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4장 예절로 다스리는 사회의 종법 질서
  • 2. 종법이라는 질서
  • 종법이란 무엇인가
이영춘

유교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던 동양 전통 사회에서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제사의 계승자에게는 가계(家系, 종통)·신분·관작(官爵)·재산 상속의 특권과 의무가 뒤따랐다. 제사의 계승에는 일정한 원리가 있었으며, 엄격한 원칙과 절차가 요구되었는데, 그것이 곧 종법(宗法)이다. 종법은 종통 계승법(宗統繼承法), 곧 ‘제사의 계승 원칙’을 말한다. 종법의 기본 원리는 적장자(嫡長子)와 적장손(嫡長孫)으로의 계승, 곧 ‘적적상승(嫡嫡相承)’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교 문화권의 가계 계승에는 종법이 불변의 대원칙으로 전해 오게 되었다.

종법이란 말은 ‘대종소종지법(大宗小宗之法)’ 혹은 ‘종자법(宗子法)’에서 온 것이다. 이는 종가(宗家)를 중심으로 하여 방계(傍系) 친족을 일정한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고대 중국의 독특한 친족 제도(親族制度)에 대해 후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따라서 종법은 하나의 오랜 관습이며, 특정한 형식을 갖추어 인위적으로 제정한 이른바 ‘법’이나 ‘제도’는 아니었다. 그것은 기원전 12세기 이전의 은(殷)나라 시대 종묘 제도와 친족 제도에 기원을 둔 오랜 습속으로, 장자 상속법(長子相續法)을 기초로 한 일종의 친족 제도 혹은 상속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시대에 따라 내용이 풍부해지고 성격이 변화하기도 하면서 유교적 예법으로 정립되었고, 국가의 법령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주(周)나라 시대의 종법에 따르면 왕(天子)은 왕실의 대종(大宗)으로서 대대로 적장자가 계승하고, 왕의 방계인 형제나 자손은 제후(諸侯)에 분봉(分封)되어 왕실의 소종(小宗)이 된다. 제후들은 자신의 나라에서는 대종이 되어 대대로 그들의 적장자가 계승하고, 그 방계의 형제들(別子)은 경대부(卿大夫)로 다시 분봉되어 공족(公族)의 소종이 된다. 주나라 종법의 가장 큰 특징은 이것을 통치 체계와 결부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은나라의 종법도 정치적 성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친족 조직을 국가의 통치 구조에 결합시켜 강력한 정치 조직으로 제도화한 것은 주나라 때부터였으며, 이것이 분봉 제도와 결합하여 이른바 ‘종법 봉건 제도(宗法封建制度)’를 만들게 되었다.

흔히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르는 동주(東周)시대에 이르면 종주국인 주(周) 왕실보다 제후국들이 더 강성하게 되어 각지에 할거(割據)하였다. 이 시대에는 종법에서도 이들 제후가 중심이 되어 공족들을 결합시키고 정치 단위로 편성하는 종법 체계가 정립되었다. 이것은 후대에 하나의 예제(禮制)로 정비되어 종법의 고전적 형태가 되었다. 이는 제후의 별자(別子, 적장자 이외의 여러 아들)들을 직접적인 편제 단위로 하였기 때문에 ‘별자종법(別子宗法)’이라고도 하였다.

별자종법의 내용은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비교적 소상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별자는 조(祖)가 되고, 별자의 계승자(繼別)는 종(宗)이 되며, 아버지를 이은 자는 소종(小宗)이 된다. 100세(世)가 되어도 옮기지 않는 종이 있고, 5 세가 되면 옮기는 종이 있다. 100세토록 옮기지 않는 것은 별자의 후계이니, 계별자의 시조를 종으로 하는 자는 100세토록 옮기지 않는 것이다. 고조(高祖)를 이은 자를 종으로 하는 자는 5세가 되면 옮기는 것이다. 조상을 존중하는 까닭에 종자(宗子)를 공경하니, 종자를 공경하는 것은 조상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175)『예기(禮記)』, 권16, 대전(大傳).

이를 요약하면, 제후의 별자를 시조로 하여 그의 적장자 직계의 종통이 곧 대종이 되며, 그 방계 곧 별자의 아우들의 가계는 모두 소종이 되는 것이다. 별자의 직계인 대종은 100세토록 변함없이 유지되나, 그 방계는 5세가 되면 친족의 범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는 별자의 신주는 100세가 되어도 사당에서 옮기지 않지만, 그 방계의 자손은 5세 후에 조천(祧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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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의 대종·소종도
『가례』의 대종·소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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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법의 대략적인 원리나 운영 형태는 크게 친족 편제적 측면과 가계 계승적 측면의 두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친족 편제적 측면에서 보면, 별자의 제사와 계통을 잇는 적장자(繼別)의 종가를 대종으로 하고, 그에서 파생된 4종(四宗)의 지파들(고조를 잇는 소종, 증조를 잇는 소종, 조부를 잇는 소종, 아버지를 잇는 소종)을 소종으로 하여 5종(五宗)의 친족 집단을 이루게 된다. 여기에 대종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소종을 통섭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종법에서는 종자(宗子)와 종부(宗婦)에게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종족 전체에 대해 가부장적(家父長的) 권위를 행사하게 하였다.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종자만이 제사를 지낼 수 있고 지자(支子)는 직접 제사하지 못한다. 지자가 제사 드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종자에게 고해야 한다.176)『예기』 권2, 곡례(曲禮) 하(下).

지자(서자)는 벼슬이나 지위가 높더라도 제사를 드릴 때는 종자의 이름을 빌려야 한다.177)『예기』 권7, 증자문(曾子問).

종자는 나이 70이 되더라도 반드시 주부(主婦)를 둘 수 있으며, 지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178)『예기』 권12, 내칙(內則).

중자(衆子)와 서자(庶子)들은 종자와 종부를 공경하여야 하며, 종가에 대해서는 부귀로써 행세할 수 없다.179)『예기』 권12, 내칙.

좋은 물건이 있으면 종자에게 먼저 바친다.180)『예기』 권12, 내칙.

종자는 동종의 족인들을 거두고 통제한다.181)『예기』 권16, 대전.

이러한 종법 체제는 제사를 중심으로 하여 동종 친족 집단의 화목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되고 유지되었다. 대종의 종자는 위로 조상의 제사를 주재하고 아래로 동종의 친족을 거두고 통할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단히 존중되었다.

가계 혹은 종통 계승의 측면에서 보면, 종법은 제사, 관작 등의 승계에서 수립된 적장자 상속의 원칙을 말한다. 적장자가 죽으면 그의 적자인 적장손이 가계를 계승하는 것이다. 적장손이 없을 때는 대종의 경우라면 같은 항렬(行列)의 동종 지파에서 입후(立後)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기타의 여러 아들이나 서자가 계승하는 것도 ‘형망제급(兄亡弟及)’이라 하여 하나의 변례(變禮)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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