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5장 왕실 행사와 전례 음악
  • 1. 왕실의 행사와 음악
  • 연향과 음악, 가례와 빈례
송지원

왕실의 연향은 가례나 빈례에 속하여 행하였다. 가례에는 왕실의 혼례를 비롯하여 책봉례, 존호, 조하, 조참(朝參), 상참(常參), 관례(冠禮), 문무과 전시(文武科殿試), 왕세자입학의(王世子入學儀), 영조서의(迎詔書儀), 영칙서의(迎勅書儀), 양로연, 음복연(飮福宴) 등이 있다. 이들 의례는 각각 다양한 내용과 목적으로 연행되었다. 이 가운데 연향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의례에서는 음악과 정재(呈才), 즉 춤이 주요 절차로 연행되었다.

왕의 기로소(耆老所) 입소(入所), 왕·왕비·대비 등의 회갑 또는 칠순, 왕의 즉위 등을 기념하는 날이 되면 진연(進宴), 진찬(進饌), 진작(進爵) 등의 이름으로 연향이 크게 베풀어졌고, 해마다 계춘(季春, 음력 3월)이면 관리들 중 80세 이상이 된 사람을 대상으로 양로연이 열렸다. 대사(大祀)를 왕이 친히 행하거나 큰 경사나 상서 등이 있을 때, 혹은 군대가 출정하여 승리하였을 때에는 하의(賀儀)를 행하였고, 음복을 해야 할 특정 의례를 행한 뒤에는 음복연(飮福宴)을 베풀었다. 이때에는 다양한 음악과 궁중 정재를 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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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의 명정전진찬도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의 명정전진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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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의 명정전진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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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영조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을 때에는 연향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연향을 열어 전체 아홉 잔의 술잔을 올렸고, 술을 올릴 때에는 음악과 정재를 연행하였다. 정재의 반주는 장악원(掌樂院)에 소속된 악공이, 춤은 무동(舞童)이 담당하였다. 제1작(第一爵)과 제2작을 올릴 때에는 여민락만(與民樂慢)이 춤 없이 연주되었고, 제3작에는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의 반주에 초무(初舞)를, 제4작에는 정읍만기(井邑慢機)의 반주에 아박무(牙拍舞)를, 제5작에는 보허자령(步虛子令)의 반주에 향발무(響鈸舞)를, 제6작에는 여민락만(與民樂慢)의 반주에 무고(舞鼓) 정재를, 제7작에는 보허자령의 반주에 광수무(廣袖舞)를, 제8작에는 여민락령(與民樂令)의 반주에 향발무를, 마지막 잔인 제9작에는 보허자령의 반주에 맞추어 광수무를 추었고, 끝부분에서는 여민락과 향당교주(鄕唐交奏)를 연주하는 가운데 처용무(處容舞)를 추었다.

또 종묘제나 사직제, 문소전(文昭殿) 제향, 회맹제(會盟祭), 부묘의(祔廟儀) 같은 의례를 행한 후에는 음복연을 행하였다. 음복연은 “신의 은혜를 멈추지 않는다(不留神惠).”는 의미이고, 또 복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여겨 베풀었는데, 주요 절차마다 음악을 연주하였다. 술을 올릴 때, 찬안(饌案)을 올릴 때, 꽃을 올릴 때, 선(膳)을 올릴 때, 왕세자가 절할 때, 정재를 연행할 때, 모두 음악을 연주하였다. 이때 연주할 음악과 춤의 종류는 교지(敎旨)를 받들어 행하였다.166)『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권4, 가례(嘉禮), 음복연의(飮福宴儀). 凡曲舞, 臨時稟旨. 조선시대 궁중의 여러 의례에서, 특히 가례의 경우에는 대부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연행 악무가 결정되었다. 특정 의례에서 어떠한 악무를 연행할지에 대한 정보는 대개 선행(先行) 의례를 참고하여 예조가 왕에게 품(稟)하면 왕이 이에 대해 지(旨), 즉 결재하는 형태로 악무의 연행 내용을 결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음복연은 일반 연례(宴禮)에 준하여 행하였기 때문에 외연(外宴)으로 베풀 때는 초무, 아박무, 향발무, 무고, 광수무, 처용무 등의 정재를 연행하였다. 이들 정재는 모두 무동이 출 수 있는 정재이다. 외연이기 때문에 여성 무용수인 여령(女伶)이 아닌, 무동이 추는 종목으로 구성되었다. 내연(內宴)으로 베풀어지는 음복연도 있는데, 이때에는 외연과는 다소 다른 공연 종목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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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관영조도(義順館迎詔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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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관영조도(義順館迎詔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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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례는 외국 사신을 위해 베푸는 연향 의례가 주를 이룬다. 특정 목적을 띠고 우리나라에 찾아온 중국의 사신을 위해 왕이나 왕세자, 종친 등이 베풀어 주는 잔치와 일본이나 유구국(琉球國)의 서폐(書幣)를 받은 후 베푼 잔치의 의례가 빈례에 포함되었다. 연조정사의(宴朝廷使儀), 왕세자연조정사의(王世子宴朝廷使儀), 종친연조정사의(宗親宴朝廷使儀), 수린국서폐의(受隣國書幣儀), 연린국사의(宴隣國使儀) 등의 의례가 있다.

