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2장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전
  • 5. 여성의 성리학
  • 강정일당의 성리학과 문예
이영춘

강정일당은 정조와 순조대에 활동한 여성 성리학자이자 문인이었다. 그녀는 임윤지당보다 50여 년 후에 태어났지만, 윤지당을 존경하여 사숙하였다. 그녀는 늦은 나이에 학문을 시작하였지만, 성리학의 심오한 원리를 깨달았고, 그것을 통한 정신 수양과 실천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극도로 불행했던 생애를 학문과 수양의 힘으로 극복하여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81)강정일당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는 이영춘, 『강정일당』, 가람 기획, 2002 참고.

정일당은 빈한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학문에 종사하여 3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을 하였으나, 그녀의 생전에 이미 유실하였다. 사후에 수습한 글을 모은 문집인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한 권이 전한다. 그녀는 시문에 비상한 소양이 있어 많은 한시와 문장을 남겼고,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그녀를 칭송하는 사람들은 정일당이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임윤지당의 재능을 겸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강정일당은 충청도 제천에서 태어났고 20세에 충주의 선비 윤광연(尹光演)과 결혼하였다. 정일당의 친가(親家)와 시가(媤家)는 다 같이 벼슬을 하던 명문의 후예였지만, 당대에는 가세가 기울어 경제적으로 매우 곤궁하였다. 고향에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한 그들은 서울 주변에서 객지 생활을 하였다. 처음에는 과천에서 살다가 후에 남대문 밖의 약현(藥峴, 지금의 중림동)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그러나 정일당은 각고의 노력과 알뜰한 저축으로 만년에는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정일당은 남편이 학문과 수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였고,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문집에 수록된 많은 척독(尺牘)은 그녀가 남편에게 학문을 권면하고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에 대하여 충고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정일당은 가난하였을 뿐 아니라 몸이 허약하여 평생을 고생하였다. 정일당은 만년에 병으로 신음하다가 1832년(순조 32)에 타계하였다.

확대보기
『정일당유고』
『정일당유고』
팝업창 닫기

정일당의 학문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성인의 경지를 목표로 하는 강한 입지(立志)와 집념이다. 그녀도 윤지당이 말한 것처럼 본질적으로 남녀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고, 여성이라도 노력하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것을 믿었다. 그녀는 또 진정한 도를 얻지 못하면 살아도 즐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정일당은 수양과 실천을 통하여 인성(人性)의 본래 면모를 체득하였고 안심입명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곤궁한 생활 속에서 안분자족(安分自足)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아 모두 일찍 죽었으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고, 사흘 밤낮을 굶기도 하였으나 근심하는 빛이 없었다.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극한적인 환경과 혈육이 전멸하는 비극 속에서도 절대자나 운명을 탓하지 않고, 현실로부터 도피하지도 않으며, 의연하게 자기 성실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일종의 실존적 인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정일당은 도학뿐 아니라 시와 문장 그리고 글씨로도 유명하였다. 그녀의 시는 대부분 자신의 학문과 수양 혹은 도덕적인 훈계를 담은 것이다. 그 주제는 거의 학문에의 집념, 심성 수양, 자신과 남들에 대한 도덕적 훈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 자연 속의 관조, 달관의 체험 같은 도학적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정일당의 시는 진리를 탐구하고 수양에 정진하던 도학군자(道學君子)다운 지성인의 자기 성찰을 노래한 것이다. 산문 역시 문체가 질박 강건하고 도학적인 취향이 있으며, 간명한 문체에 자기 성찰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많았다. 정일당의 글씨는 매우 강건하고 단정하였는데, 강인한 심성 수양에서 온 것이다.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철학이나 문학은 조선시대 여성 사회에서 매우 특이한 사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조선 후기 성리학의 여성계 보급과 점증하는 여성의 학문 활동 및 의식 성장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나 교육과 문화에 대한 제약이 심하였지만,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학술과 문예에 종사하는 여성이 점차 많아졌고, 임윤지당이나 강정일당처럼 높은 수준의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을 위하여 실천한 사람도 나타나게 되었다. 18세기 이후 조선 사회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여성들의 의식 성장은 이 시기에 사회, 경제의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근대적 맹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