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5장 왕실 행사와 전례 음악
  • 1. 왕실의 행사와 음악
  • 왕의 환궁 음악
송지원

이러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면 왕의 거가(車駕)는 다시 궁으로 돌아온다. 왕이 환궁할 때는 기로, 유생, 교방의 기녀(妓女)들이 길가에 채붕(綵 棚)을 설치해 놓아 연도를 화려하게 만든다. 그런데 환궁할 때 길가에 채붕을 설치하는 일에 대해서는 조선조 내내 논란이 계속 있었다. 수놓은 비단이나 능사(綾紗) 등으로 문과 담장을 꾸미고 구슬 같은 물건으로 기둥을 매어 놓는 등, 화려하게 꾸미는 채붕의 전통은 고려시대부터 조선까지 지속된 것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적 이념이 심화된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이에 배치되는 장치로 해석되어 그 논란이 표면화되었다. 기로, 유생, 교방에서 왕의 행렬을 맞이할 때에는 그날의 행사가 합당하고 의미가 있다는 내용의 가요를 지어 올렸다. 『악학궤범』의 ‘향악정재도설(鄕樂呈才圖說)’에 그러한 가요를 적어 놓은 가요축(歌謠軸)을 올리는 행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를 교방가요(敎坊歌謠)라 하는데 『악학궤범』의 교방가요 부분이 곧 송축(頌祝)하는 내용을 담은 가요를 올리는 절차에 대한 기록이다. 이때 장악원에서는 여러 공연물을 준비하여 왕이 다시 신성한 궁의 공간으로 들어오기 전에 바깥 세계의 온갖 잡된 기운을 떨쳐내기 위한 의미로 공연을 행하는데, 이것이 곧 왕의 환궁 의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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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가요 초입배열도(初入排列圖)
교방가요 초입배열도(初入排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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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제사를 친행(親行)한 후 환궁 의례를 마치고 다시 궁으로 돌아오면 궁의 정전(正殿)에서 이를 경하(慶賀)하는 의례, 즉 하의(賀儀)가 열린다. 하의는 친행 이외에도 큰 경사 혹은 상서(祥瑞)가 있거나 혹은 군이 출정하여 승리를 거두었을 때 거행된다. 하의는 오례 중 가례에 시행 절차인 의주가 규정되어 있다. 7일간 재계하는 가운데 몸과 마음을 삼가며 정결히 한 후 제사를 지내고 나서, 다시 궁궐로 돌아와 제사를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하여 경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의에 이어서는 제사 지낸 술과 음식을 나누는 음복연이 열린다. 왕과 왕세자를 비롯하여 종친, 의빈, 제관(祭官) 등이 모두 참석하여 음복연까지 행하면 제사는 마무리된다.

하의와 음복연은 오례 가운데 가례의 영역으로 넘어 온다. 길례에 속하는 제사 의례를 가례에 속하는 하의와 음복연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제사를 잘 마친 일에 대한 기쁨을 나눈다. 하의의 절차 중 치하(致賀)하는 말을 대신 읽는 치사(致詞) 단계에서, 대치사관(代致詞官)이 “대사(大祀)가 이미 예를 이루었으니 마땅히 경하(慶賀)할 일입니다.”170)『국조오례의』 권4, 가례, 하의(賀儀). 大祀旣成禮, 當慶賀.라는 내용의 하사(賀詞)를 읽은 후 머리를 세 번 조아리는 삼고두(三叩頭)를 행하고 나면 하의가 끝난다. 하의를 행하는 장소는 정전으로 시기에 따라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등으로 달랐다.

음복연은 하의를 마치고 나서 자리를 정돈한 후 연이어 같은 장소인 정전에서 행한다. 초헌관으로 참여한 왕이 제사 지낸 술, 즉 복주(福酒)를 마시는 절차가 음복연의 중심이 된다. 왕이 복주를 마시고 나면 제사에 참여한 관원이 이어 복주를 마신다. 제사 지낸 제주(祭酒), 즉 복주를 골고루 나누어 마시는 행위는 제사를 잘 치른 후에 내리는 복을 고르게 나눈다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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