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5장 왕실 행사와 전례 음악
  • 4. 왕실 행사를 위한 악기 조성
  • 화재로 손실된 악기 제작
송지원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와 『사직악기조성청의궤』는 궁궐의 화재로 소실된 악기를 조성한 일을 기록하였다. 조선의 궁궐은 불타기 쉬운 목조 건축물이기 때문에 화재로 없어지는 사례가 매우 많았다. 여러 차례의 화재 가운데에는 악기를 보관해 두는 악기고까지 불태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화재로 소실된 악기의 조성 내용을 기록한 의궤가 남게 되었다.

1744년(영조 20) 10월에 인정전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악기를 다시 제작한 내용은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744년 10월 14일 밤에 창덕궁의 승정원에서 큰불이 났다.192)실록에는 화재가 난 날짜를 “10월 병진(13일) 야(夜)”로 기록하고 있으나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仁政殿樂器造成廳儀軌)』와 『악장등록』 기사에는 “10월 14일 야(夜)”로 기록하고 있다(『영조실록』 권60, 영조 20년 10월 병진(13일) ; 『악장등록』 1744년(영조 20) 갑자 10월 20일). 이때의 불은 인정문과 좌우 행각(行閣)이 잇따라 불탈 정도로 큰 규모였다. 발화지인 승정원은 인정문에 바로 잇닿아 있었기에 불은 먼저 인정문을 태운 후 정전으로 번져 나갔다. 연영문(延英門)까지 불이 이르렀지만, 다행히 대청(臺廳)만은 무사하였으나 이때의 화재로 전정(殿庭)의 악기가 불탄 것은 물론이고 역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모두 불타 없어지는 큰 손실을 입었다.193)『영조실록』 권60, 영조 20년 10월 병진(13일) ; 『영조실록』 권60, 영조 20년 10월 계해(20일).

1744년 10월 20일에 예조는 다음과 같이 계사(啓辭)를 올려 소실된 악기 제작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예조에서 계(啓)하였다. “장악원에서 알려 온 내용을 접하니 ‘창덕궁 전정에 배열해 놓았던 악기 풍물이 이달 14일 밤 사이의 실화(失火)로 모두 불타 급히 다시 만든 연후라야 앞에 닥친 거둥 때 쓸 수 있는데, 종과 경 등의 악기를 다시 만드는 것은 일시에 쉽게 갖출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니 더욱 빨리 변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고 하였습니다. 등록을 취해 살펴보니 경인년(1710)에는 전정 헌가의 종과 석경을 만들 때 악기조성청을 설치하여 거행하였으니 이번에도 전례에 따라 악기조성청의 당상과 낭청을 해조(該曹)로 하여금 예를 상고해서 차출하여 즉시 거행토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왕이 전교하기를 “윤허하노라.”고 하였다.194)『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 계사(啓辭), 갑자(1744) 10월 20일.

예조는 이와 같이 화재로 소실된 악기의 제작을 서둘러야 한다는 내용의 계사를 왕에게 올리면서 악기조성청 설치를 건의하였고, 왕은 이를 윤허하였다. 이처럼 화재가 발생한 날부터 이루어진 악기 제작에 대한 논의는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며, 곧바로 악기 제작 실무에 들어갔음을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화재로 손실된 악기를 제작하는 경위를 기록한 또 하나의 악기조성청의궤는 1803년(순조 3) 11월 사직서 악기고의 화재로 소실된 악기를 조성하는 경위와 세부 내용을 기록한 1804년(순조 4)의 『사직악기조성청의궤』이다. 당시의 실화로 사직 악기고 3칸에 보관해 둔 악기와 관복 대부분이 불타고 파손되어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때의 화재로 불탄 악기는 종이 7매(枚), 석경이 15매였다. 이 가운데 편경의 재료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편경의 재료인 경석(磬石)이 산출되는 곳은 경기도 남양(南陽)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고, 날씨가 추워 채굴 작업을 당장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원석을 채굴해도 그 품질이 다양해서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원석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으므로 전량을 다 악기 재료로 쓸 수는 없었다. 채굴 후에 그대로 버려야 하는 것이 있고, 원석을 다듬는 과정에서 조각나 버리는 사태도 발생하므로, 그 채굴 과정과 연마하는 과정이 매우 조심스럽고 속도 또한 더딘 편이다. 악기조성청 의궤류의 내용 가운데 석경을 조달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의궤 기록을 통해 편경처럼 제작이 어려운 악기를 어떠한 과정으로 거쳐 제작하였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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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경(編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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