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5장 왕실 행사와 전례 음악
  • 4. 왕실 행사를 위한 악기 조성
  • 연향과 제례를 위한 악기 제작
송지원

『제기악기도감의궤』는 1624년(인조 2) 3월부터 11월에 걸쳐 제기와 악기를 비롯하여 제복·의장·의물 등을 만든 내용을 기록하였다. 이 가운데 악기 제작의 목적과 관련된 내용만 간추려 보자. 우선 1624년 3월 13일의 계사(啓辭)를 보면, “장악원에 올린 각양(各樣) 풍물(風物)과 여러 기구는 적난(賊難)을 만나 백성들이 훔쳐 가고 없어져 남은 것이 없고 미비하니, 조사(詔使)들이 왔을 때 연향을 위한 풍물은 장악원에 별도로 악기청(樂器廳)을 설치해서 만들어야 합니다.”고 하였다.

중국에서 조사가 왔을 때 황제의 조서를 받는 의식인 영조서의(迎詔書儀)는 오례 중의 가례로 행하고, 조사를 위해 베푸는 사신연(使臣宴)은 오례 중의 빈례로 행하였다. 이때의 연향에서는 대개 광수무·아박무·향발무·고무 등의 궁중 정재와 보허자·정읍·여민락 등의 궁중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궁중의 악기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였던 1624년에는 사신연의 음악 연주를 위해 악기를 새로 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624년에 악기를 제작한 목적은 또 있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의 폐모(廢母) 조처되어 오랫동안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던 인목 대비(仁穆大妃)를 위한 잔치인 풍정에서 쓸 악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인목 대비를 위한 풍정과 수연(壽宴) 등 가례에 속하는 의례를 거행하기로 결정되자 그 연향을 위해 악기를 제작했고, 새롭게 제작한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였다. 당시 새로 만든 악기로는 당비파·향비파·거문고·가야금·아쟁·해금·박·아박·무고·방향·향발·장고 등이 있고, 여기(女妓) 73 명이 입을 복식, 관현맹인이 입을 옷, 전악이 입을 옷, 악공이 입을 옷 등을 제작하였다. 이와 함께 연화대 복식, 처용 가면, 신발 등도 함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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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제작된 악기 목록과 의물의 목록을 보면 당시의 잔치에서 어떠한 정재를 연행하였는지 파악할 수 있고, 반주 악기가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 밖에 여기·관현맹인·전악·악공이 착용할 복식의 숫자도 명확히 기록해 놓아 당시 풍정에 동원된 여기가 73명, 관현맹인이 13명, 전악이 4명, 악공이 35명이었음을 할 수 있다.

『제기악기도감의궤』에 나타난 또 다른 악기 제작 목적은 종묘 제례와 사직 제례에서 제례악을 연주하기 위한 것이었다. 종묘 제례에서 연주할 악기인 대금(大笒), 중금(中笒), 소금(小笒), 당적, 필률(觱篥), 태평소 등이 만들어졌고, 각 악기를 위한 악기집도 함께 만들었다. 사직 제례를 위한 악기로는 주로 종을 만들었다.

이처럼 1624년 제기악기도감에서 제작한 악기는 용도가 여러 가지였다. 즉 중국에서 오는 조사를 위한 연향으로부터, 인목 대비를 위한 풍정과 수연을 위한 것, 종묘 제례와 사직 제례를 올릴 때 제례악을 연주하기 위한 것 등이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악기를 제작하였으므로 제작 규모는 컸고, 동원된 인원도 매우 많았다. 각 분야의 장인(匠人)도 총동원되었다. 이와 같은 대규모의 악기 조성 과정은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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