<표> 중국 사신에게 베푼 연회의 종류와 일정
연회명 연회일
하마연(下馬宴) 서울 도착 다음날
익일연(翌日宴) 하마연 다음날
인정전 청연(仁政殿請宴) 익일연 다음날
회례연(回禮宴) 인정전 청연 다음날
별연(別宴) 회례연 다음날
상마연(上馬宴) 돌아갈 무렵
전연(餞宴) 돌아가는 날

중국 사신이 서울로 들어오는 경로는 조선의 최북단인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바로 마주치는 의주에서 시작된다. 압록강 강가에 있는 의순관(義順館)에 여장을 풀고 머문 이후 사신들은 정주, 안주, 평양, 황주, 개성부 등지를 거쳐 고양의 벽제관(碧蹄館)에서 1박을 한 후 입경(入京)한다. 사신들은 입경 이후 통상 열흘 이상을 서울에 머무는데, 하마연(下馬宴)·익일연(翌日宴)·회례연(回禮宴)·상마연(上馬宴)·별연(別宴)·전연(餞宴) 등의 공식 연향에 참가한다. 또한 서울의 절경인 한강 유관(遊觀)도 방문 일정 가운데 반드시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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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도 18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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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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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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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이 입경한 후 베푸는 연향 가운데 가장 큰 규모는 역시 아홉 번 술잔을 올리는 잔치이다. 실제 연향 사례를 살펴보면 표 ‘『통문관지(通文館志)』의 ‘입경연향의(入京宴享儀)’의 악무와 복색’과 같다. 아홉 차례의 정재가 연행되었는데, 보허자·정읍·여민락 등의 반주에 맞추어 광수무·아박무·향발무·고무 등의 춤을 추었다.

한강 유람은 사신들의 관광 코스이자 문화 교류의 현장이다. 보통 하루나 이틀 동안 유람하였는데, 한강에서도 명승지로 이름난 제천정(濟川亭)·압구정(狎鷗亭)·잠두봉(蠶頭峰)·희우정(喜雨亭) 등이 자주 들르는 코스였다. 특히 제천정은 중국 사신들이 즐겨 시를 짓고 놀며 구경하다 돌아가는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아울러 이들은 조선의 학자 관료들과 함께 시를 주고받으며 진지하게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기도 하였다. 사신의 한강 유관 때에는 음악과 춤이 수반되는데, 『악학궤범』에 의하면 이때 동원되는 연주인은 일반적으로 악사 1명, 여기(女妓) 20명, 악공 10명 등이었다.167)『악학궤범(樂學軌範)』 권2, 정전예연여기악공배립(正殿禮宴女妓樂工排立). 使臣遊觀, 樂師一, 女妓二十, 樂工十.

<표> 『통문관지(通文館志)』 ‘입경연향의(入京宴享儀)’의 악무와 복색
작수 음악 복색
제1작 보허자 광수무 남의
제2작 정읍 아박무 흑수의
제3작 보허자 향발무 홍의
제4작 정읍 고무 남의
제5작 여민락 광수무 녹의
제6작 여민락 광수무 심녹의
제7작 여민락 광수무 녹의
제8작 여민락 광수무 남의
제9작 여민락 광수무 남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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