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2장 기보법의 발달과 악보
  • 3. 사대부와 풍류객이 펴낸 악보
  • 18세기 악보
권오성

18세기에 들어와서도 풍류객의 악보 편찬은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풍류객이 주로 활동한 풍류방(風流房)의 음악을 담은 악보가 많이 편찬되었다. 율방(律房)이라고도 불렀던 풍류방은 가곡·가사·시조 등에 능통한 가객과 가곡 반주나 영산회상 등의 기악곡에 뛰어난 거문고 연주자 곧 금객(琴客)이 함께 어울러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양반 못지않게 많은 지식을 지닌 중인 출신의 풍류객은 그들이 연주하던 악곡을 대개 거문고 악보로 후세에 남겼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어은 보(漁隱譜)』·『한금신보(韓琴新譜)』·『졸장만록(拙庄漫錄)』·『신작금보(新作琴譜)』·『유예지(遊藝志)』 등의 악보 편찬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어은보』는 숙종 때 거문고·퉁소·비파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친 김성기(金聖基, 1649∼1724)125)김성기에 대해서는 김윤조, 「가객 김성기와 그 주변」, 『문헌과 해석』 5, 문헌과 해석사, 1998 ; 이상원, 「조선 후기 예인론-악사 김성기-」, 『한국 시가 연구』 18, 한국 시가 학회, 2005 등 참조.의 가락을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거문고 합자보이다. 『보창랑(譜滄浪)』이라고도 하는데, 표지에는 오른쪽부터 ‘평우조합부 창랑자어은(平羽調合部滄浪者漁隱)’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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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은보』
『어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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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는 여러 악기를 두루 섭렵하였지만 거문고와 비파 연주에는 당대의 독보적 존재였으며, 당시 한양에는 ‘김성기의 새 악보(金聖基新譜)’가 유행하기도 하였다.126)정래교(鄭來僑), 『완암집(浣巖集)』 권4, 전(傳), 김성기전(金聖基傳). 특히 그는 전승이 끊기거나 당시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옛 악조의 맥을 잇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아예 전승이 중단되었던 평조 삭대엽의 곡을 전해 주기도 하였다.127)이상원, 앞의 글, 179∼183쪽 참조.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배운 거문고 가락을 정리하여 1728년(영조 4)에 『낭옹신보(浪翁新譜)』를 만들었다. 1779년(정조 3)에 편찬한 『어은보』는 『낭옹신보』를 저본으로 필사한 것이다.

『어은보』는 음의 시가 표시가 없고 기보법은 거문고 합자보와 한글 육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 악보의 앞부분에는 중대엽·삭대엽·북전 등이 수록되어 있고, 뒷부분에는 보허사(步虛詞)·본환입(本還入)·소환입(小 還入)·영산회상·영산회상갑탄(靈山會相甲彈)·여민락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가곡에 관한 자료가 많이 실려 있는 데다 중대엽과 평조·평조계면조의 삭대엽은 각각 1·2·3·4의 변주곡이 실려 있어 가곡의 변천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영산회상갑탄은 영산회상 가운데 중령산(中靈山)에 해당한다는 연구 성과도 나왔다.128)홍선예, 「어은보의 영산회상 갑탄」, 『한국 음악 연구』 10, 한국 국악 학회, 1980 ; 서인화, 「어은보 영산회상과 영산회상갑탄의 4대강과 8대강」, 『한국 음악사 학보』 20, 한국 음악사 학회, 1998 참조. 또한 평조 삭대엽 밑에는 단가(短歌)라고 쓰여 있어 『백운암금보』의 평단과 비교하여 고악보에 나타나는 단가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한금신보』는 누가 엮었는지 알 수 없는 거문고 악보이다. 발문에 “갑진 정월 임오일에 응천(凝川)의 후인(後人) 아무개가 유희 삼아 서문을 짓다.”라고 하였는데 갑진년은 1724년(경종 4)으로 추정하고 있다.129)한명희, 「한금신보 해제」, 서울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68 ; 한명희, 「한금신보」, 『한국 음악학 자료 총서』 18, 국립 국악원, 1985 참조.

