉하고 ‘신근봉(臣謹封)’이라 쓰며, 신(臣) 자 아래에 무위소 제조가 도장을 찍는다.

⑤ 자문지(咨文紙, 중국에 자문을 보낼 때 사용하던 고급 종이)로 표지를 만들어 보인의 이름을 써서 근봉(謹封) 뒤에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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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장독대와 소금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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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조선 왕조 실록』과 같은 책을 보관할 때도 보자기에 실록을 싸는 의식인 봉과식을 신성하게 치렀다.149)『조선 왕조 실록』의 봉과식과 봉안식에 대해서는 신병주, 「조선 왕조 실록의 봉안 의식과 관리」, 『한국사 연구』 115, 한국사 연구회, 2001 참조 보인이나 실록의 봉과식 사 례를 보면 왕실에서 제작한 물건에 권위와 위엄을 부여하려 했던 당시 사람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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