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2장 기보법의 발달과 악보
  • 1. 기보법의 발달과 종류
  • 율자보
권오성

정간보 이전에 쓰던 악보의 다른 한 유형으로는 나열식(羅列式) 문자 악보가 있다. 나열식 문자 악보에는 율자보와 공척보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이들 악보는 12세기 초 이전에는 주로 민간 음악에서 대금·피리 같은 관악기 악보로 이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직업적인 궁중 음악 단체에서도 널리 쓰였다. 특히 정간보가 나오기 이전에는 율자보가 많이 쓰였다.

율자보가 도입된 시기는 고려 예종 때로 추정된다. 1114년(예종 9)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안직숭(安稷崇)이 귀국하면서 송나라 휘종(徽宗)이 준 철방향(鐵方響)·비파(琵琶)·오현금(五絃琴)·쌍현금(雙絃琴)·쟁(箏)·공후(箜篌)·필률(觱篥)·저(笛)·지(篪)·소(簫)·포생(匏笙)·훈(壎)·대고(大鼓)·장고(杖鼓)·백판(栢板) 등의 악기와 곡보(曲譜) 10책, 지결도(指訣圖) 10책을 가져왔다.91)『고려사』 권70, 지(志)24, 악(樂)1, 아악, 송신사악기(宋新賜樂器). 이때 들어온 곡보는 아악보로서 율자보로 기재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통 음악에는 12율명이라는 음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황종(黃鐘)·대려(大呂)·태주(太簇)·협종(夾鐘)·고선(姑洗)·중려(仲呂)·유빈(蕤賓)·임종(林鐘)·이칙(夷則)·남려(南呂)·무역(無射)·응종(應鐘)이 그것이다. 율자보는 음악의 높낮이 관계를 12율명의 첫 글자, 즉 황(黃)·대(大)·태(太)·협(夾)·고(姑)·중(仲)·유(蕤)·임(林)·이(夷)·남(南)·무(無)·응(應)으로 표시한 문자보이다. 주로 아악(雅樂)을 표기하는 데 사용하여 『세종실록』의 조회악(朝會樂)과 제사악(祭祀樂) 등의 아악보에 썼고, 현재도 문묘 제례악(文廟祭禮樂) 같은 제례 음악에 쓰고 있다.

현전하는 문묘 제례악의 율자보는 4음을 한 단위로 묶었다. 그리하여 네 글자마다 숨을 쉬고 나누게 되는데, 앞 세 자의 길이는 같고 네 번째 글자를 길게 노래하는 식이다. 그리고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음 길이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율자보는 절대 음고를 표시하는 12율명으로 표시하되 한 옥타브 안에 12개의 음이름을 포함시키고 있으며, 한 옥타브 높은 음은 해당한 음이름에 ‘수(氵)’ 자를, 한 옥타브 낮은 음은 해당한 음이름에는 ‘인(亻)’ 자를 덧붙여 표기하였다. 예를 들자면, 12율명의 첫 자만 표기하여 이를 중성(中聲)이라 하고, 중성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일 때에는 율명의 왼쪽 옆에 수(氵) 자를 덧붙여 청황종(潢)·청태주(汰)로 읽는다. 두 옥타브 높을 경우에는 수 자를 겹쳐(氵氵) 중청황종(㶂)·중청태주(㳲)로 읽는다. 반대로 한 옥타브가 낮은 음일 때는 같은 위치에 인(亻) 자를 덧붙여 탁황종(僙)·탁태주(㑀)로 읽고, 두 옥타브가 낮으면 척(彳) 자를 덧붙여 배탁황종(㣴)·배탁태주(㣖)로 읽는다. 척(彳)은 인(亻) 자를 두 개 겹쳐 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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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같은 율명으로 기보하기는 하나 음악의 계통과 악기 편성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당피리·편종·편경 등의 황종은 음높이가 C인데 반해 향피리·거문고·가얏고·대금 등의 황종은 E에 해당하여 3도가량 높다.

율자보는 절대 음고를 표시하여 대체적인 선율의 흐름은 알 수 있지만 음의 길이(時價)와 리듬을 표시하지는 못한다. 곧, 12조(調)로 자유로이 변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음의 길이를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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