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1장 음악 만들기
  • 3. 독립 예술로서의 음악, 삼국시대
  • 음악의 독립
권오성

선사시대 우리나라의 음악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중국의 문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국의 문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기록으로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선사시대와 삼국시대는 시공(時空)의 연속적 지평에서 전개된 사회적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느슨하게 엮어진 부족 국가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중앙 집권 국가(中央集權國家)로 변모한 것이다. 이 변화는 이미 이루어진 계층에 대한 의식이 권력으로 나타나고, 권력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 큰 규모의 집단인 국가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국가는 힘의 상징이고, 힘을 상징하는 여러 요인 중의 하나가 음악이다. 또 궁중의 의식도 상징의 하나로 집행되는데 궁중의 의식과 여러 용도에서 음악이 공연되었다. 이때의 음악은 민간에서 연행하던 그런 양식과는 달리 장중하고 위엄을 갖춘 것이었다. 나라에 따라서는 궁중의 음악들을 집행하기 위해 관리 기관을 두기도 하였다.

국가의 형성은 음악의 발전을 촉발한다. 삼국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선사시대의 종합 예술체에서 음악이 분리 또는 독립되었다는 점이다. 시(詩)·가(歌)·무(舞)의 통합체가 해체되어 문학·음악·무용이 독립체로 연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의 통합체가 해체된 시기가 국가 형성과 때를 같이한 것으로 서술하고는 있으나, 이 점에 관해서 약간의 설명으로 오해를 풀어야 할 것이다. 선사시대의 우리 문화는 『삼국지』·『후한서』·『진서(晋書)』·『남사(南史)』·『통전(通典)』 등을 비롯하여 몇몇 중국 측 기록에서만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기록은 중화 사상에 흡수된 변방 지역의 생활 풍속을 그리는 데 그치고 있어서 내용이 소략함은 물론 여기저기 지식의 편린(片鱗)만을 엮은 것이어서 매우 단편적이다. 이러한 기록이 선사시대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자료 내용이 소략하고 단편적이라는 것은 선사시대 우리의 문화 상황이 중국의 그것만큼 충실히 기록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주변 각 민족의 문화를 상세히 기록하기란 사실상 매우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선사시대를 계승하는 삼국의 문화를 기록한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 등을 참고해 보면 삼국의 음악이 선사시대와는 퍽 다르게 갑자기 발전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종합 예술체의 해체와 예술체의 독립이 그것인데, 이에 관한 기록이 우리 역사책에 처음 보이고 있지만 이 시기에 삼국의 문화가 아무런 계기 없이 갑자기 발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삼국의 국가 형성 이후에 종합 예술체의 해체와 예술체의 독립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보다는 선사시대의 어느 시점에 시·가·무의 통합체가 해체되고 개별적인 특성화의 경향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문헌에만 근거한다면 삼국 이후에 음악이 종합 예술체에서 독립되고, 음악 자체가 생산과 발전을 거듭하여 여러 음악 형식을 이루고 우리 고유의 특성을 가진 음악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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