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2장 기보법의 발달과 악보
  • 3. 사대부와 풍류객이 펴낸 악보
  • 17세기 악보
권오성

17세기에 들어오면서 풍류 음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악보 편찬도 사대부보다는 풍류객들이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된 것은 풍류객이 당시 음악 수용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풍류객은 대부분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과 함께 경제적 부를 갖춘 중인 출신이었다. 이들은 정악(正樂)이라는 새로운 갈래의 음악 문화를 후세에 남겨 주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17세기의 대표적인 악보로는 『양금신보』·『현금동문유기』·『백운암금보(白雲庵琴譜)』·『금보신증가령(琴譜新證假令)』 등을 들 수 있는데, 모두 거문고 악보이다. 그런데 『양금신보』·『현금동문유기』·『금보신증가령』은 엮은이와 편찬 연대가 모두 확실한 반면에 『백운암금보』는 엮은이와 연대를 모두 알 수 없다.

『양금신보』는 선조 때 비파와 거문고의 명인으로 알려진 양덕수(梁德壽)가 편찬한 거문고 악보이다. 이 악보집에 붙어 있는 전라도 임실현감(任實縣監) 김두남(金斗南)의 글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남원에 피난 왔던 장악원 악사 양덕수가 편찬한 것을 1610년(광해군 2)에 출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양덕수의 성을 따라 책 이름을 『양금신보』라고 지었다. 『양금신보』는 민간이 펴낸 악보로서는 『금합자보』 다음 가는 고악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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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신보』
『양금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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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신보』가 다른 합자보와 구별되는 점은 음의 길이를 표시하는 정간보에 거문고 주법 표식을 기보한 유량합자보라는 점에 있다. 이는 앞서 성현 등이 창안한 합자보를 한층 더 발전시킨 것이다. 이 악보집에는 거문고의 집시법(執匙法)·조현법·안현법·타량법(打量法)·합자법(合字法) 등이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다. 집시법은 현금 술대를 쥐고 사용하는 방법이며, 줄을 맞추는 조현법은 평조 조현법과 우조 조현법을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타량법은 세로줄은 행(行), 가로줄은 강(腔)이라 명명하고 강에 표기된 글자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절주가 급하고 느리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합자보의 약자 부호 표시는 大(대현), 方(유현), ㄱ(모지), ㅅ(식지), ㄴ(장지), 夕(명지), 二三四五(괘), ㄱ(거현, 술대 끝을 안으로 향하여 떠서 내는 표), ㄴ(타현, 술대 끝을 밖으로 향하여 쳐서 내는 표), ㅈ(줄을 가볍게 누르는 표), ⋮(농현) 등이 소개되어 있다.

『양금신보』에는 만대엽(낙시조), 북전(평조 계면조·우조 계면조), 중대엽(우조·우조 계면조·평조 계면조), 조음(調音, 속칭 다사림), 감군은(평조 네 편) 같은 악곡이 실려 있다. 이들 곡은 당시까지 전해 오는 악곡이거나 양덕수 자신이 직접 거문고 연주 과정에서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만대엽(낙시조)·북전·감군은은 『양금신보』 이전의 악보인 『조성금보』와 『금합자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중대엽은 오직 『양금신보』에만 처음 나타나고 있다.

『양금신보』 이후 1620년(광해군 12)에 편찬한 『현금동문유기』에는 평조 중엽이 있고 1680년(숙종 6)에 편찬한 『금보신증가령』에도 『양금신보』와 같이 네 개 조로 된 중대엽보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정간보에 기보된 것이 아니어서 음의 시가를 표시하지 못한 합자보였다. 그러므로 유량합자보로 기보한 『양금신보』의 중대엽보는 조선 전기 대엽계 가곡의 발전 정형을 보여 주는 유일한 악보로 평가되고 있다.

『양금신보』에는 삭대엽보가 없지만 이 악보 머리글에 “시용대엽(時用大葉)의 만·중·삭은 모두 정과정(鄭瓜亭) 3기곡 중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 삭대엽보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선 전기 대엽계 가곡이 고려 때의 가곡 정과정 3기곡을 계승하여 만대엽·중대엽·삭대엽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양금신보』가 지닌 사료적 가치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양금신보』는 만대엽·중대엽·북전·조음·감군은 등의 향악곡과 아울러 중대엽에 쓰인 평조(낙시조)·우조·평조계면조·우조계면조라는 네 개 조의 악곡이 있으므로 당시에 쓰던 거문고의 조현법과 선법 이름을 파악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조선 전반기의 합자보와 대엽계 가곡의 발전 정형과 아울러 당시 거문고 음악의 창작과 연주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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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동문유기』
『현금동문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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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양금신보』는 목판본으로 인쇄되었기 때문에 필사본으로 전하는 다른 악보보다 세상에 널리 퍼져서 후세의 거문고 연주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양금신보』는 당시의 거문고 음악을 후대에 악보로 전해 줌으로써 임진왜란 이후 거문고의 전통이 단절되지 않도록 커다란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금동문유기』는 1620년(광해군 12) 이득윤이 편찬한 거문고 악보로 필사본이다. 이득윤은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 광해군 때 고향에 머무르는 동안에 거문고와 관련된 명(銘)·부(賦)·기(記)·시(詩)·서(書)·악보·고금금보(古今琴譜) 등을 집대성하여 『현금동문유기』를 엮었다.

