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1장 음악 만들기
  • 3. 독립 예술로서의 음악, 삼국시대
  • 신라 음악
권오성

신라는 지리적으로 대륙과 인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치 면에서 보수 정책으로 일관하였으므로 외국 문화의 영향을 받기보다 자체 발전적인 사회 상황을 이루었다. 따라서 신라 음악은 신라 특유의 양식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향(鄕)이라는 개념을 가질 만큼 내적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삼국 통일 이후에는 지리적으로 대륙과 근접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개방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신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외국 음악 유입 시기를 통해 외국 음악을 받아들여 매우 다양한 음악 양식을 가지게 되었다.

신라에 들어온 대표적인 음악은 당악(唐樂)이다. 664년(문무왕 4)에 성천(聖川)과 구일(丘日) 등 28명을 웅진부성(熊津府城)에 보내 당악을 배우게 하였다.14)『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新羅本紀)6, 문무왕 상, 문무왕 4년. 지금의 공주 지역인 웅진부성에는 당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배운 당악은 행진 음악인 고취(鼓吹)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삼현(三絃)의 하나인 향비파(鄕琵琶) 음악에 당악에 쓰인 악조(樂 調)로 보이는 봉황조(鳳凰調)와 칠현조(七賢調)가 있고, 삼죽(三竹)의 음악에 쓰인 평조(平調)·월조(越調)·황종조(黃鐘調)·반섭조(般涉調)가 당악의 악조이며, 당비파·퉁소·쟁·소·생(笙)·당피리·적·공후·동고·요고·횡적·박판(拍板) 등 당악기가 이미 신라에서 많이 쓰이고 있었음을 여러 유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악 외에도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가 유입되었다.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를 범패라고 하는데, 범음(梵音) 또는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경덕왕 19년(760) 4월 2일에 두 해가 나란히 나타나서 열흘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일관(日官)이 “인연 있는 중을 청해서 꽃 뿌리는 공덕(功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므로 조원전(朝元殿)에 단을 깨끗이 만들고 임금이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하여 인연 있는 중을 기다렸다. 그때 월명사(月明師)가 밭두둑으로 난 남쪽 길을 가고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러서 단을 열고 기도문을 짓게 하였다. 월명사가 “빈도(貧道)는 그저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해 있으므로 향가(鄕歌)만 알 뿐이오며 범성(梵聲)에는 익숙지 못합니다.” 하였으나, 왕은 “이미 인연 있는 중으로 뽑혔으니 향가라 하더라도 좋소.” 하였다. 월명은 이에 도솔가(兜率歌)를 지었다.15)『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 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

760년(경덕왕 19) 국선인 월명사가 자신은 향가는 알지만 범성 곧 범패에는 익숙지 못하다고 한 『삼국유사』의 기사가 범패에 대한 첫 기록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8세기 중엽에 신라에는 범패가 있었으며, 그것은 이미 사찰에서 불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범패에 대한 다른 자료는 최치원(崔致遠, 857∼?)이 쓴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雙溪寺眞鑑禪師大空塔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범패 즉 어산의 오묘함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선사는 범패를 잘하여 그 소리가 금이나 옥처럼 아름다웠다. 곡조 소리는 치우치듯 날듯 경쾌하면서도 애잔하여 전인(傳人)들이 듣고 기뻐할 만하다. 소리가 먼 데까지 전해져서 그 절이 배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으나 싫은 내색 없이 이들을 가르쳤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어산의 오묘함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콧소리를 흉내 내어 옥천사(玉泉寺)에 전해 온 소리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 이 어찌 소리로 중생을 제도하는 덕화가 아니겠는가.16)최치원(崔致遠),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溪寺眞鑑禪師大空塔碑)」

이 기록을 근거로 진감 선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범패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진감 선사 혜소(彗昭, 774∼850)는 804년(애장왕 5) 당나라에서 불도를 닦고 27년 만인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하여 옥천사에서 불법과 범패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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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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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 승려인 자각 대사(慈覺大師) 엔닌(圓仁, 794∼864)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따르면 신라 사람들이 중국 산둥 반도(山東半島)에 있는 등저우(登州)에 불사(佛寺)인 적산원(赤山院)을 짓고 예불하였는데, 강경 의식(講經儀式)에서 신라풍(新羅風)·당풍(唐風)·고풍(古風) 세 가지 유형의 범패를 불렀다고 한다.17)엔닌(圓仁),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권2, 개성 4년 11월 22일. 여기서 고풍은 당나라 이전에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감 선사가 당나라에서 배워 온 범패는 이 가운데 당풍이 었다고 하겠다. 범패는 불교 의식에 수반되는 것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 경전의 내용을 손쉽게 이해시키고 대중들의 가슴속에 잠자던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의식 음악이다. 따라서 진감 선사가 옥천사에서 가르친 범패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세속 음악같이 표현 음악의 경향을 띠면서도 정교하고 심오한 음악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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