합자보에 구음(口音)을 병기한 기보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거문고 및 거문고 조현법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악보로는 만대엽·중대엽 1·2·3·북전·삭대엽 1·2·3·4·보허자·보허자 본환입·보허자 삭환입·보허자 제지(步虛子除指)·영산회상·영산회상 환입·영산회상 제지·여민락·조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악보에서는 삭대엽 4라는 변주곡이 새로 출현하고, 보허자와 영산회상의 파생곡이 다수 나타나고 있어서 거문고 음악의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졸장만록』은 ‘가야금수법록(伽倻琴手法錄)’이라는 제목의 서문 끝부분에 ‘졸옹 지(拙翁識)’라고 되어 있어 『졸옹가야금보(拙翁伽倻琴譜)』라고도 한다. 18세기 풍류방의 음악을 담은 고악보로는 유일하다시피 한 가얏고 악보로, 우리나라 가얏고 악보 가운데 가장 오래되어 가얏고 음악의 연주법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서문에 따르면 흥양(興陽)의 맹인 윤동형(尹東亨)이 연주하는 가얏고 가락을 졸옹이 일일이 기록하고 악보로 만들던 중 어지럼증이 생겨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중단하였다가 이렇게 쓴 초고를 30년 지난 병진년에 정리하여 펴냈다고 한다. 병진년은 1796년(정조 20)으로 추정하고 있다.130)장사훈, 「졸옹가야금보」, 『국악사론』, 대광 문화사, 198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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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장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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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장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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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법은 가얏고 12줄을 1, 2, 3 등의 숫자로 표시하고 그 옆에 오른손 타는 법과 왼손 줄 짚는 법을 병기하였다. 내용은 가야금수법록·가야금도해(伽倻琴圖解)·우수탄현법(右手彈絃法)·좌수탄현법(左手彈絃法)·조현법(調絃法) 등의 범례와 아울러 삭대엽·우조 둘째·우조 셋째치·계면조·계면 삭대엽·우조 낙시조(羽調樂時調) 등의 악보가 실려 있다.

『신작금보』는 엮은이와 편찬 연대를 알 수 없는 거문고 악보로 필사본이다. 1책 54면으로 되어 있으며, 음의 시가 표시가 없고 기보법은 육보를 사용하였다. 서첩(書帖) 모양 같이 접고 펴는 방식으로 되어 있고 양면에 악보가 적혀 있다.

악보의 내용 중 거문고 연주에서 ‘뜰’ 대신 ‘딩’을 사용한다든지 평조와 우조의 조현법을 각각 구분하고 있다든지, 악보의 순서에서 중대엽 다음에 삭대엽을 배열하고 있는 점 등은 『백운암금보』와 같다. 그리고 평조와 우조의 삭대엽에서 ‘초중대엽·이중대엽·삼중대엽’을 ‘초삭대엽·이삭 대엽·삼삭대엽’의 순으로 체계를 세운 점은 『금보신증가령』과 같다. 또 거문고의 조현법과 개청법(開淸法)을 쓰고 있는 점에서는 『양금신보』와 같다. 이와 같은 사실을 근거로 『신작금보』의 편찬 연대를 영조 이전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조 이전에 편찬한 악보에 일반적으로 수록되어 있는 북전이 빠져 있기 때문에 편찬 연대를 『한금신보』나 『어은보』 이후로 보는 견해도 있다.131)장사훈, 『국악논고』, 서울 대학교 출판부, 196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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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금보』
『신작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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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금보』에 수록된 악곡은 평조 조음과 우조 조음 및 중대엽과 삭대엽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곡의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유예지』는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지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권93에서 권98까지 수록되어 있으며, 이 중 음악에 대한 것은 권98에 담겨 있다. 여기에는 당시 선비들이 향유하던 풍류가 방중악보(房中樂譜)로 엮여 있는데, 그 내용은 현금자보(玄琴字譜)·당금자보(唐琴字譜)·양금자보(洋琴字譜)·생황자보(笙簧字譜)의 순으로 되어 있다. 이 악보가 편찬된 시기는 대략 1806년(순조 6)에서 1813년(순조 13) 사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132)임미선, 「유예지에 나타난 19세기 초 음악의 향유 양상」, 『한국학 논집』 34, 한양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2000, 180∼183쪽. 여기에는 당시 문인들이 생활에서 향유하던 음악 문화와 아울러 중국의 금(唐琴)을 풍류에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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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지』의 현금자보
『유예지』의 현금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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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자보는 합자보와 육보를 병기해서 기보하였다. 왼손의 안현법, 오른손의 탄법, 현금도(玄琴圖)와 아울러 가곡·영산회상·보허자 등 모두 19개의 악보를 수록하였다. 현금자보는 음계의 변화 연주법의 변천, 조율법의 단일화 등이 변해 온 과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악보이다. 현금자보에 수록된 악곡 수는 당금자보·양금자보·생황자보에 실려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이는 거문고가 당시 선비와 풍류객에게 가장 사랑을 받은 반면에, 중국의 금·양금·생황 등은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연주법이 까다로웠던 데에 연유한다.133)임미선, 앞의 글, 186쪽. 당금자보는 중국의 금에 관한 내용이며, 양금자보와 생황자보는 각각 그 악기의 특성에 맞는 악보를 만들어 기보하였다. 양금자보에는 조현(우조·계면조)·영산회상·가곡·시조가 수록되어 있는데, 최초의 시조 악보라는 점에서 귀중하다. 생황자보에는 계면 대엽·농락(弄 樂)·낙시조(樂時調)가 실려 있다.

『유예지』는 19세기 이전의 음악과 현재 전하는 음악과의 중간에 위치하여 국악의 시대적 변천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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