이 악보는 모두 합자보로 기보되어 있으며,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역대 명현의 거문고에 관한 명·부·기·시·서를 모아 엮었고, 둘째 부분은 ‘고금금보문견록(古今琴譜聞見錄)’이라는 제목 아래 안상·조성·박근(朴謹)·박수로·허사종·이세준(李世俊)·무안수(武安守)·김종손(金從孫)·이세정의 악보를 수록하였다. 셋째 부분은 ‘고금금선수지문견록(古今琴善手指聞見錄)’이라는 제목 아래 무안수와 『악학궤범』을 비롯하여 만대엽·북전·대엽·삭대엽·중엽·어아음(於兒音)·다사림(多士林)·소엽(小葉)·장대엽(長大葉)·조현곡(調絃曲) 등의 악곡을 수록하였다.121)장사훈, 『증보 한국 음악사』, 세광 음악 출판사, 1986, 392∼39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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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암금보』
『백운암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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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거문고 명인의 음악을 전하고 있는 이 악보는 『양금신보』·『금보신증가령』·『백운암금보』 등과 함께 17세기 음악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백운암금보』는 필사본으로 된 거문고 악보로 표지에 ‘금보(琴譜)’라고만 쓰여 있다. 편찬 연대나 엮은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대 체로 1610년(광해군 2)에 나온 『양금신보』와 1680년(숙종 6)에 나온 『금보신증가령』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122)이혜구, 『한국 음악 서설』, 서울 대학교 출판부, 1966, 251∼265쪽 참조. 형태는 폈다 접었다 하는 식의 서첩(書帖)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풀을 먹이고 그 안을 배접하였다. 기보법은 육보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시가의 표시가 없다. 내용은 중대엽·북전·삭대엽이 중심이 되고 조음과 감군은 악보가 있다. 특히 평단(平短)이라는 평조 단가의 퉁소 악보가 실려 있는 반면에, 평조계면조의 중대엽이 빠져 있는 것이 주목된다. 평단이라는 악곡은 시조의 유래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르고 독립된 성악곡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는 추정도 있다.123)송방송, 앞의 글, 1985, 396쪽. ‘청량산(淸涼山) 육륙봉(六六峰)’이라는 이황(李滉)의 단가와 ‘초당(草堂)지어 백운(白雲) 덮고’라는 백운암(白雲庵)의 시조가 악보 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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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신증가령』
『금보신증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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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신증가령』은 1680년(숙종 6)에 신성(申晟)이 펴낸 거문고 악보로 필사본이다. 원래 이름은 『신증가령(新證假令)』이나 『현금신증가령(玄琴新證假令)』, 『금보신증가령』, 『신증금보』 등으로도 부른다.

내용은 거문고 연주법, 거문고에 대한 총설, 합자보와 육보의 기보법을 이용한 만대엽·중대엽·삭대엽·여민락·보허자·영산회상 등의 거문고 악보, 신성이 직접 쓴 지문(識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설 부분에는 수지명(手指名)·지법(指法)·현법(絃法)·탄법(彈法)·합자법(合字法)·안법(按法)·현사대소법(絃絲大小法)·현금도(玄琴圖)·오음(五音)·십이율칠성도(十二律七聲圖)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고, 『악학궤범』의 율려격팔상생응기도(律呂隔八相生應氣圖)의 내용과 아울러 오음배속호(五音配俗呼)와 악조총의(樂調總義) 등 기본적인 이론이 수록되어 있다.

악보의 내용은 만대엽(평조)·중대엽(평조·평조 계면조·우조·우조 계면조)·북전(평조·평조 계면조·우조)·삭대엽(평조·평조 계면조·우조·우조 계면조)·조음(평조·우조)·여민락·보허자·영산회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산회상 둘째 줄 이하의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없다.

『금보신증가령』은 중대엽과 삭대엽이 1·2·3이라는 변주곡을 담고 있어서 가곡의 분화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가곡의 발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17세기 후기의 영산회상·여민락·보허자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음악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124)장사훈, 앞의 책, 1966 ; 성경린, 『한국 악보 해제』 한국 예술 총람, 대한민국 예술원, 1965 참조.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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